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의 탑승 가능 인원은 두 발의 넓이로 측정되는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는 강남 직장인이 아니며, 차로 출퇴근합니다.)
360번 파란색 버스가 저만치에서 보인다. 익숙한 나의 출퇴근 버스다. 시력이 2.0이나 되는 나는 오르막을 달려오는 버스의 유리창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타고 있는지를 가늠한다. 앞문 주변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쩐지 버스 배차간격이 좀 길다 싶었다. 앞 버스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버스를 타면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지만 이렇게 배차간격이 벌어지면 여지없이 지옥 버스를 만나게 된다. 360번 버스는 여의도에서 출발해 신길역, 노량진역, 흑석동, 고속터미널을 지나 집 앞 영동사거리 정류장으로 온다. 영동사거리 다음 정류장은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논현역, 신논현역, 강남역. 강남 직장인들의 출퇴근 격전지다.
앞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붐비면 버스 기사님들은 뒷문만 연다. 뒷문은 타려는 사람과 내리려는 사람들의 힘겨루기로 아수라장이 된다. “좀 내릴게요.” “아, 내리면 좀 타라고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한껏 짜증이 묻어난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아씨!” “뭐야!” 등의 공격적인 소리를 내뱉는다. 출퇴근 버스에서 별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는 마지막으로 뒷문 계단에 한 발을 내딛는다. ‘타지 말까.’ 하는 유혹이 마음속에서 솟구치지만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 무조건 지각이다. 팀장에게 아침부터 잔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내가 올라서야 뒷문이 닫힌다. 열려있는 뒷문 때문에 울리는 “삐~” 하는 경적음을 재빨리 잠재워야 한다. 꾸물대면 사람들은 “내려요.”, “다음 차 타요.”라며 나를 몰아세울 것이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나는 재빨리 계단 위로 까치발을 딛고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는다. 발은 올렸지만 몸을 밀어 넣을 공간은 전혀 없다. 나는 등을 둥그렇게 말고 활처럼 버스에 매달린다. 버스는 참 신기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두 발을 바닥에 딛고 있지만 자신의 몸을 둘 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버스의 탑승 가능 인원은 두 발의 넓이로 측정되는 것일까? 나는 내 몸이 두 발보다 큰 것이 슬퍼진다. 버스가 자꾸 신호에 걸린다. 인중, 겨드랑이 그리고 등에서 삐질삐질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아침의 샤워가 무의미하다. 찝찝하다. 그러나 옷을 벗을 수는 없다. 나에게 그런 넓은 공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음 정류장에 내리려는 사람들이 뒷문 쪽으로 밀고 나온다. 나는 내렸다가 다시 타야 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안으로 파고들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을 위해서는 내렸다가 타야겠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못 탈 확률이 상당하다. 물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밖으로 밀려나갈 확률도 만만치 않다. 나는 눈을 감고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며 내가 친절하고 교양 있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출근은 하기 싫은데 빨리 회사에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아이러니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