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너무나 예뻐하는 남편이 평소보다 더 예뻐하는 마음이 급격히 차올랐는지 자꾸만 이상한 말을 하는 소리다. 남편이 가끔 셋째 낳자는 소리를 했을 때 내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말만 반복했더니 노선을 변경한 건가.
남편은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10점 만점에 100점이라면 나는 10점 만점에 1점이다. 육아에 대한 상상을 잠시 했더니 몸서리가 쳐졌다. 이제 곧 만렙에 도달하기 직전의 게임을 미친 척 리셋시켜 다시 1 레벨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 머리가 띵 울렸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육아를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세상에 태어나 아기를 낳음으로써 엄마가 처음 되었고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 모든 게 서툴기만 한 초보 엄마가 코앞으로 다가온 우울증을 가까스로 피해 가며 아이를 둘이나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헌신적인 도움이 가장 크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시계가 쉬지 않고 똑딱똑딱 힘차게 움직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모유 수유를 해야 하니 등과 목이 뻐근해 뚜두둑 소리가 나도 조금만 지나면 아기가 새벽에 안 깨고 통잠을 잔다지 기대하며 참아냈고,
갈아도 갈아도 끝없이 갈아 채워야 하는 오줌기저귀 똥기저귀는 이제 조금 지나면 어린이 변기에 배변훈련을 시킬 때가 오겠지 하며 그 모습을 그려보았고,
엄마 껌딱지가 되어 어딜 가든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유치원에 보내고 나 혼자만의 시간도 생기겠지.
하며 겨우 나를 달래고 달래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견뎌내 왔던 것인데.
그 답 없는 육아를 또 하자고?
더구나 몸은 지금보다 노쇠해 힘도 없을 나이에?
자식들이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아기를 아빠에게 맡기면 그 아기는 남편 혼자서 키울 수 있느냐 말이지.
남편 옆에는 죽을 때까지 그의 짝꿍이 될 거라 다짐한 내가 항상 붙어 있지 않은가.
그런 중대사를 나와 의논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입 밖으로 내뱉어버리고 말다니!
내 자식을 사랑하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성질이 났다.
아이가 둘이면 나는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고 본다.
그것도 딸 하나, 아들 하나 얼마나 비율도 맞춤 맞게 잘 낳았는가.
남자와 여자 둘이 만나서 하나만 낳고 말았다면 가뜩이나 출생률이 저조한데 큰 도움을 못 주었구나 미안만 마음이 들 테지만 둘이 만나 둘을 생산하였으니 이 정도면 증가까지는 아니어도 유지에 힘을 보탰다 자부한다. 누가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까지는 아니어도 한 80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더구나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혼 여성들은 귀여운 아기들을 만나면 나도 저런 아기 갖고 싶다 하는 마음에 결혼을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보다 사랑의 비중이 더 컸다. 청각이 예민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수틀리면 시도 때도 없이 빽빽 울어대는 아기가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더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아기들 등에는 등센스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온종일 안고 어르다 겨우 잠이 든 것 같아 눕히려고 내려놓으려고만 하면 귀신같이 알고 빽빽 울어댄다. 아이는 눈물 없는 울음을 크게 울었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나는 눈물이 곧 떨어질 듯 울상만 지었다.
한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 아이라면 아주 환장 아니, 눈이 돌아간다.
막둥이가 지금 5학년인데 아이 하나 더 낳을까? 하고 은근한 눈빛을 보내오면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제대로 대거리도 하지 못할 지경이다. 지금 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아이가 뿅 생겨 팔삭둥이로 낳는다 해도 막둥이랑 나이차이가 10살 이상이다. 그러니 셋째가 지금 말인가 방귀인가.
나에게 아무리 아기를 낳자고 치맛자락을 잡고 애원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겠다 싶은 남편은 나지막이 한 소리 했다.
"나중에 손자 손녀나 키워야지."
흐음...
손자, 손녀라...
"서얼마아 우리 애들이 아기 낳으면 자기가 대신 키워준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설마 하는 마음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 물어본 건데 이 양반 이때다 싶었는지 내 질문을 덥석 문다.
"대신 키워주려고 했는데?"
뭣이 어쩌고 어째? 어찌나 놀랐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나는 우리 애들을 키울 때 시댁, 친정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키웠다.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 해서 원망하지는 않는다. 내 자식 내가 키우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물론 내가 밖에 나가 일을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애들 내가 오롯이 키워냈는데 나는 왜 노년의 시기에 편케 지내지 못하고 내 새끼들의 아기를 또 돌봐주어야 하는가.
아기를 키우는 일은 정신없이 키워낸 내 새끼보다 세월이 흘러 연륜이 생기고 난 이후에 바라보는 손주가 더 귀엽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건 눈으로만 육아할 때 느낌인 것이고 직접 내 손으로 키워내야 하는 것은 또 다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귀여움보다는 억울함이 더 클 것 같다.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커서 혼자서 잘 씻고, 남매 둘이서 사이좋게 잘 놀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나의 도움 없이 알아서 잘하는 나이인데도 나는 아직 만족을 모른다. 좀 더 장성한 아들 딸을 그리며 지금보다 어서 더 커라 커라 하며 주문을 외우는 중인데 뭐? 우리 애들의 애까지 나더러 키우라고?
엄마라면 응당 아이를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 그리고 할머니는 핏줄을 예뻐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손주를 키워도 된다는 착각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건 없다.
평생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고 이제 노인의 삶을 피할 수 없으니 노후에는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야 눈 감는 날 한평생 후회 없이 살았다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럼 우리 애들은 어떻게 키워?
선진국의 선례를 보면 방법을 좀 더 수월하게 찾을 수 있는데 스웨덴의 아빠 할당제가 그것이다. 스웨덴은 부모 휴가를 자녀 한 명당 12세가 될 때까지 최대 480일을 쓸 수 있다. 아빠 할당제란 이 중 90일을 아빠 몫으로 두고, 사용하지 않았을 때 사라지도록 함으로써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구조로 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게 되면 독박육아라는 말도 쏙 들어갈 것이다. 또한 초보 부부가 육아가 힘들어 보모를 고용하게 되면 인건비의 50%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지원도 한다. 이로써 스웨덴은 2010년 기준 출산율이 1.98명까지 올랐다.
알다시피 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이고 따라서 일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 테니 앞으로 맞벌이 가정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걱정하지 않도록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회사 내에 두고 운영해도 좋을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구 감소의 심각성이 보도되는 상황인데 제발 정부는 쓸데없는 정책을 만드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아이를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정책을 강구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