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틀무렵 Mar 20. 2024

곤짠지

   황토 흙이 묻어 더 싱싱해 보이는 무를 박박 문지르고, 몇 번을 헹구니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렇게 때 빼고 광낸 놈들을 이제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땅의 기운을 한껏 빨아들인 하얀 뿌리, 햇볕에 그을린 파릇한 머리, 싹둑싹둑 자르니 속살이 터져 나온다. 껍질에 갇힌 채 팽창하던 속살이 칼날 지나간 자리를 따라 터져 나온다. 비좁은 안에서 압축되어 있던 살들이 망망한 공간을 만나 긴 숨을 내쉬며 살짝 부풀어 오른다. 세상 밖으로 나온 감격에 촉촉한 눈물도 반짝인다.

  

  몇 년 전 귀촌했던 처남이 여름내 공들인 노고를 몇 개의 상자로 보내왔다. 거기에는 무 한 상자도 있었다. 하필이면 다음 날 일찍 여행을 떠나려는 참인데 저녁 늦게 도착한 어마어마한 양의 수확물을 보자 아내는 한숨부터 내쉰다. “오빠는 참 이렇게 많이 보내면 어쩌라고” 하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내심으로는 자랑인 것을 알고 있다. 저를 챙겨주는 오빠가 아직 건재하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내심, 우리 오빠 대단하지, 하는 뿌듯함도 숨어 있다. 배추는 신문지로 싸서 냉장하고 잽싸게 이것저것 정리하더니 무 앞에서는 한숨을 쉰다.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되지 뭔 걱정이람, 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온다. 무말랭이 만들어 봅시다.

  

  우리 부부는 농촌 출신은 아니지만, 시골과 그리 구별되지 않던 삶을 살아왔기에 어깨너머의 경험이 있다. 그중에는 가을 햇살 아래에서 애호박, 무, 가지, 토란대 같은 것이 볕 좋은 마당에서 응축되어 가던 기억도 있다. 마당이 있으면 나물이나 채소를 말려 겨우내 잘 먹을 텐데, 아버님 제사상에 올릴 수 있을 텐데를 자주 되뇌던 아내다. 나 또한 햇살을 받으며 바싹바싹 말라가던 그것들을 수시로 쓰다듬고 뒤집어주시던 어머니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아파트에서는 어림없다고만 하던 아내가 그날따라 웬일인지 해보자고 한다.

  

  한 상자의 무가 완전히 해체되었다. 커다란 대야에 수북하다. 바람이 드나들고 볕 바른 양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도회지 아파트.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은 실에 꿰어 발처럼 늘어뜨린 그림이다. 길게 실을 꿴 바늘로 무를 꿰었다. 베란다에서도 잘 될까, 늘어뜨리면 무끼리 붙어서 마르지는 않고 썩지 않을까. 시골 영감 할멈도 아닌, 도시의 어정쩡한 중년 부부는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무를 꿴다. 첫 번째 꿰미를 완성하여 옷걸이에 매어 빨래 건조대에 걸어보니, 역시나 중력을 못 이긴 무 조각들이 저들끼리 다시 붙는다. 아내의 기지가 번쩍인다. 바늘로 비스듬히 무를 찌르면 될 것 같단다. 

  

  아내의 말은 늘 옳다. 신기술이 적용된 두 번째 꿰미는 띄엄띄엄 간격을 가지고 어린애 머리맡의 모빌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벌써 수분을 뿜어내고 있다. 각자 바늘 하나와 실꾸리를 제대로 놓고 꿰고 또 꿰었다. 이런 순간에도 나는 대체 이 무 조각이 몇 개일까 하는 산수를 해본다. 무 한 개를 네다섯 토막을 쳤고 한 토막에 20~30조각이니 대략 이천 조각쯤?. 이걸 언제 다 꿰지? 그렇게 도시의 시골 부부는 무려 세 시간 만에 무 조각을 모두 높이 매달았다. 어둑한 베란다에 수십 개의 하얀 줄이 발처럼 내려 치렁치렁 신비롭다. 사진으로 찍어보니 어느 화가의 추상화 한 점이 베란다에 들어와 있다.

  

  사흘 여행을 다녀오니, 다행히 썩지 않고 꾸들꾸들 잘 말라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창을 활짝 열어 볕과 바람이 어루만지게 하고, 밤이면 얼세라 닫는 정성을 들였더니 그런대로 꼴이 되었다. 며칠 뒤 빨래 걷듯이 걷어보니 이제는 실과 무가 한 몸이 되어 떼어 놓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언젠가 이웃집 남편이 ‘간단히 김밥이나 말아먹자’라고 했다가, 아내에게 혼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먹기는 쉬우나 음식 만드는 과정에는 남모르는 수고로움이 숨어 있다. 그렇듯, 애쓴 것에 비하면 고작 한 바가지나 될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곤짠지’. 고향에서는 무말랭이를 그렇게 불렀다. 곯은 짠지라는 뜻이다. 어머니는 이맘때면 우리가 했던 양의 몇 배쯤의 무를 잘랐다. 중간 크기의 옹기 독을 가득 채울 만큼의 곤짠지를 쟁였다. 썰어 놓은 어마어마한 양의 무는 염전에 모아놓은 하얀 소금 더미와 같았다. 그 많은 무를 썰고는 밤새 시큰거리는 손목을 주물리시던 어머니. 그때는 왜 파스라도 하나 붙이지 못했을까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려온다. 우리처럼 실에 꿰는 수고는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그렇게 갈무리한 곤짠지는 늦은 봄까지 군내가 나도록 반찬이 되었다. 겨울철 도시락 반찬은 날마다 곤짠지였다. 나도 그랬고 남들도 그랬으니 모두가 그랬다. 겨울철 반찬의 으뜸은 김치였으나 너무나 진부했고, 곤짠지도 진부했으나 격은 달랐다. 김치보다는 좀은 고급 반찬 같은 느낌이었다.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꼬들꼬들한 식감과 오도독오도독하는 소리 때문일 거다.

  

  가끔 무말랭이를 사서 담가보지만, 가늘게 채 썰 듯 썰어 건조기에 급히 말린 것이어서인지 보쌈의 양념소 같이 물컹거리는 맛이다. 드디어 우리가 만든 무말랭이가 그 옛날로 데려가 줄까 하는 생각에 벌써 침이 고이는데, 웬걸 아내는 나중에 하겠다며 소중히 싸서 냉장고에 넣는다. 최근에 김장하느라 분주했던 아내이기에 차마 조르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내년 설 언저리쯤에 할 것이다.

   

  곤짠지는 무말랭이뿐 아니라 말린 고춧잎도 같이 넣어 버무려야 한다. 고춧잎의 푸릇한 색감이 더해져야 보는 맛이 나고 오징어 몇 마리도 살짝 불려 잘게 잘라 넣어야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진다. 더하여 오도독오도독하던 소리 맛도 난다면, 어머니의 곤짠지가 내 앞에 다시 놓인 것이겠다.          



작가의 이전글 곤줄박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