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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02. 2024

달콤한 빚

내 꼭 갚으리다


여자들이 주기적으로 배가 싸르르 아픈 그날이다.


때 이른 11월의 눈, 그것도 폭설이 예정되어 있다 하니 몸이 아프든 말든 평소보다 서둘러야 한다. 나는 집에 있으면 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니까. 눈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평소보다 더 이른 아침을 준비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과 달리 내 몸은 천근만근.


몸을 일으키려고 자세만 조금 틀었을 뿐인데 "으으으..."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그냥 누워 있어. 내가 애들 챙겨 보낼게."


마침 연차인 남편이 내 옆에서 눈을 부스스 억지로 뜨고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끙차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제 남편 아님 주의. 류수영 님입니다.



코에 은은히 풍기는 들기름 냄새.


며칠 전, 백종원의 들기름을 넣은 계란프라이 레시피를 보는가 싶더니 그걸 만드나 보다. 구수한 기름 냄새, 지글지글 기름 소리,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밥상 위에 탁탁 놓는 소리. 그러고는 곤히 자는 아이들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


"일어나~~ 학교 가자~~"


눈을 비비며 나온 아이들이 아빠가 따끈하게 차려준 아침밥을 냠냠 먹는 소리. 디저트로 깎아준 사과까지 야무지게 다 먹은 아이들은 학교 갈 준비가 얼추 다 끝난 것 같은데 "윙--"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아이들이 점퍼를 입고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 소리.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야 맞는데 반대로 내게 다가오는 어른 발소리.


그러더니 살포시 이불이 들리고 전자레인지에서 방금 꺼내온 따끈한 찜질팩이 내 몸 가까이에 놓였다.


"갔다 올게."


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등교시키러 나간 남편.




이렇게 또 빚을 졌다.


고맙다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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