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놀리면 안 되는 열여덟 살의 열정
18세를 생각하면 젊음, 청춘, 고등학생, 선거권 등 다양한 단어와 수식어들이 따라온다. 이제 만 18세는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법적으로는 아직 미성년이지만 곧 성년이 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자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나이인 것이다.
한편 요즘 중, 고등학생들의 콘텐츠를 보고 있자면 나는 저 나이 때 뭘 했나 생각이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적 요소를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감 있게 표현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드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문화 자체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도 한때 나만의 취향을 하나 둘 만들어가는 시간이 있었다. 18세보다 약간 어렸던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집에 수북이 쌓인 패션잡지를 보고 또 보고 그러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더 넓은 정보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접한 것이 스트리트 컬처였다.
나는 그 당시에 유행했던 폴로셔츠에 면바지 그리고 닥터마틴을 신는 모범생 스타일보다 힙합이나 스케이터같이 날 것의 냄새가 나는 것이 좋아했다. 특히나 스케이트를 좋아했는데 트릭을 성공하기까지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어쩔 땐 앞니도 날아가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날들이 부지기수이지만 나는 그런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들이 입은 티셔츠,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도 스케이트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주류의 문화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듯하다. 특히나 성인이 되기 전, 책상에서 책과 씨름해야 하는 학생 신분으로는 좀 더 접하기 힘든 문화일 수 있다.
그런데 고등학생의 나이로 스트리트 컬처를 향유하고 자신들만의 개성이 넘친 아트웍을 선보이며 향후 컬처 씬의 트렌드세터가 될 재목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풀보이와 프레쉬매니악이다.
브랜드 ‘풀보이(poolboy)’와 프레쉬매니악은 힙합과 스케이트와 같은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가까운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며 어패럴, 아트웍, 음악 등 만들며 문화를 즐기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이답게 어리숙한 말투로 인사했지만 자신들의 소신은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풀보이의 최재혁과 그의 친구 프레쉬매니악의 김민재를 소개한다.
Q: 안녕하세요. 어색할 수 있지만 ‘풀보이(poolboy)’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같이 온 친구 소개도 같이.
P: 안녕하세요.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고 있는 최재혁입니다. 아직은 조그마하지만 서브컬처 기반의 풀보이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같이 온 친구 이름은 김민재, 브랜드 ‘프레시매니악(@fresh_maniac)’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랑 형제처럼 지내는 마리오 브라더스 친구예요.
Q: 시험 기간이었다고 들었는데 잘 봤나. 정확하게 몇 살인가.
P: 정확하게 18살이에요. 좀 있으면 대학 진학도 고민해야 하는 고2입니다(웃음) 사실 전 원래 공부를 아예 안 했어요. 공부가 정말 싫었거든요.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공부시키는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했었거든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철없을 때 한 생각이네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건 고2 올라와서였는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했죠. 아무리 내가 하고 있는 게 있어도 떳떳한 아들로 남고 싶었어요. 비록 한 과목뿐이지만 전교 8등도 해보고 지식도 많이 생겼던 거 같아요 첫 공부 치고 나쁘지 않은 시작 같네요.
Q: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풀보이의 시작하게 된 계기나 시기, 동기부여 같은 것들이 궁금하다.
P: 사실 풀보이를 설명하려면 풀보이가 생기기 3년 전부터 돌아가야 해요. 풀보이 이전부터 많은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정착했던 것이 풀보이거든요.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인 것 같아요. 래퍼들과 스케이터들이 모여서 자기 친구들끼리 옷을 만들어서 나눠 입고 나와서 멋지게 랩도 스핏하고 스케이트도 타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번 멋들어지게 한번 해보자란 마인드로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가 풀보이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Q: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문화를 접하고 교류하는 것이 너무 좋아 보인다. 좋아하는 문화에 대해 설명해달라. 한 두 개가 아닌 것이 느껴진다.
