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5일 새벽 FOMC에서 금리를 0.5% 추가 인상하였고, 파월의 매파적 발언에 산타 랠리를 기대하던 전세계 증시는 다시 또 다시 실망 매물을 던졌다. 파월의 발언 요지는 간단했다. 인플레 기조가 약해지고 있으나, 인플레 수준이 2%에 도달할 때까지 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며, 물가 안정을 위해 심각한 실업률 상승이 반드시 초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파월의 해당 발언에 대해 전세계 투자자들이 충격을 받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파월의 메시지는 항상 명확했고 일관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자신의 판단이 오류였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의 일이다). 파월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현재의 인플레이션 수준을 2%로 되돌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아니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즉 될 때까지 하겠다는 것이고, 갈 데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월의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장의 수요가 꺾여야 한다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라는 것을 매우 쉽게 알 수 있었다.
왜 파월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시장의 수요를 꺾겠다는 의지로 바로 연결되는지 의문을 가지는 분들의 위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과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이다(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화폐 공급의 과잉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그런데 Fed는 공급 부문에 대해서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현재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이슈들로는 중국의 코로나 봉쇄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들 수 있는데 당연히 Fed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요 측면에 대해서는 Fed가 영향을 미칠 수단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發 금융위기 당시 Fed는 돈을 풀어 수요 진작을 시켰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수요를 꺾기 위해서 돈줄을 조이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능하다.
여기서 수요를 줄여서 인플레를 잡는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수요를 인위적으로 줄인다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있다). 시장의 수요를 줄인다는 말은 간단히 말하면,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소비자들(물론 기업을 포함한 민간 부문 전체)이 돈을 못 쓰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통행금지를 하든지, 아니면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만든다는 뜻이다. 어떻게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만들 것인가? 그 하나는 미래에 자신들이 더 가난해 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소비자들을 저축을 하게 만드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 소비자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다(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을 가난하게 만들거나 가난해질 수 있다는 공포에 빠져들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현재 파월이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수단으로는 대출을 조이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붕괴시키며, 고금리로 기업을 붕괴시켜서 실업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파월이 FOMC 회의 때마다 실업률이 매우 매우 높기 때문에 고금리의 장기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실업에 빠지고 가난해져야만 끝나는 게임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FOMC 미팅 때마다 Fed의 완화적 발언에 대한 기대감을 시장이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은 “Fed가 시장을 파국으로 몰고 갈 리가 없다.” 혹은 “Fed가 시장을 망가뜨릴 배짱은 없다”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상식적인 믿음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미국 증시와 채권시장의 하락으로 미국과 영국의 연기금이 파산 위기에 몰려 전세계가 화들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연기금에는 해당 국가 국민들의 노후와 생존이 걸려 있다. 따라서 연기금이 파산하면 정치 시스템의 붕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초래될 수 있다. 오늘날 금융 시스템은 정치 시스템 그 자체이고, 시장이 붕괴하면 금융이 정치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Fed가 시장의 파국을 원치 않는다는 믿음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사회 시스템의 최정점에 있는 엘리트가 기존의 세계 통치 시스템에 만족할 때에만, 이들은 현재의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만약 기존의 세계 통치 시스템이 그 수명을 다했고 이제는 이를 근본적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이들은 기존 시스템의 붕괴를 추구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누구도”라는 말은 우리들과 같은 일반적인 rule-taker(규칙 수용자)를 의미한 것이다. 즉 시장의 힘을 찬양하는 위의 경구는 미국의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rule-setter(규칙 수립자)” 또는 “market-maker(시장 조성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들 “market-maker”들은 말 그대로 시장을 만드는 집단이며, 말하자면 이들이 바로 “시장(market)”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의 의미는 정확히는 “누구도 market-maker를 이길 수 없다”라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이들 “market-maker”들은 기존 시스템의 수명이 다 했다고 인식하는가? 불행히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징조들이 많은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의 국가부채가 이제는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리먼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서구의 경제는 카지노 자본주의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부의 양극화는 극에 달하였다. 