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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Feb 03. 2024

암 환자가 생각하는 안락사

 몸에 이상을 발견하고 한 달이 지난날. 치료를 하루 앞두고 내가 들른 곳은 건강보험 센터 지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나중에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두는 서류이다.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다는 명제와 악용 시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인권주의자들의 반대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고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하에 도입되었다. 


 암 치료가 끝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유독 심했던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암 환자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는 상태가 되는 순간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제출을 미룬 대가는 미래의 나와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테니까.


 내 주치의 선생님의 블로그를 보면 사전연명의료 의향서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가 문제 될 정도의 상황이면 환자는 의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럴 경우 가족들이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가족들의 의견을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족끼리 송사가 걸리기도 한다. 


 그나마 이런 제도가 생겨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의 부담과 걱정이 덜어졌지만 갈 길은 멀다. 스위스에서 행해지고 있는 안락사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연관이 돼있다면 통증에 대한 공포는 오로지 나 자신의 문제이다. 말기 암 환자가 겪는 통증. 그 통증을 견딜 자신이 없다. 동시에 화가 난다. 내 통증을 경감시켜 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이 대체 무슨 근거로 통증 없는 내 죽음을 반대한다는 말인가? 생명의 소중함을 근거로 그런 것들을 반대하고자 한다면 환자들의 고통을 줄일 방법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니 안락사를 희망하는 환자는 해외 원정을 간다. 암 치료도 해외 원정, 안락사도 해외 원정. 왜 우리 국민들은 해외로 나가야만 하는 것일까? 스위스의 한 안락사 단체에 신청한 한국인이 1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몇 년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안락사에 대해 여론 조사를 시행했더니 찬성 의견이 80%가 넘었다고 한다. 고령화와 수명 연장이 진행되는 가운데 고통뿐인 삶에서 벗어나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픈 국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생명 존중이라는 허울뿐인 신념에 갇혀 어떤 실질적 도움도 주지 못하는 20%의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쉽게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단어. 생명과 죽음. 이제는 토론의 주제로 끄집어내어 더 활발히 얘기하고 결론을 지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암이 재발하여 통증에 너무 괴로울 때 내 고통을 줄여줄 제도가 어서 만들어 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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