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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07. 2024

초 5 아들, 고독을 씹을 나이

게임과의 전쟁

집에서 게임만 하는 막둥이.  

코로나 기간 장장 3년이란 시간을 비대면 수업으로 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했으니 날렵했던 몸은 통통해져버리고 말았다. 제 엄마 닮아 집에 있는 걸 좋아하니 날이 갈수록 더욱 통통해져만 가는 아들. 애나 어른이나 살을 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 여태 통통한 몸매를 유지하는 중이다. 예전엔 토실토실 살이 쪄도 좀 더 크면, 쪘던 그 살은 다 키로 간다며 괜찮아 괜찮아 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새는 아니란다. 키로 가야 할 영양분이 쓸데없이 비만을 해결하는 데 쓰여 살이 찌면 오히려 키가 안 큰다는 이야기들이 돈다. 걱정이다.              

  

하지만 방학이어도 센터에서 1시부터 6시까지 매일 5시간을 공부하는데다 아직 초등생인데 공부를 강요하기는 싫었다. 공부란 것은 내 맘이 동해서 하는 게 공부지, 옆에서 닦달해서 하는 공부는 더 하기 싫어지는 법이니까. 다행히 영어 단어 시험을 보는 전날은 스스로 공부할 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고 TV를 보다가도 알람 소리가 울리면 자발적으로 TV를 끈 후 영어 단어를 외우는 아이라 믿고 맡기는 편이다. 더욱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할 텐데 벌써 공부, 공부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고 공부만 강조하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것도 한몫했다.                

  

아이 아빠 또한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꼼짝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닌텐도 게임을 온종일 하고 있는 모습을 못 견뎌할 뿐.                


오로지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이라지만 역시나 게임을 일처럼 하느라 아들은 여념이 없다.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딸은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나와 남편은 봄맞이 대청소 중이었다.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닌텐도를 붙들고 있는 아들이 눈엣가시였는지 남편이 "지후! 너 나가. 밖에 나가서 놀다 와." 한 마디 내질렀다. 아들은 청소하는 부모님을 돕지도 않고 게임만 한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했다 싶었는지 두 말 않고 실내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밖을 나갔다. 그리고 약 2시간이 흘러 귀가했다. 군말 않고 아빠의 말에 순종한 아들이 귀여워 나는 물었다. "동네에 다른 아이들 있던? 놀이터에서 놀았어?" 물었는데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단다. 물론 만화책을 읽었다 했지만. 주제가 무엇이냐고 했더니 식물에 관한 것이란다. 만화책이면 뭐 어떠랴.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평소 관심 있어하는 분야이고 어쨌든 책은 책이니까 닌텐도 게임보다는 낫다 싶어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미소도 잠시              

  

들어온 지 또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게임에 흠뻑 빠진 아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입을 삐죽삐죽해가며 아주 게임 안으로 들어갈 기세다.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빨간 고무장갑까지 끼고 청소의 절정을 찍고 있던 남편이 아들을 지나쳐 가며 또 한 소리 한다. "야, 너 나가." 응? 데자뷔인가. '아까 나갔다 왔는데 또?' 라고 하마터면 내가 말할 뻔했다. 말이 나오려는 걸 겨우 입을 닫고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역시나 나의 핏줄임을 증명하듯 막둥이가 이번엔 아빠에게 항의했다. "아까 나갔다 왔는데 또 나가라고? 아빠 뭐 착각하는 거 아니야? 나 나갔다 온 지 한 시간밖에 안 됐어."라고 했지만 남편은 아랑곳 않고 또 나가란다. 놀다 오랬는데 가만히 앉아서 책 읽고 왔으니 운동할 겸 산책 좀 하고 오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남들은 공부하라고 아이를 닦달한다던데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아까 외출은 무효가 되어버린, 뭔가 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지만 그저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나. 팽팽한 주장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론이 어떻게 날 것인가. 흥미진진했다. 이것이 바로 관망의 묘미지.               


아이가 체념한 듯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으면서 점차 화가 올라왔는지 반항의 한 마디를 한다. "그럴 거면 아까 옷 벗을 때 이야기하지. 옷 다 갈아입었는데 또 갈아입어야 하잖아. 어휴." 조그만 놈이 조그만 입으로 조그만 한숨을 내쉰다. 아빠한테는 아직 덩치로 한참 모자라니 자신이 참을 수밖에. (그렇다고 이다음에 아빠보다 덩치 커졌다고 아빠한테 대들면 안 된다?) 결국 아빠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옷을 또 갈아입고 고개를 삐딱하니 해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번째 외출을 하러 밖을 나갔다.                


한 시간 반 경과.      


삑삑삑삑 도어록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모기만 한 소리로 "안녕히 다녀왔습니다."하고 들어왔다. 청소를 다 끝내고 잠시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며 휴대폰을 보던 아이 아빠는 하루에 두 번이나 나가라고 이야기한 게 내심 미안했는지 슬쩍 아이 등을 쓰다듬으려는데 술래잡기할 때 술래한테 잡히지 않으려고 몸을 교묘히 피하는 모양새로 아들이 아슬아슬하게 아빠 손을 피했다.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늘 웃상(웃는 얼굴)이던 아이인데 웃음기도 전혀 없다.                 


"이번엔 어디 갔다 왔어?"      

남편은 굴하지 않고 아이에게 화해하듯 질문했다. '웅얼웅얼'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물어보고 나서야 뭐라는지 정확히 들렸다.       

         

"등! 산!"     

이라고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기 때문이었다.                


뭐? 드응사안??? ㅋㅋㅋㅋ

          

  

이제 곧 5학년을 앞둔 아이이지만 겨우 3학년쯤 보일까 싶은 체구의 작은 꼬마가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산을 오르내렸다니. 중장년층에게나 인기 있는 등산을 어린이 혼자서 하고 왔다니. 혼.자.서. ㅋㅋ        

친구도, 휴대폰도, 닌텐도도 없이 홀로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나는 왜 놀 것 많은 이 재미있는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혼자 궁상맞게 등산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했으려나.                


"오르내리다가 등산하는 다른 사람 없었어?" 하고 물었더니 있었다 한다. 그 사람들이 아들 보고 어리둥절했겠는데? 뭐, 어때? 인생은 원래 혼자야. 짜샤.             


아무튼 많이 컸다. 혼자 등산도 다 하고.      

         



저녁이다.           


그만큼 컸으니 이젠 저녁밥을 다 먹으면 알아서 양치할 법도 한데 엄마가 디저트로 뭘 또 내오지 않을까 싶어서인지 도통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양치하는 법이 없다. 아이들에게 상냥한 편인 남편이 낮에 청소하느라 힘들었는지 거기다 매번 똑같은 말을 하기가 질렸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양치해!!"


그랬더니 막둥이가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아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말고 얌전히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다음부터는 조용조용 이야기 좀 해. 알겠지? 그리고 난 이미 양치했거든?"


"아, 그래?"


이번엔 남편이 한 방 맞았다.

우리 집 남자 둘의 대화는 참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


고독을 씹으며 홀로 등산하는 어린아이. 이미지 출처. pixabay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방학 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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