개발도상국 역시 여전히 자생력이 없이 서구 선진경제에 기생하여 버티고 있으며, 이는 소위 G2라고 불리는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지난 세계화 시대의 번영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을 최정점으로 하는 일종의 계층적 착취구조에 대한 전세계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계화 시대에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이 미국의 생산 하청을 수용하고 그 대가로 달러라는 종이 쪼가리를 기꺼이 받기를 원했다. 이는 사실 미국이 타국을 착취하는 과정이지만, 모두들 나름의 위치를 지키면서 기꺼이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을 수용했고 그에 따라 실제로 전세계는 모두들 나름의 위치에서 부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영원히 착취를 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 어느 정도 살만해진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의 하청국가로 남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오랜 기간 미국에게 눌려왔던 유럽 역시도 그간 미국에게 가졌던 불만을 소심하게 터뜨리면서 내심 중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무엇일까? 모두들 미국에 반기를 드는 상황에서 순순히 미국의 내수시장을 내어주어 이들 반란자들을 먹여 살려 주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미국의 입장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 상황을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설명해 보겠다. 지금은 미국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Pax Americana의 시대이다. 미국은 제국으로서 전 지구를 통치하고 있고 그 통치 시스템을 통해 세계 각국의 생산력을 활용(또는 착취)하고 그 반대급부로 미국의 내수시장을 전세계에 내어주어 미국이 보유한 부의 일부(또는 달러라는 종이)를 세계 각국에 나누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현재 한계에 다다랐다. 선진국의 정부부채는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고, 그간 자신의 분수를 잘 알던 중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 더 이상 미국을 위해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은 미국의 패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미국을 넘어서겠다고 한다. 이제 이 시스템이 스스로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그 어느 것도 영속적이지 못하다. 인간이 만든 그 모든 것은 항상 불안정하고 결국 내구연한을 넘어가면 새롭게 수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이 항상 쓰는 PC도 일정 기간 사용하고 나면, 폐기하거나 reset 시키고 운영체제(OS)를 새로 깔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만약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는 것만으로는 그 수명을 연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현 시스템은 폐기하거나 reset 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다른 대안도 있다. 가만히 앉아서 중국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미국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기존의 시스템을 근본에서 허물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지 않을 것인가?
현재 진행되는 미중 패권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미국 Fed의 비정상적인 금리 인상은 모두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기존 설계자의 몸부림이다. 이는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다. 세계금융포럼이 이미 공식적으로 지금은 그레이트 리셋 (Great Reset)의 시대라고 선포하였고, 세계 각국의 대통령, 수상들이 이에 동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은행 총재가 그레이트 리셋을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던 사실이 있다. Reset은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다.
이렇게 현재 시스템의 최정점에 있는 엘리트는 기존의 세상을 근본에서부터 허물고 Reset 하기 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Reset이 일어난 이후에는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시스템과 규칙 속에 살게 된다. 따라서 금융이든 국내 정치이든 국제 정세이든 간에 기존에 우리가 알던 모든 선험적인 전제와 공리들을 다 내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전세계의 패권을 놓고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의 엘리트들 간에 새로운 시스템 설계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시기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구중궁궐에서 세계 최고의 권력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궁정 쿠데타가 벌어지는 시기이다. 궁정 쿠데타의 와중에 우리들 민초가 겪는 고통들은 그 누구도 마음 써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Fed는 시장의 붕괴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저 현재의 시스템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을 뿐이며, 그 과정에 민초들이 겪는 고통은 그저 부수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언제나 말하지만,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착취 시스템에 불과하다. 봉건시대의 장원경제나 21세기의 자본주의나 결국은 착취 시스템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떨까? 혹자는 자본주의가 착취 시스템이라는 이유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주창하였다. 소련, 중국, 북한 그 어느 하나 착취가 사라진 곳은 없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문제이고 인간 그 본성의 문제이다. (참고로 국가가 없어지면 착취도 없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논하는 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2편에서는 소위 엘리트(rule-setter, market-maker) 간의 패권 투쟁이 왜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우리가 가난해지는 것이 저들 엘리트에게 왜 유리한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 어차피 많은 것들이 이른바 뇌피셜이니, 재미 있게 읽으시면 되겠다.
그러나 2022년 12월 16일 현재 미국 증시가 폭락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가 다루는 뇌피셜이 아주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