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새 친구를 만났어요. 20210321
나는 오늘도 새 친구를 만났습니다.
나를 먼저 반기는 친구는 먼동입니다. 내가 먼저 네가 먼저랄 것도 없습니다. 경주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샘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눈을 뜨면 밖을 내다봅니다. 먼동이 먼저 눈을 뜨면 어느새 내 방안을 엿봅니다.
먼동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의 안부를 묻습니다.
“밤새 안녕하셨던 거야.”
기지개를 켜는 나에게 다가섭니다. 눈 맞춤을 했습니다. 짧은 인사입니다. 먼동은 늘 햇살에 자리를 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구름에도, 비나 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는 또 다른 친구가 있습니다. 해넘이 친구입니다. 이 친구도 먼동처럼 내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집니다. 반가움에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발걸음을 잠시 이쪽저쪽으로 옮겨갑니다. 해 걸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먼동처럼 늘 어둠에 자리를 내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달님에게도 별에도 자리를 양보합니다. 구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비에도 같은 마음입니다.
우연찮은 일로 인해 일박 이일동안 내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두 달 전 윗집의 갑작스러운 누수로 인해 우리 집에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작은북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집안을 채웠습니다. 수도관에 이상이 있었답니다. 상태가 수습되고 습기가 제거되자 벽과 천장에 벽지를 새로 하게 되었습니다. 세간을 옮겨야 한답니다. 우리 부부는 이 세간들을 옮길 수 없습니다. 자질구레한 것이야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무겁거나 큰 물건들이 문제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어디 좋은 곳에서 일박하고 오세요.”
핑계 삼아 일박이일 여행이라도 갈까 했지만, 집 근처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로 나를 찾기라도 한다면 하는 노파심입니다.
오늘은 숙박의 장소를 옮기다 보니 변화에 해넘이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지 못한 채 지나쳐 버렸습니다. 나는 저녁노을 자주 감상하지만 늘 새로운 마음입니다. 오늘의 저녁노을이 어제의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변화에 아름다움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해갑니다. 삶의 영역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고 미지의 영역도 보여줍니다.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을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간혹 눈비가 심술을 부리고 구름으로 장막을 치기도 합니다.
호텔에서 맞는 먼동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집에서 십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보는 장소나 각도에 따라 조금 낯설어 보일 뿐입니다. 오늘은 내가 먼저 먼동을 맞이했습니다. 잠자리가 낯설어서인지 늦게 잠이 들었는데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두꺼운 커튼을 열었습니다. 여인네의 속치마처럼 얇은 커튼이 속살을 가리고 있습니다. 아내가 눈을 뜰까 봐 살그머니 벽의 기둥 쪽을 향해 밀어냈습니다. 밖은 가로등이 밤새워 어둠의 접근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공원의 연못 위로 별 하나가 하늘에 박혀있습니다. 내가 지금 호수에 있다면 놀러 온 별을 조심스레 건져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얼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가끔은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할 때가 있으니까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뭐해요. 피곤할 터인데 더 자지 않고.”
맞습니다. 어제는 이곳저곳으로 많이 쏘다녔습니다. 외식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평소에 잘하지 않던 군것질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고개를 돌렸습니다. 먼동이 달려옵니다. 산 정상과 하늘 사이로 붉은 물감이 서서히 번집니다.
“잘 잔 거야? 좋은 하루를 기대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늘이 있음에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나는 이만 육천육백사십육이나 되는 먼동의 얼굴을 마주했고 이만 육천육백사십오나 되는 해넘이를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만날 새로운 모습의 이 친구들! 그들이 나를 맞이하는 한 나는 거부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먼동은 내 마음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얼굴이 붉어집니다. 태양에게 나를 맡기고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합니다. 오늘도 새로운 먼동입니다. 더구나 새로운 장소에서의 만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