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놀이터의 아침해는 한순간에 떠오른다.
Sick boy - Social distortion
라이브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홍대 놀이터에서 밤을 지새웠다. 당시 홍대 거리에는 스컹크 헬, 스팟, DGBD 등 펑크 라이브가 열리는 클럽들이 꽤 있었고 이런저런 공연들이 끝나고 나면 펑크들은 홍대 놀이터에 모여들어 밤의 이야기들을 꽃피웠다. 사실 그 어떤 라이브도 보지 않고 집에서 나온 뒤 곧장 낮부터 놀이터에서 온종일 지내는 친구들도 많았다. 홍대 놀이터는 뒤풀이 장소이기도 했지만 그전에 우리 삶의 베이스캠프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홍대 놀이터는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구역이 나눠져 있었고 홍익 노인회 앞쪽,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미끄럼틀이 있는 곳은 펑크들의 구역이었다. 지금은 놀이터에서 펑크를 찾을 수 없지만 당시의 놀이터는 서울 펑크들의 보금자리였다. 각양각색의 젊음들이 밤새도록 웃고 떠들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홍익 노인정 건물 뒤쪽에서 아침해가 갑자기 떠오른다. 건물 뒤로 해가 넘실넘실 올라오는 게 보이는 게 아니고 마치 백열등을 켜듯이 갑자기 확 밝아지며 놀이터의 아침이 온다. 술과 웃음에 취해 우당탕탕 뒤죽박죽의 밤을 보내고 나면 그렇게 순식간에 해가 떠오르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종종 그 자리에서 그 상태 그대로 누워서 자고 그대로 저녁의 친구들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20대 시절의 절반 이상을 이곳, 홍대 놀이터에서 보냈다.
그때의 기억이 아름다웠냐 묻는다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곳은 나에게는 우정과 추억의 무대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종종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적과 아군을 나눠 치고받고 싸우는 싸움터가 되기도 했고, 특히 더운 여름밤이면 매일같이 폭력적인 사건들이 벌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상처와 적개심만 가득 안고 그곳을 영영 떠나버리기도 했다. 가끔은 이상한 로맨스가 꽃피기도 했고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을 꽤 만나기도 했다. 대개 먹고 마시고 싸 대고 병이 깨지고 우당탕탕 사고가 터지는 본능만이 지배하는 정글이었지만, 때로는 갈 곳 잃은 청춘들이 모여 세상을 좀 더 곱고 참하게 만들기 위해 밤새 대화하고 다짐을 하고 꿈꾸던 토론의 장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선과 악이 혼재된 그곳에는 생생한 삶의 열기가 있었고 서울의 펑크와 로큰롤 문화가 있었다. 이는 소란스러웠을지언정 서울의 밤거리를 더 다채롭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펑크들의 홍대 놀이터 시대는 끝났다. 마치 갑자기 확 떠오른 아침해처럼. 어느 날 문득 놀이터의 펑크족들은 사라졌다. 몇몇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몇몇은 새로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계속 해내고 있다. 놀이터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써나갈 계획이다.
아름답지도 딱히 소중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이십 대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하늘로 삐죽 솟은 형형색색의 머리카락과 가죽재킷, 찢어진 밴드 티셔츠에 부츠를 신고서. 과열된 감정들과 각자의 존재감을 마구 뿜어내면서 우리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덥고 습하고 뜨거웠던 청춘의 밤들. 좋아하는 노랫말들과 삶의 거리를 어떻게든 좁혀내려고 애쓰면서 지루하게 흐르는 시간들을 그곳에서 보냈다. 어쩌면 지금은 힙합이든 다른 무엇이든 새로운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지루하게 흘러가는 놀이터의 밤을 견디며 그때의 우리와 같은 것들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