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연 Aug 30. 2024

가'족'같은

가 '족'같은


가족이라는 이름이 무거운 순간이 있다.


'어느 집이나 근심이 있고 걱정거리가 있다.'라는 사실이 위로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어깨에 짊어진 나의 짐들이 너무 무거워서 앞을 향해 한걸음 내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짐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떠나지도 못해 그저 그 자리에서 견디고 있을 때가 있다.


머릿속에는 온통 '왜 하필 나일까?'라는 답 없는 물음만 가득하다.

캔디가 되기엔 내 명랑함이 부족하고 내 선한 마음도 부족한 것 같다. 애매하게 착하고 애매하게 독한 그런 사람이 나다. 웃으며 진심으로 '괜찮아요'가 되지 않는다. 애써 웃으려 노력할수록 어색한 미소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


가족이라서 더 이해가 되지 않고 웃으며 넘어가지지가 않을 때가 많다. 남들에게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큰 그릇처럼 보이지만 정작 내 가족에게는 간장 종지보다 작은 사람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흐트러진 모습은 왜 이토록 보기가 힘든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원망과 비난이 섞인 말들을 내뱉게 된다.


이상하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으면서 상처 주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이 생긴다. 내가 힘든 걸 숨기고 싶은 마음과 누구보다도 내가 힘든걸 잘 알고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 이 두 가지 모순된 마음이 나를 괴롭힌다.


나 자신이 별로인 사람이 된다는 걸 용납할 수없어 발버둥 치지만, 사실 나는 참 별로인 사람이었던 거다. 대단한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게 뭐라고 인정하는 게 이렇게 힘들었을까.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나의 심연에 있던 죄책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가족이 '나'그 자체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나 자신한테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건 맞지만, 먼저 내가 잘 살아가야 소중히 여길수도 있는 것이다. 나를 갉아먹으면서 버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쓸모없는 부러진 의자 밖에 되지 않는다. 때로는 넘기는 무심함이 필요하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자는 게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 태산처럼 보였던 것들이 좀 떨어져서 보면 티끌보다 작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