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고교 동기가 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주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풍경을 시로 남긴다. 가끔은 ‘순이’라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는데, 순이는 어릴 적에 고향을 떠난듯하다. 아니면 가공의 인물일 수도 있으나 시의 영역은 사실을 따질 일이 아니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시인이 순이를 그릴 때면, 나는 어릴 적 우리 마을 순자가 떠오른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서울로 떠난 순자. 졸업식도 하기 전 그해 겨울날, 친구처럼 지내던 두 살 많은 그 애 오빠는 “순자는 서울로 식모살이 갈 거야” 하며 해거름 담벼락에 기대서서 쓸쓸히 웃었다.
소년은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돌아오는 누나를 기다렸다. 무려 여덟 시간이 걸리는 완행열차에 실려 오는 선물도 기다렸을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 한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커다란 ‘종합 과자선물세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늘 궁금해하던 소년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느렸고, 더 느렸던 기차는 소년이 꿈속에 든 한참 뒤에나 도착할 터였다. 아침에 머리맡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보고서 산타클로스가 오듯 새벽에야 누나가 왔음을 알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볼 수 없는, 예쁘고 화려한 학용품은 소년의 자랑이었다. 초등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 커버의 두툼한 대학노트를 소년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누나는 며칠을 머물다 다시 그 열차를 타고 떠났다. 아침상을 물리고 집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적막감 속에서 누나가 떠나면 소년은 철둑으로 내달렸다. 알 수 없는 슬픔도 동무들과 어울리면 금세 사라졌지만, 눈길은 자꾸만 멀리 보이는 기차역을 향해 있었다. 그르릉, 울음을 삭이며 먼 길 떠날 힘을 응축한 채 웅크리고 있는 열차가 아련하게 보였다. 기적소리가 들리면 열차는 이미 가까이에 달려오고 있었다. 한참 뒤에나 다시 올 고향 집을 눈에 담으려는 누나는 난간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벌써 빨라진 열차는 폭풍 같은 바람을 일으켜 소년의 뺨을 때렸다. 누나는 고개를 돌려 소년을 오래 보았고 소년은 동무를 몰래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덟 시간을 간다고 했다.
소년이 자라서 회사원이 되었을 때, 계열사의 여러 사업장을 가본 적이 있었다. 화학공장과 전자공장을 보고 마지막으로 대구에 있는 어느 모직회사에 갔었다. 총무과장은 식사가 좋지 않다며 미리 이해를 구했다. 말대로 다른 사업장과 달리 구내식당 밥은 부실했다. 쌀알은 푸석했고 보리알은 거칠었다. 한 끼에 백 원을 내고 먹는 밥이라고 했다. 직원이 십 원을 더 부담하면 회사가 또 보태서 식사 질을 높이려고 했으나, 여공들의 반대로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자기 입에는 십 원도 아까운 여동생들이 거기에 있었다.
‘순이와 순자’는 자연인 한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여자라서 홀대받고, 맏이라서 집안을 떠받치려 도시로 떠났던 우리의 누나, 여동생들이다. 지금 우리는 그녀들을 'K-장녀(長女)’라고 부른다.
고향에 부친 편지에는 식모로, 여공으로 모은 얼마간의 우편환이 들어 있었다. 그것으로 어린 동생들은 공부했고,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쌀을 샀다. 늦은 저녁상을 받으신 아버지는 입이 쓰다며 몇 숟가락 만에 수저를 내려놓고 동네로 마실 갔다. 아버지가 물려 놓은 밥상에 어린 동생들이 달려들었다.
시인은 국화꽃에서 그 청초함만을 떠올렸을까. 뭇 꽃들이 저마다 피어난 뒤, 계절의 끝에 조용히 피어난 국화꽃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 온 누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누나, 친구, 여동생들이여. 그렇게 청춘을 보낸 그녀들을 생각하며 이제야 다시 헌정(獻呈)한다. ‘K-壯女(장녀)’라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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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장녀(長女) : 맏딸, 장녀(壯女) : 장한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