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궁금했다.
호랑이는 왜 눈에 확 띄는 주황색 털을 하고서 풀숲에 숨어 공격할 순간을 기다리는 걸까.
마치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보호색으로 갈아입은 척.
풀숲에 숨어서 꼼짝 않고 가만히 '얼음'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쟤가 어디 한 군데 모자란 건 아닌가, 정녕 동물의 왕 사자를 대적할 호랑이가 맞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초록색 풀들 사이에 유난스레 도드라져 보이는 주황색 털의 호랑이인데 저리 꼼짝 않는다 해서 사슴이고, 고라니들이 자기를 못 볼 거라 생각하는 걸까?
혹시 저 호랑이란 놈은 바보가 아닐까 싶었다.
허허벌판 초록색 배경 앞에 선 주황색 옷은 튀어도 너무 튀는 색이니까.
호랑이뿐만이 아니다.
호랑이의 밥상에 주로 오르는 사슴이나 고라니 이놈들도 바보이긴 마찬가지다.
한껏 예민하고 날쌘 놈들이라 조그마한 소리가 나거나 어딘가에서 약간의 공격만 감지되어도 잽싸게 도망간다고 알고 있었건만 도드라지는 옷을 입은 호랑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만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모양새가 바보에 팔푼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차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사슴과 고라니는 사람으로 치면 색약에 가까운 시력을 가졌기에 주황색(적색)과 초록색(녹색)이 구분이 잘 되지 않아서였음을.
사슴의 어쩔 수 없는 심정을 느껴보기 위해 동일한 환경을 설정해 보자.
그리고 이 사진에서 호랑이를 찾아보자.
잘 보이시나요? 5초의 시간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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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정답을 확인해 보자. 정답은 바로 아래.
호랑이가 엎드려 쉬고 있는 모습이 바로 한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이유는 좀 전에 언급한 것처럼 사슴이나 고라니는 색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호랑이가 풀숲에 서서 잠자코 있으면 예민한 감각의 사슴과 고라니들이라 할지라도 쉬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호랑이는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 자신을 알아보는 눈이 없는데 구태여 자신을 숨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감쪽같이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도깨비감투를 쓴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몸을 더 낮출 필요도 더 숨길 필요도 없는 것처럼.
법이라면 대학 2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생활법률>을 한 학기 수강한 것이 전부이기에 아는 게 별로 없어서인지 나로서는 이해 못 하는 범죄가 하나 있다.(사실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 건지 구분은 모호하다.)
바로 사기죄가 그것인데 뉴스에서 사기죄에 관련한 기사가 나왔을 때 헛웃음까지 나왔다. 몇십억의 사기를 쳤는데 벌금이 고작 몇 천만 원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범죄자에게 유독 관대한 대한민국에서 사기꾼의 인권과 사기꾼의 말은 매우 존중받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기꾼이 완벽하게 사기를 친 후 도망을 다니다가 잡힌다 해도 "내 수중엔 현재 남아 있는 돈이 없소." 해버리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 하나도 남은 게 없다고 또 사기를 친 후 벌금을 여유 있게 치르고 사기꾼은 이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아, 징역을 사는 경우도 있긴 한데 징역기간 또한 그리 길지 않다.
만일 벌금보다 사기를 친 금액이 훨씬 많다면 사기를 안 치는 게 바보가 되는 구조이다. 그런 구조라면 "나"라도 사기를 칠 것 같다.(물론 머리가 좋아야 사기도 성공하겠지만) 막말로 나가는 돈보다 벌어들인 돈이 더 많다면 한몫 단단히 잡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무리 죄를 지어도 가벼운 처벌에 뒤돌아 웃을 테지. 경각심 따위 가지겠나.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호랑이는 간지 나는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자신을 가리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약자가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가릴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닐까.
내게 은밀히 접근해 곧 나를 파멸시킬 호랑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간절하다.
호랑이도 문제지만 사슴 역시 문제가 있다. 자신의 눈을 맹신한 죄.
잘 안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말하지 말고 깜깜한 어둠도 끄떡없는 적외선 감지 안경이라도 쓰고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