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을 나선다. 동네 한 바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낯선 동네를 둘러보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군자대로행이라는 말을 좇는지 모두가 큰길만을 따라가지만, 나는 왠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골목을 만나면 발걸음이 그리로 향한다. 그 속에는 미지의 무엇이 있는 듯 나를 홀린다. 그 무엇은 추억이기도, 호기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삼 할은 골목에서 보낸 시간이었으니 추억이다. 낯선 장소이니 호기심이기도 하다.
지금 사람들은 위로만 올라간다. 똑같은 집들을 포개어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살고 있다. 3차원의 세계에서는 골목이 생기지 않는다. 골목은 2차원이다. 바닥을 낮게 기어 옆으로만 퍼져 나아간다. 큰 골목은 작은 골목으로 갈래를 뻗어 석회 동굴같이 그 안이 궁금한 미로의 세계를 만든다. 2차원의 골목이 3차원의 입체보다 복잡하고 오묘하다. 아리송한 일이다.
낮의 골목은 아이들의 공간이다.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이놈들 시끄럽다”라는 어른들의 고함도 섞인다. 그 속에는 수많은 놀이가 있다. 큰 골목에서는 비석 치기, 사방치기를 했다. 공터에서 시작한 술래잡기는 좁은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가파른 숨결로 골목에 웅크린 어린 가슴은 왠지 팔딱거렸다. 홀로의 다락방을 좋아하듯, 골목은 오롯한 공간을 그리는 본성이 찾은 도피처다.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른 소란스러움과 떠들썩함은 해거름에야 멎었다. 동네 어머니들이 목청을 돋우어 아이들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들어와 밥 먹어라.” “이놈의 자식 손모가지 봐라. 까마귀가 보면 할배요!” 하겠다는 높은 목청이 메아리쳤다.
아이들이 물러난 밤의 골목은 연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사라져도 골목은 잠들지 못한다. 골목의 쓸모는 놀이와 이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스름부터 동틀 때까지의 어둠은 연인들의 차지다. 어둠도 쓸모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은 알 일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큰길을 가리지 않고 포옹하고 입맞춤하는 것은 도덕이 없어서가 아니다. 골목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첫 입맞춤도 골목이 없었다면 가당키나 했겠는가. 소리 없는 부산스러움. 그것은 밤의 골목이다.
잠들지 못한 골목이 깨어난다.
아침의 골목은 어른의 시간이다. 첫새벽 생선 장수의 목소리에 대문을 삐걱 여시던 어머니. 마른기침으로 자식들이 일어나기를 채근하며 사르륵사르륵 마당을 쓰시던 아버지. 마당 쓰는 소리는 골목길로 이어진다. 이집 저집 아버지들이 맑은 새 얼굴로 아침을 나눈다. 학교로 나설 때면 골목은 찬란한 아침 햇살에 사금파리를 반짝이며 정갈한 주단 길이 되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감추어진 듯하지만, 안에서는 열려있는 골목이었다. 골목은 비무장지대같이 울타리의 경계를 완충한다. 완충지대를 따라 소리와 냄새가 넘나들었다. 밥 짓는 냄새와 찌개 끓는 소리가 담을 넘고, 두런두런 저 집의 소리가 내 집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소박한 음식이 담긴 그릇이 오가고, 누구네 딸내미가 서울로 돈 벌러 갔다는 소식도 골목을 따라 유통되었다. 골목이 있기에 초겨울 김장이나 세밑의 놋그릇 닦는 노동의 힘겨움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 본다. 대문 앞에 내어놓은 허섭스레기와 색 바랜 블록의 검푸른 이끼가 남루한 분위기를 더한다.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된 이들이 숨어들어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담배꽁초들이 골목의 처연함을 덧칠한다. 의자를 내어 볕을 쬐는 노인은 홀로 조용하다.
이제 골목에는 아이들이 살지 않는다. 아이들이 없기에 소리가 없다. 골목대장이라는 말도 들어본 지 오래다. 골목은 적막하고 쇠락한 모습으로 과거로 남아있다. 열려있던 골목은 속에서 갇혀있다.
하지만 남루한 것은 향수를 불러내는 힘이 있다.
젊은이들은 구경거리로 골목을 찾는다. 향수일까, 호기심일까. 신기한 여행지를 찾듯이 미로를 탐험하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기웃거린다. 여기저기 골목을 헤집으며 연인과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러나 아무리 풍경에 저를 욱여넣고, 빛을 붙잡아 셔터를 누른 들 골목의 풍경은 담지 못할 것이다. 왁자지껄한 함성과 자욱이 피어나던 먼지 속의 아이들은 빛이 되어 벌써 수십 광년 멀어진 우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