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마음을 바꾸지 않을 건가요?”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그녀의 아들과 딸이 다가온다.
짧은 대화와 포옹. 그들은 안다. 지금이 엄마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 의사의 질문이 이어진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생년월일은요?”
“라이프 서클에 오긴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정맥 주사 바늘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이 주사액 밸브를 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지금 죽음을 원하신다면 스스로 주사액 밸브를 열어도 좋습니다.”
그녀는 의사의 설명대로 손에 힘을 주어 힘겹게 밸브를 돌린다. 약물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자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한결 편안해진다. 옅은 미소와 함께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새롭고 꿈과 사랑, 열정으로 가득했던 소녀 시절.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서툴지만 하나하나 시도하며 고민하고 방황하던 청년 시절.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녀들을 키워야 했던 즐겁고 행복하지만 힘들었던 시간들.
그 안을 가득했던 기쁨, 쾌락, 행복, 사랑, 원망, 증오, 시련, 모든 것들이 한 줌 먼지가 되어 이제 사라지려 한다.
빨라지는 호흡. 더욱더 불안정해지고 내쉬는 소리가 커진다.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한 그녀의 선택은 결코 한 순간에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선천적 질병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움직일 수 없게 될 거라는 것을. 그 고통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에게 까지 나눠져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단호했다. 지치지 않고 그녀의 남편, 아들, 딸, 이웃을 설득했다.
그녀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녀가 세상에 더 머물러주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 선택을 존중하기도 했다. 그녀가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든지 선택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해주었지만 그녀는 확고했고 결국 그녀의 의지대로 마지막을 마주했다.
다큐멘터리 “우아한 죽음”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을 스스로, 더 빨리 떠나고 싶지는 않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차라리 죽여달라’고 울부짖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치료 불가능한 질병으로 극악의 고통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다.
다수의 선진국들에서 조력사(안락사)가 도입되고 있다. 사회가 충분히 성숙했기에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의사의 판단이 필요하다. 정말 회복불가능한지, 고통이 삶을 포기할 정도로 심한지.
‘우아한 죽음’에서 안락사를 진행한 의사는 말한다.
“안락사가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오는 환자들은 스위스까지 이동할 수 있는 시기에 안락사를 진행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빨리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많은 국가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되는지 내가 관심 갖는 이유이다.”
얼마 전 국내 한 방송국의 시사 프로에서 안락사하기 위해 스위스에 다녀온 가족을 취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조력사, 안락사가 불법이기에 극도의 고통을 겪기 어려운 말기 환자들은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도 스위스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국민의 안락사에 대한 찬성 의견은 80%. 나머지 20%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안락사가 합법화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다시 국민 청원 동의를 시작했다. 5만 명이 넘으면 국회 소관위로 회부되어 더 신속하게 진행된다.
4000만 명의 찬성 의견을 가진 국민들 중 5만 명(1%도 되지 않는다.)만이라도 동의해 주셔서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나라를 만들면 좋겠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14CBB7A970896B3DE064B49691C1987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