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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r 12. 2024

곤줄박이

   이번 가을에 녀석을 만난 것이 벌써 서너 번은 될듯하다. 회색 연기의 유혹에 가끔 찾아가는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녀석을 때때로 조우하고 있다. 아파트 구석의 볕이 잘 들지 않는 후미진 공간, 주목 나무 앞이다. 미리 약속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은, 녀석이 나보다는 자주 이곳에 오는 것이 분명하리라.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녀석은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으며 깡충 뛰거나 포르르 날며 분주하다. 처음엔 무심히 보이던 녀석이 몇 번 만나니 관찰 욕구가 발동한다. 녀석의 개개의 고유 이름은 본디 없는 것이건만, 녀석의 종은 궁금해진다. 주황색, 재색, 까만색, 흰색, 찬란하게 치장한 녀석은 어디서 본 듯했지만, 알 수 없는 존재다. 딱새, 할미새, 개똥지빠귀….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름을 꺼내어 스마트폰에서 찾은 사진과 맞추어봐도 평생 맞지 않는 로또다. 이 땅에 있으니 한국의 새겠지. 수백 종의 우리나라 새를 펼쳐 놓고 그중에 녀석과 똑같은 놈을 찾았다. 몹시 어렵지 않게 찾았으니 로또 5등의 확률 정도다. 어디서나 보이는 참새 정도라야 텃새라 할 만한데, 이 녀석은 육십 평생에 첫 대면인데 우리나라의 텃세란다. 곤줄박이다.


   주변에 많은 주목 중에 하필이면 구석에 서 있는 이 나무를 찾아온 것일까? 몇 걸음 앞 양지바른 곳에는 가지가 풍성하고 더 많은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가 몇 그루 있다. 나는 의지로 이 구석을 찾아오지만, 이 나무는 까닭도 모르게 음습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사람으로 치면 흙수저다. 생육이 나빠 나뭇가지가 듬성듬성하고 열매도 성글게 달렸다. 그렇구나. 가지가 듬성듬성하니 새가 날아들기가 좋은 것이다. 양지에서 자라 가지와 잎사귀가 빼곡한 나무는 새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성벽과 같아 품 안으로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흙수저로 태어난 이 나무는 자신의 품을 활짝 열어 새를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도 똑같을까.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에게는 다가가기 어렵다. 조금은 어수룩하게 틈을 보여야 더 사람이 모이는 법이다.

   

  녀석은 주목 열매를 찾아온 것이다. 나의 관음증의 눈길도 따갑지 않은가 보다. 앵두 같은 빠알간 열매를 입에 물고, 뾰족한 주둥이를 속사포같이 과육에 꽂고 있다. 과육의 즙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찐득한 액이 부리를 따라 흘러내린다. 때로는 가지와 열매를 한꺼번에 부여잡은 가녀린 발톱은 애써 잡은 먹이를 놓치기도 한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에는 성능 미달의 발가락으로 위태롭게 앉아 연신 부리를 쪼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 순간에는 할 일없는 녀석의 날개가 손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를 일이다. 자연의 법칙으로 억만년의 시간이 지나면 날개에 손가락이 솟아나 녀석의 먹이 활동을 더 우아하게 만들지도.


   사람도 자연의 것을 필요할 때만 취하고 평화로이 살았다. 그러다 어느 곳에 정착하고 농경을 하여, 그 수확물을 저장하고부터는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있어 늘 싸우고 죽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녀석은 열매를 한꺼번에 취해서 가질 줄을 모른다. 생각날 때면 무심히 들를 뿐이다. 나무는 새를 품어 열매를 내어주고, 새는 그것을 내장에 통과시켜 영양만 취한 뒤 씨앗은 어딘가의 먼 땅에 부려 놓을 것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한 방편인 기생과 숙주의 관계 같지만, 누가 기생하는 건지 누가 숙주인지는 아리송하다. 공생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요 며칠째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단지 만남이 어긋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야 그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 많던 열매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나무는 내가 언제 열매를 맺긴 했냐며 새침을 떼고 서 있다. 녀석이 동무까지 데려와 끝을 본 것이 아니다. 설령 그렇게 했더라도 가지 사이 깊이 숨어 있는 것들까지 부리를 뻗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다. 그 열매는 약으로 쓴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이 여기까지 미친 것이다. 하긴 열매의 본질은 먹히는 데 있고 누구에게 먹혀도 멀리 이동시켜 주면 되겠지만, 인간은 녀석처럼 온전하게 멀리 나르지는 못할 것이다. 열매를 취한 인간은 새와 나무의 공생에 방해자일 뿐이고, 그저 지켜봤던 나는 방관자일 뿐이다.

 
    가끔 만나는 살가운 벗 같은 녀석을 더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이 가을이 더 심상하지만, 가을은 끝없이 반복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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