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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sian Oct 08. 2022

두긴의 지정학을 통해 살펴 본 푸틴의 패권 전략 (2)

지난 글에서 푸틴의 패권 전략의 지정학적 목표와 어젠다가 사상적 및 전략적 측면에서 사실상 알렉산드르 두긴의 신유라시아주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푸틴의 패권 전략에 대한 일종의 설계도 내지는 조감도를 그려냄에 있어서는, 두긴의 아이디어를 먼저 살펴 보는 것이 하나의 첩경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슈들에 대한 두긴의 아이디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푸틴의 패권 전략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대신하고자 한다. 다만 논의의 실천성과 간결함을 높이고자, 두긴의 사상적 측면은 배제하고, 두긴의 지정학적 접근법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두긴의 지정학적 접근법은 그의 저서인 “지정학의 기초 (Foundations of Geopolitics, Основы геополитики) 에 가장 구체화되어 나타나 있다. 해당 저술에 따르면, 두긴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베를린-모스크바-도쿄-테헤란 추축을 구축하여 유라시아의 패권을 통합하고, 이러한 동맹체를 기반으로 미국의 해양세력에 대항할 것을 주장한다. 즉, 그는 러시아를 위시하여 독일, 일본, 이란이 유라시아 전반을 사실상 분할하여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해당 동맹체의 주도권은 러시아가 가져간다. 


(1) 對유럽 전략


우선 두긴의 유럽 전략을 먼저 살펴 보자.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두긴은 문화권 내지는 문명권에 대한 섬세한 인식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러시아 정교회 중심의 러시아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유럽은, 러시아의 직접 개입 대신 독일과의 동맹 관계를 구축하여 간접적이지만,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관리하고자 한다.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러시아는 독일이 중부 및 동부 유럽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고, 독일에 대한 러시아의 유화적 제스처의 상징으로 현재 러시아의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독일에게 돌려주면서 모스크바-베를린 동맹을 만든다. 


Kaliningrad, Russia


중부 및 동부 유럽에 대한 독일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것은 카톨릭, 개신교 등 유럽의 종교적 배경을 포함한 유럽의 제반 문화적 전통이 러시아와는 이질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즉, 이질적인 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고려할 때, 해당 지역은 러시아 대신 독일이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칼리닌그라드는 역사적으로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의 발원지이므로 이것을 독일에게 돌려 주면서 독일의 환심을 사고, 그 반대급부로 조지아 등 구소련권 국가나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재통일의 명분을 구축하는 의미도 있다. 


기타 對유럽 전략의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프랑스와 독일의 동맹관계 구축을 독려한다. (2) 영국은 유럽과 분리시킨다. (3) 핀란드는 러시아가 흡수 합병한다. (4) 에스토니아는 독일의 영향권으로 인정한다 (5)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는 독립국 지위의 유지 여부와는 별개로 러시아의 세력권에 포함되어야 한다. (6)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보스니아, 그리스 등 정교회 지역도 러시아와 연합하여야 한다. (7)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러시아 영토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 지정학적 등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럽지역에 있어서, 두긴의 지정학적 인식과 199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의 유럽 상황을 비교하면, 과연 푸틴이 두긴의 패권 전략을 실천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유럽의 맹주인 독일이 푸틴의 유럽 전략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푸틴의 독일에 대한 접근은 매우 유연하면서도 집요하고 섬세하였다. 때마침 독일의 수상이 러시아어에 능통한 동독 출신의 메르켈(메르켈은 고등학교 때 동독의 전국 러시아어 회화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다)인 것도 그 배경이 되기도 했지만(동독 KGB에서 근무했던 푸틴 역시도 독일어에 매우 능통하다. 그는 오스트리아 총리의 결혼식에서 독일어 축사를 했고, 독일 의회에서 독일어로 연설하였으며, 독일어를 동시통역할 정도의 독일어 실력자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드스트림 1과 2의 건설이다. 노르드스트림 1을 통해 독일은 서서히 러시아와 한 몸이 되어 갔고, 그 결과물이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나는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또 다른 러시아발 천연가스 공급 파이프라인인 노르드스트림 2의 개통에 극렬 반대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미국은 최근의 노르드스트림 1과 2의 파괴 공작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Sabotaged Nordstream pipelines


그리고 독일 이외 유럽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법은 동유럽 및 중부 유럽에 대한독일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반미적 관점을 조장하고 양국 간의 협력을 통해 유럽 전역에 반미적 스탠스를 강화하면서, 유럽을 사실상 러시아와 독일이 나누어서 지배하는 것이다. 더불어 유럽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을 배제하여 해양세력인 앵글로 색슨과의 대립구도를 명확히 하였다. 


