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파란 하늘 아래 끝을 알 수 없는 초원을 그린 그림에 애매한 위치에 꼬깔콘이 불쑥 그려져 있다. 부서진 문짝이 서있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뒷모습의 사람. 궁금증이 폭발한다. 이들의 관계도 작가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자신만의 그림체를 가지고 캔버스 위에서 자신의 상상과 철학을 실현시키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물론 답은 없다. 열린 결말의 영화와 같이 우리의 상상력을 그는 더 궁금해한다. 그는 채지민 작가이다.
관계성이 옅은 존재들로 긴장감을 만들고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작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찬사를 받은 채지민 작가는 명품 브랜드에서나 있을법한 오픈런을 키아프에서 실현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작가 채지민을 오투오 매거진이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Q: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기쁘다. 오투오 매거진의 독자분들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한다.
A: 네. 반갑습니다. 유화라는 재료를 통해서 공간감, 물질적인 평면성으로 이상한 장면을 만드는 작업을 좋아하는 작가 채지민입니다.
Q: 어색하다. 친한 축구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낭만적인 인간이자 형인데 작가로서 인터뷰라니.
A: 나 또한 그렇다. 근데 당신이 먼저 요청했잖아(쑥쓰)
Q: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키아프가 성공리에 끝이 났다. 거기에서도 인기 작가로 소문이 자자하더라. 작가님의 그림을 위해 오픈 런을 했다고 하던데 요즘 인기를 체감하고 계시나요.
A: 네 쑥스럽지만 많이 찾아주시고 하셔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그림을 찾아주는 부분도 신기하고 감사하다. 요새 행복하다(웃음)
Q: 그럼 개인적 질문이 하나 있다. 보통 인기 작가는 VIP라 불리는 분들이 있던데 누가 있나. 그냥 개인적 궁금증이지만 많은 독자분들도 내 마음과 같을 거다. 이니셜로 해주셔도 좋다.
A: 음 조금 예전에 들었던 거 같긴 한데 유명하신 분이라고 코멘트하겠다. 제가 인지도가 별로 없을 때 찾아주셔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림 보는 안목이 있는 분들이라고 얘기 들었다(웃음)
Q: 정말 본론으로 돌아와 작가님은 언제 그림을 시작하였나.
A: 3세부터 시작했다. 진심으로. 그때부터 크레파스를 쥐여주면 도화지로 벽을 다 메울 만큼 열정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약간의 소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주야장천 그림을 그리니 아무래도 부모님이 그 노력이 가상해서 서포트를 해주신 것 같다. 본격적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다. 남들보다는 조금 빨리 시작했던 것 같다.
Q: 그럼 보통 일반적인 미술을 전공하고 입시를 치렀을 거다.
A: 아주 보통의 코스를 밟고 대학교를 진학했고, 졸업을 하고 젊은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큰 벽들이 너무 많더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초창기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았던 것 같다. 편안하고 익숙한 한국이라는 환경보다는 해외 나가서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서 여러 방법을 찾았고 부모님과의 대화 이후로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Q: 영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A: 오롯이 내 그림만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림을 쉬지 않고 그렸다. 물론 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의 피드백도 당연히 도움이 되고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내 그림만 생각했던 것들이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마 영국이 아니었어도 상관은 없었을 것 같다.
사실 유학을 결정적으로 가게 된 계기는 내가 그렇게 생기지 않았지만(웃음) 남이 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신경을 많이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내 그림에 자신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때 상대적 박탈감, 자격지심 같은 것들도 느끼는 나를 보게 되더라. 그래서 유학을 생각했고, 이런 요소들이 영국에서는 다 사라지고 나니 너무 홀가분하고 좋았다.
Q: 영국에서도 전시를 하지 않았나.
A: 물론. 졸업 전시는 해야 하니까. 그전에 경험담 중에 하나는 택시를 탔는데 그 드라이버 분과 얘기를 나누던 중 미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니 최근에 본 전시에 대해 얘기해주고 본인이 좋았던 전시도 추천해 줬다.
이렇듯 영국에서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결로 대학생들의 졸업전시는 엄청 큰 지역 이벤트다. 대학생이라기보다 젊은 아티스트의 학교 졸업작품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이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 그 졸업전시회는 다양한 사람이 많다. 갤러리 관계자, 큐레이터, 미술 애호가들로 가득 차는데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과 개념에 있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졸작 이후 기회가 더 있었지만 시기가 안 맞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Q: 보통 그림을 그릴 때 주제와 소재는 어디서 찾나.
A: 이상한 장면의 자체, 이상한 상황을 내 그림을 통해서 제시하는 게 목적이고 큰 의미로는 주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이상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등의 장면을 만들어 궁금을 일으키는 것이 훨씬 나는 좋다.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해주시는 게 너무 재미있다.
Q: 요즘에 집중하고 있는 벽, 면, 청둥오리 등은.
A: 장면에 있어서 극대화하기 위해서 쓰이는 도구인 것이다. 쉽게 말한다면 청둥오리와 사람이 있다면 화면에서 어우러지게 있다기보다 좀 생뚱 맞거나 이해가 안 되는 배치로 인해 관계성에 대해 생각하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도구인 거지.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Q: 전시의 타이틀도 있지 않은가.
A: 이전까지 타이틀은 내용을 지칭하지 않았다. 내용을 보여주는 함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좀 더 범위를 넓혀서 타이틀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들판에서>, <Select Scene>이 있다. 전체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에 있어 그 관계에 대해 보여주길 바란다. 사람의 눈을 안 보이게 하는 데에도 그러한 이유들이 있으니.
Q: 본인이 출연한 적도 있나.
A: 있죠 몇 번. 많지는 않지만. 보통 찍은 사진으로 그리지 않는데 어떤 장면을 구상할 때 그 해당되는 몸짓이나 동작이 있다. 제스처 같은. 정말 안 하지만 꼭 필요할 때 내가 아주 가끔 출연을 하기도 한다. 힘만 잘 배분한다면 아주 표준이자 일반적인 보디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웃음) 가끔 알아보시는 분도 있지만 개의치 않아요.
Q: 일반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감수성이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 분들은 어디서 어떤 자극을 받나. 필요하다면 만들기도 하나.
A: 개인적으로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그림을 그리는 편이다. 타 작가분들보다는 덜 감성적 작업의 형태인 것 같다. 하지만 주신 질문에 내 기준으로 빗대어 생각해 본다면 아주 예전부터 크게 작용했던 쨍한 하늘이 나에게는 첫 ‘자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무한한 공간이지만 시각적으로 우리에게 평면으로 보이니까. 이런 부분이 캔버스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캔버스는 완전한 평면인데 우리는 그림을 볼 때 가상의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나. 요즘 일상생활에서는 다양한 사진을 찍는 것 같다. 인물이기도 하고 사물, 자연이기도 하다. 그리고 컬러감이 돋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저장해두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갤러리에 내 완성한 작품이 걸려있을 순간을 생각하면 엄청난 자극을 받는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행복하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것이죠 제대로. 그래서 더 열심히 작업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Q: 근래에 예술 산업이 빠르게 커져가고 있다.
A: 저는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거품. 미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의 관심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만 이 과정을 겪고 지나가야 거품이 잔잔히 가라앉으며 멋진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고 곧 개인전 <Walk Stay Gaze> 이 성수동 아틀리에 아키 갤러리에서 열리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