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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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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맞춤법 검사기에서 반가운 문장



애초에 몰라서 틀려버린 글자든 키보드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져 오타가 났든 그게 뭐가 됐든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지 못한 글자를 누군가의 글에서 보게 되면 나는 그 틀린 글자를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고쳐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된다. (글을 고치는 것은 당연히 원작자만 가능하니 내가 아무리 고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고 댓글로 알려주고 싶어 손가락이 움찔거려도 상대가 민망해할까 봐 꾹 참아야 하는 내 심정은 고구마가 차올라 식도까지 그득한 느낌이다.)


작가님들이 본글을 쓰실 때는 맞춤법 검사를 한 번 돌리고 발행하시기에 오타를 발견할 일이 드물지만 댓글로 넘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오타에 틀린 말이 버무려져 있는 안쓰러운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댓글 창을 그만 닫고 마는 것이다. (제 글의 댓글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가 댓글까지 읽게 되면 종종 생기더라고요...)


아마도 나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겠지.

대충 못 넘기는 병, 틀린 걸 바로잡아야 기분이 말끔해지는 병, "그럴  있어."의 대모 양희은처럼 쿨하지 못한 병...


연세 지긋한 작가님들이 댓글을 쓰시다 오타가 나는 것은 넘어가 줘야 함이 마땅하다. 노안으로 가장 불편한 사람은 본인이실 테고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친히 댓글까지 남겨 주셨으니 이 얼마나 황송한 일인가. 요새 나도 눈이 예전 같지 않은 걸 보면 노안이 까꿍하고 다가오는 것 같아 슬픔이 밀려오니 이해해 드려야 하는 게 백 번 맞다. 하지만 눈이 침침해서, 손가락이 잠시 흔들려서 찍은 오타가 아닌 너무 명확한 오타(할게요를 할께요로 쓰거나, 웬과 왠을 너무 떳떳이 잘못 쓰는 등등)는 내 작은 눈을 더욱 게슴츠레하게 뜨게 만든다. 


나는 나 때문에 눈을 반만 뜨는 분이 생기지 않도록 

댓글을 달기 전에 항상 맞춤법 검사기를 돌린다. 


너무 강박이 아니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래 강박이 맞는가 보다. 어쩔? 


근데 확실히 검사기를 자꾸 돌려버릇하고 눈에 익혀 두려고 애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다 보니 이제는 한방에 제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연스레 내 몸에 바른 글자가 들어와 앉았나 보다. 


약 500자 가까운 글을 넣어 검사했는데 검사기 하단에 

교정된 내용이 없습니다.

라고 나오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나 점차 나아지고 있구나.


글쓰기가 만일 수학 과목이라면 다 썼다 하고 외쳤을 때 누군가 채점하여 이건 90점, 저건 70점 하고 점수가 딱 매겨질 것이고 내가 옳게 가는지 혹은 나와 맞지 않는 길을 억지로 가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을 텐데.


글은 수학이 아니니 나의 글이 나아지는 것을 수치화해서 알아볼 수 없어 막연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맞춤법을 딱딱 잘 맞추어 나가고 있으니 지금 참 잘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참 이딴 식으로 느끼는 나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뜻밖의 기쁨을 얻었을 때와 같다고나 할까. 




어떤 일의 한복판에 직접 들어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일이 잘 되어가는지 여부는 한눈에 뚜렷이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목표한 바를 체크리스트로 작성한 후 그것을 이룰 때마다 삭선을 긋고 지워 나가면 눈으로 직접 확인 가능하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된다.  


글쓰기가 취미이신 분들. 

만일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지 혹은 내가 지금 잘 나아가고 있는 건지 확인이 필요하다면 맞춤법(탈오자) 검사를 통해 바른 글 쓰기에 좀 더 노력해 보면 어떨까. 틀린 글자가 몇 개인지 바로 보여주니 점차 체화될 것이고 점점 나아지는 본인을 확인하실 수 있다. 

그리고 

뿌듯한 마음은 덤이다. 





하지만 "무엇 무엇하길 바라요."는 정말 온몸이 오글거려 쓸 수가 없고나...

말할 땐 "바래요."라고 말하면서 글을 쓸 때만 "바라요"로 써야 하는 이 개운치 못함...

"바래요"라고 쓰면 틀린 말이라 하니 틀리지 않기 위해 "바랄게요"라고 고쳐야만 하는 이 찜찜한 기분을 한국어 관련 학자님들은 아실라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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