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확신이 외면한 진실
- 전문가의 오만이 부르는 비극과 '제멜바이스 반사'
1840년대 오스트리아 비엔나(Wien) 중앙병원 산부인과 병동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곳이었다. 아이를 낳은 산모들이 고열에 시달리다 죽어 나가는 '산욕열' 때문이었다. 당시 의학계는 이를 '나쁜 공기'나 '신의 섭리' 탓으로 돌렸지만, 젊은 의사 제멜바이스는 의심스러운 현장을 목격한다. 의대생들이 관리하는 제1병동의 사망률이 산파들이 관리하는 제2병동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그는 치밀한 관찰 끝에 결론을 내린다. 해부용 시신을 만지던 의대생들이 손을 씻지 않고 곧장 산모를 진료하면서, 시신의 부패한 독성 물질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염소액으로 손을 씻으라"는 단순한 처방을 내렸고, 사망률은 즉시 10분의 1로 격감했다. 인류를 구할 위대한 발견이었으나, 돌아온 것은 찬사가 아닌 차가운 조롱과 멸시였다.
- 기득권의 야만: "우리가 살인자란 말인가?"
동료 의사들이 제멜바이스를 공격한 이유는 그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주장이 그들의 자존심을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그의 가설이 맞다면, 고귀한 의사들이 그동안 수많은 산모를 죽인 장본인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손이 더럽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제멜바이스를 미친놈으로 몰아세우는 쪽을 선택했다.
시스템의 권위가 위협받을 때, 집단은 진실을 수용하기보다 진실을 말하는 자의 인격을 파괴함으로써 시스템을 방어한다. 제멜바이스는 점차 신경쇠약과 분노에 시달렸고, 결국 동료들의 기만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다. 이후 그곳에서 탈출하려다 간수들에게 구타당한 상처가 패혈증으로 번져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거대한 오만에 맞선 한 사람의 비극적 최후였다.
- 현대의 제멜바이스: 위궤양은 정말 스트레스 때문일까?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제멜바이스 반사(Semmelweis Reflex)'라고 부른다. 기존의 관념과 배치되는 새로운 증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심리다. 현대판 제멜바이스의 대표적 사례는 우리에게 헬리코박터 유산균 음료 광고로도 친숙한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이다.
1980년대까지 의학계는 위궤양의 원인을 '스트레스'와 '식습관'으로 규정했다.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균'이라는 박테리아가 원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의학계는 그를 무시했다. 그는 스스로 세균 배양액을 마셔 위궤양을 일으킨 뒤 항생제로 치료하는 극단적인 증명 끝에야 진실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진실은 언제나 기득권의 '상식'이라는 벽에 부딪혀 피를 흘리며 등장한다.
- 맺으며: 당신의 손에 묻은 오만을 직시하라
오늘날에도 우리는 '상식'이나 '권위'라는 이름 뒤에 숨어 명백한 팩트를 부정하곤 한다. 자신이 믿어온 세계관이 무너질까 봐 새로운 정보를 '혐오'나 '음모'로 치환해 추방하는 풍경은 여전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지가 아니라, '내가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한 확신이다.
자신의 오류를 직시하지 못하는 전문가, 교리가 야만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인, 시스템의 붕괴를 은폐하려는 권력자들. 이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세상을 만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들의 몫이 된다. 손을 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자신의 오점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진실의 입을 막는 그 비겁한 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