P: 제가 좋아하는 문화는 단순한 서브컬처라고 표현할 수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문화는 저에게 진정성과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땅 같은 존재예요. 정말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문화인 것 같아요. 평범하던 사람들도 랩을 할 수 있고, 스케이트를 타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향유하던 문화가 자신의 일이 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가며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들과 차별점을 둘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전 이 문화를 소개할 때 좋아한다고 말 안 해요. 전 진심으로 이 문화를 사랑하거든요. 맥락은 비슷한 단어지만 받아들여지는 건 달라요. 전 진심으로 이 문화를 사랑하고 즐겨요.
Q: 좋아하는 문화를 보며 풀보이에 대한 계획들이 세워지고 론칭을 하게 된 건가.
P: 네 맞아요. 풀보이를 통해서 이 문화를 대변하고 싶었거든요. 단순한 옷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집단으로, 언더그라운드 컬처의 종사하는 사람들이 즐길 거리와 리스펙을 표하면서도 주류문화에 순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신도 담고 싶었어요.
Q: 브랜드명을 풀보이로 지은 사연이나 이유가 있나.
P: 풀보이는 말 그대로 직역하면 “수영장 소년”이에요. 하지만 모든 단어에는 속 뜻이 있듯이 풀보이란 네이밍에도 속 뜻 이 있어요. 직역하면 수영장 소년이지만 속 뜻에는 “어릴 때부터 집안이 가난해서 부잣집의 수영장을 청소해 주는 어린아이”를 뜻해요. 이 속 뜻으로 인해서 사회적 문제와 당연한 듯 여겨지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되게 재미있지 않나요? 풀보이란 이름은 단면적으로 바라보면 가볍고 위트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속 뜻을 알게 되면 심오해져요. 일부로 의도한 장치 같은 느낌인 거죠 이스터에그처럼
Q: 풀보이 그래픽&이슈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영감을 받은 그래픽이나 이번 친구 브랜드와의 콜라보 작업 같은.
P: 제가 영감을 받는 그래픽 스타일은 그라피티나 힙합 커버에서 많이 나와요. 정돈은 되어있지만 질감이나 기타 부수적인 요소가 날 것의 느낌이 나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단순히 그래픽에만 극한 하는 것이 아닌 여러 방면으로도 영감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만화와 소설을 좋아했었는데 글을 읽거나 만화를 볼 때도 영감을 받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사를 곱씹어 보면서도 스케치를 구상해요. 이리저리 여러 방면으로 영감을 얻고 있어요. 친구 민재와 같이 진행하는 그래픽 디자인 같은 경우는 되게 즉흥적인 부분이 많아요. 둘 다 활동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쳐서 즉흥적으로 마구 튀어나와요. 민재랑 진행했던 후드 같은 경우가 그래요. 예전에 민재가 스케치했던 그림을 보고 제가 같이 하나 하자고 해서 즉흥적으로 만들게 된 디자인이에요. 민재와 작업을 할 때는 민재가 그림을 맡는 지분이 많아요 얘가 그림을 진짜 기가 막히게 그리거든요.(웃음과 엄지 척) 전 옆에서 아이디어와 그라피티 같은 타이포 그래픽을 맡고 있어요.
Q: 풀보이의 반응은 괜찮나.
P: 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비해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은 정말 많아져서 감사드리지만 확실히 생존과 관련된 것은 돈인 것 같아요. 투자한 만큼의 원금이 회수되지 못하니 가끔 애간장 탈 때가 있어요. 원래 돈을 보고 접근한 목적은 아니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 변함없지만, 생각해 보면 제가 더 멋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도 돈 때문에 제약이 생길 때가 많아요. 그래도 다들 관심 가져주시고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죠.
Q: 홈페이지를 보니 매거진을 운영하는데 의도가 궁금하다. 그리고 인터뷰이를 선정 기준은?
P: 이 문화는 정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정말 재미있는 문화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구나 가볍게 볼 수 있게끔 매거진을 설립해 이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리고 온라인이 발달된 이 사회 속에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대화하고 여러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 재밌고 짜릿했거든요. 인터뷰이 선정 기준은 저랑 비슷한 나이대에서 멋진 것들 하는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우선 기준점으로 잡고 있어요. 하지만 꼭 비슷한 나이대가 아니더라도 제 기준에서 멋진 사람들이면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Q: 인디문화 즉 독립문화,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친구들이던데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도 찾기도 하고 소개도 받나.
