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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Mar 16. 2024

선진국의 총리 부부도 선택한 안락사

 네덜란드의 전 총리 부부가 안락사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꽤 유능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현재의 아내를 만났는데 70년 동안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가 좋은 잉꼬부부라 할지라도 노화와 질병을 피할 순 없었다. 2019년 뇌졸중을 시작으로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진 그들은 결국 동반 안락사를 결정했고 손을 꼭 잡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부터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다. 안락사 신청자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2022년은 약 8천여 명이 신청, 전체 사망 중 4%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 조력사 합법화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작년 한국존엄사협회와 착한 법 만드는 사람들이 제출한 헌법 소원 청구에 대해 법원이 정식 재판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각하한 것에 비교하면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느린 속도일지라도 말이다.


 지난주에는 국회토론회가 있었다. 녹색정의당에서 주최하였으며 한국존엄사협회 및 변호사, 의사, 헌법소원 청구인, 장애인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가했다.


 몸이 불편해 직접 방송에도 출연하며 안락사 법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이** 환자분께서는 법제화 반대 측의 주장과 논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쉬운 언어로 반박했고 전적으로 동의했다. 반대를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상당히 추상적이다. 생명 존중.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하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생명을 존중하는 것인가?

 백보 양보하여 어떤 이유로든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동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생을 통해 극도의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그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하는가? 어떤 희생을 하는가? 반대를 위한 반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반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신념을 위한 반대. 그 반대하에 지금도 다수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3년 전 나는 암에 걸렸다. 비교적 상태가 좋았고 치료가 잘 된 편임에도 나는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 정도 고통은 인간이 죽음 앞에서 겪는 고통의 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나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고통이 얼마나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지 말이다.


 실무적인 이유로 인한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일단 안락사가 허용되면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점. 두 번째는 타인에 의해 안락사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그것이 법제화 반대를 위한 근거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세상의 모든 제도, 법은 어느 정도 불안정성을 안고 만들어지고 시행된다. 운영 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너무나 폐해가 클 경우에는 법을 수정하거나 폐지하기도 한다. 즉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의 핵심은 새로운 법이 악용될 가능성이 1도 없는가가 아니라, 해당 법을 통해 사회 문제가 해결되고 그 효용을 누리는 사람이 다수일 것인가이다.

 

 어떤 제도도 완전하지는 못하다. 제도가 완전해도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에 의해 부작용이 커지기도 한다. 전 국민의 80%가 안락사를 원하는 이 시점에서 아직은 불확실한, 또는 운영 중에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는 그런 문제들로 안락사 법제화라는 이 거대한 흐름을 계속 막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인지 의문이 든다. 


 다수의 국가, 특히 서구 국가에서 안락사의 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생명을 경시해서 그렇게 하는 걸까? 아니라고 본다. 과거 우리는 서구의 개인주의를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도 관습도 문화도 생명에 대한 인식도 계속 변한다.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될지 생각해 보자. 단,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지는 말자. 그 고통을 대신 겪어주거나 경감시켜 주거나 그 비용을 보전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고통받고 있는 자들에게 생명이 소중하니 계속 그 고통을 겪으라고 말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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