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껀 이도저도 아닌데.
여기서 이 얘기 이미 몇 번 한 것 같지만, 조직 밖 노동자가 된 이후로 인스타그램이 일기장이 아닌 포트폴리오처럼 느껴져 매번 뭘 올려야할지 고민이다. 완벽하게 정제된, 무슨 포스팅을 열어서 봐도 이 사람의 능력이라든가 개성이 뿜어져 나오도록 큐레이팅해야 한다는 압박이... 누가 대놓고 주는 압박은 아니지만, 아마 팔로워들의 소식이 올라오는 뉴스피드 말고 인스타그램 추천 게시물 탭을 구경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이미 수천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첫인상부터 갓-벽하게 모양을 갖춘 계정들이 거기에 뜨니까. 그걸 굳이 하나씩 눌러보고 굳이 움츠러드는 나.
그래서 요즘은 그런 계정을 발견하면 맨 아래까지 스크롤을 해서 가장 첫 게시물을 찾는다. 그런 대단해보이는 계정도 분명 시작만큼은 미약하지 않았을까, 이런 희망을 얻고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계정들이 진짜 그렇다. 평범한 일상 계정에서 시작하거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컨셉을 시도하다가 중간 중간 바꾼 흔적이 보인다. 뭐, 시작도 끝도 미약한 일들이 성공한 일보다 훨씬 더 많을 거고 나 역시 대단한 인플루언서가 되는게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된다. 과정 자체를 목표로 두고 쌓고 쌓다보면 지금과는 다른 곳에 도달해 있겠지. 길이 뚫리겠지. 그런 생각이라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돈 주고 인스타그램 마케팅 강의 끊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