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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sian Oct 03. 2022

두긴의 지정학을 통해 살펴 본 푸틴의 패권 전략 (1)

2022년 8월 20일 저녁 모스크바 서쪽 외곽 도로에서 의문의 차량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29세 여성 다리아 두기나, 러시아의 극우 보수주의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이다. 해당 차량은 애초에 두긴의 차량이었고, 이에 러시아 수사당국은 두긴을 타겟으로 한 범행에 그의 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알렉산드르 두긴과 그의 딸 다리아 두기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건이 비교적 단신으로 처리되었지만, 그 파장은 적지 않았으니.사건 직후 푸틴 대통령은 두기나의 가족에게 조전을 보내고, 우크라이나를 맹비난하는 한편, 두기나에게 용맹 훈장을 수여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배후세력에게도 자비는 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고, 러시아 연방 보안국은 이번 사건 배후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를 지목했다. 러시아 내부의 반체제 단체인 러시아 국가 공화군은 이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해당 사건에 대한 상당한 반향이 일었는데, 우선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 미하일로 포돌리약은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과 우크라이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다닐로프 국가안정방위회의 사무처장은 오히려 러시아인의 지지가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대중을 심리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러시아 FSB(KGB의 후신)의 자작극이라고 규정했고,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러시아의 보복 테러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리나 두기나를 무고한 전쟁 희생자라고 언급하자, 우크라이나의 주교황청 대사가 교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행정부와 정치계 전반이 29세의 젊은 여성, 다리아의 사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르 두긴은 러시아의 극우주의 사상가로 소위 新유라시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그는 푸틴의 브레인, 푸틴의 라스푸틴으로 서방에 알려져 있는데, 말하자면 현재 푸틴이 진행하는 패권전략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 알렉산드르 두긴이라는 것이다. 물론 두긴은 푸틴의 행정부에서 공식 직함을 가진 적도 없고, 푸틴 역시도 두긴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서방과 구소련권에서는 두긴의 新유라시아주의가 푸틴의 패권전략에 중요한 이론적 및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에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두긴은 자신의 주요 저서들을 통해 러시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항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지정학적 목표들을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도 푸틴의 대외 정책들이 두긴의 지정학적인 목표들을 하나씩 달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알렉산드르 두긴은 반푸틴 세력의 테러 위협을 받을 정도로 푸틴의 패권 전략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특히, 체첸, 조지아 및 우크라이나 침공 등 푸틴의 패권 전략의 세부적인 마일스톤까지도 두긴의 지정학적 어젠다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알렉산드르 두긴의 사상과 지정학적인 견해를 살펴 보는 것은, 한때 (두긴이 주장한 대로) 다소 모호했던 푸틴의 패권 전략의 전모를 다소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알렉산드르 두긴의 사상적 핵심을 단순히 정리하자면, 유라시아의 이른바 러시아 문명 공동체에 있어서의 러시아 문명의 회복이다. 두긴은 오늘날의 세계를 미국을 위시한 해양 세력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유라시아의 대륙 세력 간의 투쟁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현재 유라시아의 대륙 세력은 해양 세력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패퇴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두긴이 이해하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은 일종의 문명권이다. 그는 해양 세력의 사상은 물질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등으로 제시하고,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대륙 세력의 사상은 보수주의, 집단주의 그리고 이른바 전통에 입각한 영웅주의 등으로 설명하면서, 양자를 상호 사상적 대척점에 두고 있다. 이러한 두긴의 사상을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용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러시아 전통사상에 입각한 일종의 극우 보수주의와 유사성을 가진다(물론, 파시즘 등 서구의 극우 보수주의와 여러 측면에서 궤를 달리한다). 따라서 현재 미국의 단극적 세계질서가 강화되면서, 러시아의 대륙 세력이 해양 세력에게 압박을 당하고 있고, 유라시아의 문명적 순수성이 해양 문명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긴은 소련의 멸망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의 이른바 ‘스탄’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이 독립하였던 상황을 해양 세력이 대륙 세력을 침략하여 러시아 문명권을 해체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대륙 세력이 다시금 그 순수한 문명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 구소련의 영토적 완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그 논리적 귀결로, 결국 두긴은 그의 여러 저서에서 체첸,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두긴의 지정학적 견해들은 러시아가 과거 구소련의 영토들을 회복하고 유라시아에 침투한 해양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일종의 일종의 방법론 또는 전술이며, 현재 푸틴이 수행했거나 수행하고 있는 일련의 군사력 투사행위가 사실상 두긴이 제시하는 마일스톤을 하나씩 달성해 나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푸틴에 대한 두긴의 영향력을 서방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과정들을 세심하게 살펴 보면, 마치 두긴이 제시한 지정학적 맥점들을 오히려 미국이 정밀 타격하여 분쇄하는 양상을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사실상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상술하겠지만, 예를 들면,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도하여 국력을 소모하게 하고, 독일과 러시아 간 협력 관계를 파괴하는 공작들을 수행하였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애초에 러시아 문명의 회복을 위한 두긴의 청사진에서, 독일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확보해야 할 중요한 맥점이었고, 미국은 러시아가 해당 맥점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긴의 지정학적 견해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러시아 패권전략의 전모를 이해함을 물론, 미국의 對유럽, 對러시아 전략의 전도를 예견함에 있어 상당한 전략적 인사이트를 제시할 것이다. 


두긴의 지정학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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