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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Oct 19. 2023

바닷물의 습격

연재소설

석한풍을 사막에 묻고 담맘 호는 항해를 계속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2월 중순 어느 날.

최 소장과 2공구 심 공구장이 나누는 대화가 무길의 귀를 당겼다.


  “나중엔 별일을 다 보네. 사막에서 물이 새들어와 골치를 썩일 줄이야.”

  최 소장이 기가 찬 듯 입맛을 다셨다.

  “죽어라 하고 굴착해 놓으면 그놈의 물이 차고앉으니 어떻게 할 방도가 있어야죠.”

  심 공구장이 낭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공구 작업장은 동쪽 첫 번째 도로로 해변에서 제일 가깝긴 했지만, 바다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바닷물이 스며드는 건 생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어쩌겠나. 모래주머니로 막고 배수펌프로 퍼내야지.”

  최소장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10년간 금연했다는 그가 언제부턴가 아예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앞으로 계속 해변 공사니 죽을 맛이네요.”

  “그러게 말일세. 바닷물과 전쟁을 치러야겠군. 당장 내일이 근로자 휴일이니 오늘 단도리를 해놔야 하잖나.”


  최 소장이 박 차장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박 차장, 들었지? 배수펌프하고 마대, 오전 중으로 조치하게.”

  무길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마대를 어디서 구하지? 자재골목을 그렇게 쑤시고 다녔지만 마대 파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든 구해 봐. 우물가에 와서 숭늉을 찾아도 내놔야 하는 게 구매자의 역할이야. 본사에 반출 요청을 하겠지만 본사 물량 올 때까지 땜질하는 건 자네 몫이야.”

  난감해하는 무길에게 박 차장이 말했다. 그리곤 혼잣말을 했다.

  “현장에서는 속 모르고, 돈 가지고도 못 사 오느냐고 아우성이니······.”     



 

박 차장 말을 뒤로하고 무길이 사무실을 나섰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막연한데 오전 중으로 사 대라니 이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는가.     


우선 알 호잔에서 배수펌프를 구매한 다음, 담맘 일렉트릭 하우스로 향했다. 답답할 때면 찾는 곳.

그가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서자, 계산대 앞에 있던 오마르가 흠칫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곤 구트라(머리에 두르는 두건)로 눈가를 훔치고 서먹한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침울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오마르, 무슨 일이라도 있어? 오늘은 평소의 오마르 모습이 아닌걸.”

  오마르는 묻는 말에는 답을 않고 무길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물었다.     

 

  “쌕(sack)이라··· 구매자들이 찾지 않는 물건인데 이곳 사람들이 그런 걸 쓸 일도 없으니.”

  무길의 말을 듣고 난 후 답하는 오마르의 눈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오마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야? ”

  “별일 아니야. 몰라도 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은 그게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봐.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속에 있는 걸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대.”


  무길의 말을 너무 무시할 수도 없었던지 그가 입을 열었다.

  “나, 그동안··· 말은 않았지만··· 팔레스타인이야.”

  순간 무길은 평소 오마르 주위에서 어른거리는  어두운 그림자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아, 그랬구나. 난 전혀 짐작을 못 했는걸.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어?”

  “오늘이 아버님 기일이야. 생각은 간절한데 고향 땅엘 가지 못하네.”

  그가 길게 한숨을 흘렸다.


팔레스타인! 조국을 잃은 사람들. 자기 고향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사람들.

무길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슨 말이 든 해야겠는데 도무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얼마 후 무길이 궁색하게 입을 뗐다.

  “나는 두 국가 간의 문제는 자세히 모르지만···오마르 입장이라면, 어떻게든 싸워서 잃은 것을 되찾아야겠군.”

  무길은 기독교인이지만, 지금 오마르의 일은 종교 이전에 한 인간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그들은 미사일과 최신 전투기로 무장하고 있어. 우리는 기껏해야 대포밖엔 없는걸. 어린애와 어른 싸움이야.”

  “그럼 힘을 길러야지. 그들과 대적할 수가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지.”

  “···그래야겠지.”

  오마르의 음성이 공허하게 울렸다.

  “우리도 과거에 식민지를 살았지만 독립했고, 이제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힘쓰고 있어.”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부러워. 당신들은 대단한 나라를 만들 거야. 우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잖아.”

  그는 초점 잃은 눈으로 무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얼마 후 마음을 추스른 오마르가 까와(사우디 차)를 내놓으며 말했다.

“잊을만하면 훼방꾼이 하나씩 나타나는군. 꼬마전구에, 암반에, 워닝테이프, 이번에는 바닷물까지···

그래도 말썽꾸러기 꼬마들은 요즘 조용한가 보지? 애들 장난감을 찾지 않으니.”

“웬걸, 직원들이 돌아가며 야간 보초를 선다네.”

“아하, 그렇게 된 거야? 한데 꼬마들이 안 됐군. 신나는 놀 거리였는데 말이지. 하하.

그건 그렇고, 쌕은 어떡한다?”


  그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문뜩 생각난 듯 말했다.

  “펩시콜라 총대리점에 한번 가 보지. 콜라 박스를 쌕에 담아 운송하는 거 같던데.”

  “그래,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무길이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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