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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13. 2024

결혼 전 남편은 연락처 달라는 말을 이렇게 했다

내가 다 부끄럽네


소위 "깬다"는 말을 어떤 사람에게 하게 되면 그 사람과는 보통 좋은 관계로 발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깬다는 말 뜻과 유사하게 오히려 그 관계는 바사삭 부서질 때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이성일 경우는 더더욱. 깨는 점은 하나이고, 그것을 제외한 다른 요소는 매우 많아서 가짓수로 비교한다면 좋은 점이 훨씬 많아 차고 넘칠 텐데도 희한하게 다른 모든 좋은 점은 깨는 한 두 가지 이유로 몽땅 덮여 없어져버리고 만다. 단점이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서일까.




아이들에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아빠.

피자, 짜장면, 샤부샤부 등을 손수 요리해 주는 남편.

집안 청소, 화장실 청소에 짜증 내지 않는 남편.


하마터면 이 훌륭한 남편이면서 멋진 아빠를 내 인생에서 놓칠 뻔했다.



때는 15년 전 소개팅 자리.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으로 만난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대사를 들었다.


남편이 나에게

"번호 좀 따도 돼요?"

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혹시 과실나무가 있나 둘러보았다. 나무의 열매를 따듯 번호를 딴다고? 번호를 딴다는 말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영웅담 얘기하듯 장난 삼아 말할 때나 쓰는 것이지 상대 앞에서 직접적으로 쓰는 단어는 아닌데? 너무 천박한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므로 같은 말을 해도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느끼는 바가 천양지차다. 그러니 번호 좀 알려달라고 하는 말에서 하필 딴다는 표현을 꼭 써야 했을까 싶었다. 딴다는 말 말고 다른 단어는 없었을까? 이 사람은 지금 이 자리가 진지한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주 보고 앉은 나를 쉽게 보고 있는 걸까?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온 건지부터 생각하느라 혼란스러웠다.  


딴다는 경박한 말 대신  


"연락처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라든지

"휴대폰 번호 교환하실래요?"

하면 될 것을


"번호 좀 따도 돼요?"가 웬 말인가.


어휴, 상스러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남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이 뭐야, 활자라면 질겁을 하는 사람이다. 펜을 쥐고 글을 쓸 일이라곤 관공서에 서류 낼 때 본인의 이름과 주소 정도가 전부다. 하긴 요즘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보통의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될 터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평소 대화할 때 곧잘 쓰는 말을 자신은 스스럼없이 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남녀가 처음 만나는 나름 격식 있는 자리에서 만난 지 몇 시간 안 된 남녀 사이에 번호를 따도 되냐고 묻는 질문의 모양새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에겐 나이트클럽에서 대충 한 번 놀고 끝낼 사이에서나 서로 할 법한 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깔끔한 남편의 외모에 그렇지 못한 대사는 단점만 용케 잡아내는 내 속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말았다. 휴대폰을 건네주니 받긴 받은 남편의 폰에 나의 연락처를 검지로 꾹꾹 누르면서도 번호를 "따도" 되느냐는 그 단어가 내 머릿속에 자꾸만 둥둥 떠다녔다.



꼭 그 말을 쓸 수밖에 없었니?

더 나은 단어일 수는 없었니?



드라마 "도깨비" 스틸샷



대부분의 것들이 마음에 들더라도 무엇 하나 깨는 것이 있으면 사람이 싫어지는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다. 그러는 나는 뭐 얼마나 잘 났다고.


미래의 남편감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나의 심사 점수는 단박에 80점에서 50점까지 훅 내려가고 말았다.


보통은 점수가 확 내려가는 사건이 생길 경우 그 모든 좋은 점은 온데간데없고 단점 하나만 크게 부각되어 연이 끊기기 마련이다. 나도 뭐 다를 것이 없었다.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좋은 점이 약간 더 커서 그게 묻힌 것인지 나의 이해심이 그의 단점을 보듬어준 것인지 우선은 넘기자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단점이 나를 좀 뒤흔들어놨어요.'라는 마음은 감춘 채 온화한 표정만 보여주자 남편도 내게 호감을 느낀 듯했다. 다음 약속을 잡고 또 만나게 되었다. 그의 자상한 면이 더 많이 보였다. 또 그다음 만남. 이 남자의 매력이 돋보였다. 그렇게 한 번 더, 두 번 더 만남을 가지면 가질수록 단점은 점차 묻히고 말았다.



만일 그 단점 하나로

"난 절대 그런 사람 싫어!"

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며 마음을 닫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 좋은 일 시켰겠지 뭐.

가정적이고 성실한 그의 아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을 테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었을 테지. 그런 생각이 드니 당시에 단점이 보여도 마음을 크고 넓게 먹고 이해하려고 한 나 자신에게 매우 칭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맞지 않다고 느낄 때 그 자리를 단박에 박차고 나오면 잃는 것들이 많이 생긴다.

조금 참고 나의 감정을 누그러뜨렸을 때 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

그리고

나 또한 완벽하지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 깨달아 보자.



나는 상대에게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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