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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진수 변호사 Oct 08. 2022

변호사용품#07 넥타이

변호사에게 숙명같은 넥타이




에이.. 지금이 2022년인데 넥타이를 안 했다고 복장 지적을 받는다?


지금은 넥타이가 한 몸이 된 것처럼 익숙하지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변호사시험을 합격하면 6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친다. 이때 변호사라는 직함도 쓸 수 있고, 명함도 만들 수 있고, 광고도 할 수 있지만, 변론에 나갈 수 없고 사건을 단독 수임하지 못한다. 수습기간에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특별히 복장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이상 넥타이를 반드시 메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변론권이 생기고 법원에 출입을 시작하게 되면 넥타이는 필수다.



실제로 남자 변호사에게 넥타이는 지적의 대상이 된다. 소위 '법정 예절'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고, 깜빡했다간 재판장님께 지적받는 등 큰 곤란에 처할 수 있다. 실제로 넥타이 문제는 아니었지만 법정에서 복장을 지적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변호사님이 깜빡하시고 외투를 입은채 변론을 하셨다. 법대에 계신 재판장님은 연거푸 헛기침을 하시다가, 변호사님이 알아차리지 못하자 결국 '그런데 변호인은 많이 춥습니까?'라고 지적하셨다. 그 변호사님은 그제야 그 뜻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외투를 벗었다.



더운 날에는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혹서기에는 약 3달동안 '넥타이를 매지 않을 수 있는 특별기간'을 둔다. 실제로 각 지방변호사회에서는 여름철 혹서기에 넥타이를 매지 않을 수 있도록 재판부에 양해 및 협조 요청을 하고, 변호사 회원에게 단체 이메일로 공지한다. 넥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복장에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넥타이를 하지 않았다고 재판부로부터 지적을 받는 경우 연락달라는 당부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 올해 여름 서울지방변호사회로부터 받은 이메일




변호사와 넥타이, 삶과 죽음



올해 6월 대구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방화 테러 사건이 있었다.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의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고 방화했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 그것이 죄가 될 수 없는데도, 그 자는 테러를 저질렀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 자는 범행에 책임을 지지 않고 비겁하게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테러는 사법역사에 반드시 새기고,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같은 건물에 변호사 친구가 있었고, 당일 연락이 닿을 때까지 친구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울먹이면서 대구에 계신 지인 변호사님께 연락을 했다. 시간 친구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든 일이 하찮게 여겨졌다. 다음날에 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구로 내려가 친구를 만났다. 장례식장도 찾아 조의했다. 지금도 그 황망함과 절망감아 오롯이 남아있다.



친구한테 고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절하고, 후배 변호사에게 모범을 보이셨으며, 친구가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늘 '담배 맛있어요?'라고 웃으시며 인사를 건네셨다고 한다.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셨고, 너무나 황망한 사건이었기에, 법조계의 애도가 쏟아졌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참사기에 소름이 끼쳤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조문을 마치고 사건 현장 주차장에서 친구를 만났다. 불에 탄 서류더미를 뒤지느라 손이 시꺼맸다. 뭐하냐 물었더니 내일 형사 접견인데 건질 서류가 없나 챙기고 있다고 했다. 사무실이 통으로 없어져서 선임계는 다른 사무소에서 인쇄했다고 다. 변호사는 그런 사람들이다. 내 친구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고, 트라우마 때문에 한숨도 못잤더라도, 의뢰인을 위해 그 사건 현장에서 불타버린 서류를 뒤지는 사람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돈만 밝히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에 죽을 죄를 지은 놈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무려 헌법상 권리다. 이를 모를리 없지만 언론은 변호사의 과거 변호 대상을 문제삼고 이슈를 만든다. 대구 참사는 결코 언론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친구가 살아있으니 양꼬치에 맥주도 먹고, 커피도 한잔 했다. 노상카페 흔들의자에 같이 앉아 하늘을 보고 있으니 그냥 좋았다. 살았으니 그걸로 너무 좋았고, 고마웠다.



대구에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유족에 대한 기사를 봤다. 희생된 변호사님의 아내분 이야기다. 변호사님과 연락이 되지 않자, 장례식장에 연락하여 신원 확인을 하셨다고 한다. 아내분은  “사고가 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의 아내”라고 울먹이시면서, “우리 남편은 넥타이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고 한다.



기사의 내용이 무겁게 다가왔다.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테러였다. 아내가, 딸이, 부모님이 나의 생사를 확인할 때, 지금 메고 있는 넥타이가 나의 삶과 죽음을 확인해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 기사를 본 이후 나는 정장을 입을 때  단 한번도 넥타이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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