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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r 27. 2024

습관 물질

   엘리베이터에서 쓰레기를 들고 있는 남정네들을 자주 만난다. 그네들은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온 것만이 아니다. 꿍꿍이가 따로 있다. 아내의 잔소리가 뒤통수에 꽂힐 것이 뻔한 ‘흡연 외출’을 쓰레기 버리는 귀여운(?) 짓으로 방패 삼는 모양새다. 흡연자는 아내에게 충성하는 남편이다. 그러니 아내들이여! 담배 피우는 당신의 남편을 너무 나무라지 마오.


  스물한 살 때, 룸메이트의 꾐에 빠져 딱 한 번 들이마신 한 모금의 연기가 시초였다. 삼일에 한 개비가 되고 한 달에 한 갑, 일주일에 한 갑이 되더니 언젠가부터 골초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끊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며 살아온 이십 년의 시간에서 전환점이 발생한 날은 이천사 년 정초였다. 끊자! 끊어버리자는 비휘발성 기억을 뇌 한구석에 저장해 놓고 새해마다 시도하는 작심삼일의 필수 아이템인 금연을 거행하였다. 며칠 연휴가 주는 편안한 마음일 때가 기회다 싶었다. 주변에 선언하고 요란스레 시작하지도 않았고, 모질게 다짐하고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그냥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안 될 거야,라는 설레발을 미리 마음에 쳐놓아 나중의 뻔한 자조를 희석해 놓았다. 그런데 용케 삼 일간을 참았다.


  사흘을 보내고 새해 출근 첫날, 고비는 오전이었다. 골초들의 행동양식은 오전에 피우는 양이 하루치의 반이나 된다. 치오르는 욕구를 어금니를 꽉 물고 버티었다. 그렇게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이틀이 지나고 그 길로 금연성공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살이 찔까 봐 못 끊는다는 주변 사람이 무색하게 새벽과 밤의 운동장에서 흘린 땀으로 살점 하나 늘리지 않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몰래 시작했으니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기대한 것은 당연했다. 줄곧 빵점 맞는 아이가 처음으로 백 점 시험지를 엄마에게 보여 놀라게 하고픈 마음으로, 열흘 뒤쯤 부모님과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뵐 때마다 담배 끊으라는 말씀을 염불 하듯 하시던 어머니께 처음으로 효도를 했다. 아내에게서 "당신 참 대단하다"라는 칭찬을 처음으로 들었다. 이렇게 세상 사람이 다 끊어도 나는 못 끊을 것이라던 동료들의 부러움과 질시와 함께, ‘배우자가 바람피우는 것을 모르는 체하는 사람보다 더 독한 사람’이라는 금연자가 되었다. 악마는 봉인되어 땅속에 묻혔고, 주인공은 제 세상으로 돌아갔다.


  금연!

  그건 변화 없이 쳇바퀴 같았던 생활에서 굉장한 사건이었다. 날마다 몸은 날아갈 듯했고 술 마신 다음 날에도 숙취의 흔적 없이 단정하게 출근해 있는 나를, 사람들은 또 한 번 독한 사람의 범주에 넣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한방에 끊는다’라는 금연 법칙에 충실한 성공 체험을 수시로 자랑했고, 끊으니 세상이 바뀌더라는 말로 아직도 지옥에서 헤매는 골초들의 결심과 부아를 질러 놓곤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금연초기 술자리에서 거연히 일어나던 참을 수 없는 욕구에 금연초 한 갑을 두어 시간 만에 연기로 기화시키면서 버틴 경험도 있었다. 현상과 원인이 일치하는지는 자금도 알 수 없지만, 열흘 정도 후부터 갑자기 머리카락이 거의 빠지는 전두(全頭) 탈모 증세로 가발을 써야 하나, 휴직해야 하나는 고민까지 했었다. 모두 후일의 무용담이 되었지만.


  이렇게 새 세상을 만끽하며 보내던 이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따뜻한 봄날이었다. 어느 고객에게 문제가 생겼다. 우리 부서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고객과 내부의 꾸지람이 얼마나 심한지, 회사 앞 벤치에서 씩씩거리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던 차에 동료 한 분이 불쑥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거절을 못 했던 것은 당시 나의 분함과 억울함이 하늘을 찔렀던 걸까? 단 한 모금만으로도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쩌자고 꽁꽁 닫아놓은 악마의 봉인을 해제했는지…. 얼마 뒤 악마는 어느덧 나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두 번의 시도가 더 있었다. 두 번 다 반년을 넘지 못했다. 짧은 시간밖에 버티지 못한 것은 다 일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늘 긴장해야 하고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빨리 조치해야 하는 조급과 초조함이 다시 그것을 불러냈다. 그 질긴 욕구는 완전히 잠들지 않고 있다가 조그만 손짓에도 쉽게 깨어나 득달같이 안겨 왔다. 사실은 일을 핑계로 잠든 녀석을 내가 깨웠을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간 인연을 그리워하듯 나는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세 번의 실패 후, 아내의 잔소리에는 ‘회사 그만두면….’이라며 그날을 유예했다. 천둥벌거숭이같이 바깥을 쏘다니던 남자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측은했을까. ‘회사 그만둔’ 시간이 되었건만 웬일인지 일 년이 지나도 아무런 잔소리가 없었다. 남자가 아니라도 말에는 천금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은퇴 후의 늘어진 마음이 수시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그놈에게 기어이 틈을 보이고 말았다. 또 반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인생사 후회를 말하려면 몇 가지를 입에 담는다. 담배를 배운 것보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댄 것이 더 윗자리를 차지한다. 진로 선택의 후회 같은 것은 본디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는 보편의 명제이나, 다시 피운 일은 하지 않아야 할 후회였다.


  이제는 욕구라기보다 습관에 더 가까워진 흡연.

 ‘담배는 바보의 입을 막아주고, 철학자의 입에서 예지를 끌어낸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한 핑계도 철없던 시절에나 통할 말이다. 아직도 미련스럽게 이 ‘습관 물질’ 앞에서 날마다 항복하고 있지만,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 신화가 자주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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