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존중'입니다.
프리랜서 구성작가로 일하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어느새 클라이언트의 아이디어가 되어 있는 순간.
물론, 그 아이디어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이 무너진다.
그 생각을 처음 꺼낸 건 나였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자료를 찾은 것도,
밤을 새워 데이터를 뒤진 것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단어를 채워간 것도 나였는데….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클라이언트의 이름 아래
그의 성과로 남는다.
누군가의 경력을 빛내 주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나 역시 그 가치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성과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성과의 도구로 여겨지고
성과의 재료로만 쓰이는 현실이
마음 한 켠을 쓸쓸하게 한다.
그 쓸쓸함 속에서,
많은 프리랜서 구성작가들이 오늘도 버텨내고 있다.
홍보나 교육용 영상을 주로 써왔기에,
TV나 OTT 콘텐츠처럼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일은 드물다.
처음부터 그런 줄 알고 시작한 일이었고,
결과물에 이름 하나 남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와 문장 하나하나에는
누군가의 진심이 담겨 있기에,
그 마음만큼은 가볍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나의 바람이,
그저 '바람'으로만 끝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나는,
일이 주어지면 다시 노트북을 켠다.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기획안을 작성하고,
촬영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무엇보다,
이 일이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전심을 다한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누군가의 성과 뒤에
지워지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며,
내가 쓴 글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다.
내게 주어진 ‘작가’라는 이름을 소중히 여기며
나의 일과 삶,
그 사이를 ‘기록’으로 채워가는 사람.
나의 감정이나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에서 비롯된 생각을 담고,
그렇게 써 내려간 한 문장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나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증명하고,
나를 지키며,
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한다.
한 줄의 자막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정을 거쳤는지,
한 편의 오프닝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몸부림쳤는지를.
그리고 나는,
그 누구보다 ‘나의 과정’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저작권을,
‘법’보다는 ‘존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아이디어에 이름표를 붙일 수는 없더라도,
그 생각을 낸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지 않을까.
나에게 저작권은,
대단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진심을 기억하고
수고를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그 창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숨을 불어넣은 사람은 단 하나다.
그리고 나는
그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지워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