P: 제 성격상 사람 만나는 걸 매우 좋아했어요. 아무리 소셜미디어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실제로 만나는 것과 온라인으로 대화해 본 관계의 사이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 실제로 만나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타입이라 행사도 막 졸졸 따라다녀보고 사람들 만나는 것에 겁 없이 살았었어요. 그렇게 했더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커뮤니케이션도 되고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사람도 알게 되면서 거미줄 같은 커뮤니티가 형성이 됐어요.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그렇지 전 돈으로 주고받는 관계는 싫어요. 사람의 관계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인 거 같아요. 돈은 그다음의 부수적인 요소이고요.
Q: 나는 기성세대와 다를 게 없는 나이라 그런지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뭔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인다. 가볍고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부분만 쫓아가는 느낌이 강한데, 그렇게 노출되는 그것이 돈을 버는 시스템으로 이어지고 있는 부분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P: 솔직히 그리 달갑진 않아요. 어떻게 보면 돈을 굴리는 머리는 똑똑하다 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론 자극적인 것을 쫓다 보니 본질적인 요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지거든요. 그런 행동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잠시 일시적인 현상으로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들이 멋있어 보이는 시대가 있겠지만 결국은 지나갈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고, 아무리 시대가 지나도 왜곡되지 않는 역사에는 본질적인 요소가 있거든요. 일종의 유명세냐 아님 흔들리지 않는 진실과 본질이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돈은 생존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돈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진실과 본질은 팔 지 않았음 싶어요.
Q: 우리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
P: 풀보이팀 친구들을 추천해 주고 싶어요. 브랜드 ‘프레시매니악’을 운영하면서 항상 그림자같이 함께 해주는 든든한 민재, 랩도 멋있게 뱉고 생각도 멋있는 민성이 명재, 자기 스타일 엄청 확실한 율이, 자기 꿈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경민이 이 친구들은 서로 힘들 때도 행복할 때도 같이 있었던 친구들이에요. 단순히 저희는 비즈니스로 이어진 팀이 아니에요. 말만 가족이 아닌 서로 아끼면서 멋진 거 하는 팀이니까 다들 관심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친구가 아니더라도 정말 고마운 형들도 이 자리 빌려서 이야기하고 싶네요.
풀보이 초창기부터 도움 주신 언레스트 형, 사이먼 프로덕트 정희 형 매번 흔쾌히 도움 주시고 좋은 기회 만들어주시는 근남이형, 다윗형, 진무형, 믹샘 형과 주변 수원사람들 다들 너무 감사드리고 멋지신 분들이에요. 감사합니다 다들!
Q: 아티스트를 서포트하는 포스티스 입점하게 된 계기와 인상은 어떠한가. 나는 이런 편집숍들이 많아졌으면 하는데.
P: 입점하게 된 계기는 위에서 말한 언레스트형의 도움이 컸어요. 말해주신 형과 풀보이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입점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 입점 문의 문자 왔을 때 놀라서 밖에서 소리 질렀었어요.(웃음) 너무 감격스러웠죠. 혼자서 끙끙 앓다가 드디어 누가 날 알아봐 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휴먼트리, B.A를 직접 사 입고 몸으로 느끼진 못 했지만 근남이 형은 잘 알고 있었어요. 여러 매체 통해서 찾아봤었고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본받고 싶다고 느낀 사람이 먼저 이렇게 제안을 해준 것에 대해서 아직도 얼떨떨해요. 저도 포스티스 같은 샵의 분위기를 매우 좋아해요. 가식적인 꾸밈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채운 분위기부터 절 자극시켰어요. 한국에도 이런 숍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Q: 어린 나이에도 대단한 것 같다. 그래픽도 하고 브랜드도 만들고. 스트리트 컬처의 새로운 ‘루키’ 느낌이 난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P: 루키라고 생각해 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그냥 아무 탈 없이 날 기대해 주는 사람에게 실망시키지 않고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디자인과 학업적인 부분에서 모두. 하다 넘어져도 언제든지 아무렇지 않게 흙먼지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돼서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재미있고 멋진 것들을 준비 중이니 다들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좋은 눈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