(2) 對동아시아 전략


러시아인들은 종종 러시아를 두 개의 유럽 사이에 끼어 있는 낙후된 지역이라고 인식한다. 여기서 두 개의 유럽이란 하나는 서유럽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만큼이나 강력하게 성장한 일본, 중국, 한국 등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지역을 의미한다. 두긴 역시도 동아시아에서 영미의 해양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중국 또는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다만, 두긴은 중국과 일본 간의 문명적 충돌 양상을 인식하여, 중국과 일본 모두와 협력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즉 중국과 일본 중에서 한 나라를 선택하여 파트너 십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긴은 놀랍게도 중국보다는 일본과의 파트너십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두긴의 주장에 따르면, 언뜻 보기에는 중국은 대륙 문명이고, 섬나라 일본은 해양 문명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정작 중국이 대륙문명이었던 시기는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시기에 국한되며, 그 이외 대부분의 시기에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해양 문명의 영향권 내에 자리잡아 왔다고 주장한다. 즉 중국은 영국의 반식민지 시대에 영미 해양 세력의 중요한 유라시아 전초기지였으며, 개혁 개방 이후의 중국은 서구 자본주의에 경도되어 해양 문명을 추종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판단한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의 일원이기도 하였고, 구 일본제국의 지도층들이 정서적으로 영미의 해양 국가보다는 프로이센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유럽의 대륙 국가들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이 높았다는 측면을 포착한다. 더불어 비록 현재는 일본이 미국과의 협력 관계가 강하지만, 영미와의 무력 투쟁에서 패배한 경험으로 인해 일본은 영미에 대한 응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두긴은 동북아시아 유목민족의 전통에 뿌리를 둔, 러시아의 소수민족들을 불교 문화권으로 인식하면서, 문화적으로 아시아적 문화가 파괴된 중국보다는 일본의 불교적 전통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두긴은 모스크바가 도쿄와의 동맹 관계를 구축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쿠릴 열도 등 소위 일본의 북방영토를 일본에게 양보하는 것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만약 현실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 관계를 맺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러시아는 일본 내부 정치과정에 개입하여 일본의 반미감정을 자극하는, 미일간 분열 공작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중국에 대한 두긴의 입장은 초기에는 상당히 적대적인 것이었는데, 그는 중국은 러시아에 위협적인 존재이므로, 가능하다면 최대한으로 분열 또는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후 러시아 주변 상황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두긴은 서서히 중국과 협력하여 해양 세력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조심스럽게 바뀌기도 했지만, 중국에 대한 두긴의 경계심은 크게 변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두긴은 만약 중국을 해체 및 분열시키는 것이 여의치 못하면 중국에게 대만이나 홍콩으로의 진출을 포함한 남방 경략의 비전을 제시하여 중국의 관심을 남아시아로 돌린다는 복안도 제시하고 있다. 


기타 對동아시아 전략의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티벳, 신장, 몽골, 만주는 양국 사이의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 (2) 한국과 북한 양자와 모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 여기서 특기 사항은 두긴은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티벳, 신장, 몽골, 만주 등의 지역들은 현재 대부분 중국의 영토이므로, 해당 지역이 완충지대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의 해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그간 동아시아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양상을 살펴 보면, 과연 푸틴이 두긴의 지정학적 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비록 현재 러시아와 일본 간의 협력 관계 구축은 좌절되었지만, 분명히 푸틴은 과거 일본에 대한 소위 북방영토의 반환을 전향적으로 고려하면서 對일본 관계 개선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푸틴의 행보를 시베리아 개발 등 경제적 이해에 국한된 일본과의 협력관계 구축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일반의 시각이었는데, 두긴의 관점에 따르면 여기에는 모스크바와 도쿄 간의 전략적 고려까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간의 전통적 경쟁관계는 이미 주지의 사실인지라 별도의 언급이 필요 없을 것이다. 특히 영토가 넓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러시아의 아시아 영토 대부분이 무인지경인 상황에서 해당 지역에 중국인들이 지속적으로 침투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러시아 당국은 상당히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대만, 홍콩 및 남중국해로 중국이 진출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더불어 특기 사항으로는 러시아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사실상의 최혜국 대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의 反러시아 전략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일본에 대해서는 대일본 제재 등으로 종종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표명하는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사실상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의 전시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중국인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무비자 입국의 특권을 한국인에게 여전히 부여하고 있다.


두긴의 대중동 및 대중앙아시아 전략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 


그리고 이후에는 러시아의 대외 전략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을 상술하겠다. 현재 많은 이들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허풍만 떨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무시 당하고, 그리고 월 스트리트에서 인플레이션에 허우적거리면서, 악수에 악수를 거듭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완벽한 오해이다. 현재 미국은 전술적 패배를 거듭하면 할수록 전략적 우위를 쟁취하게 되는 기묘한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혼돈 상황에서 유일한 승자는 미국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 전략에 대해서 자세한 말씀을 전할 계획이다. 


그리고 미국의 패권 전략을 이해한 이후에는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스탠스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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