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새 친구들 20210322
새 친구들이 몰려왔습니다. 그것도 초저녁입니다. 오겠다는 연락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늦게 온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딩동’
문이 열리자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식탁 의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빈 식탁은 내보일 것이 없습니다. 그냥 침묵을 지킬 뿐입니다.
“뭐 친구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현관문이 열림을 알아차린 후 잠시 뜸을 들이다 주방을 향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내가 미소를 머금은 채 손짓을 합니다.
“꼬마 친구들을 구경해 봐요.”
작은 집 안에는 열여섯의 친구들의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서로가 불평하지 않도록 넓이를 똑같이 차지했습니다. 아, 칸막이도 있습니다. 서로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배려인가 봅니다.
아내는 이들을 주섬주섬 꺼내어 식탁의 중앙에 모았습니다. 허전하던 자리가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것들로 채워졌습니다. 둥근 몸통에 제각기 입은 옷은 달라도 한 가지 통일을 이룬 것이 있습니다. 모자입니다. 서로의 의견일치를 보았는지 하나같이 흰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약간의 굴곡이 있는 납작한 모자입니다. 테두리도 있습니다. 바람에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인지 단단하게 씌워져 있습니다. 큰바람이 불면 몸이 쓰러질망정 모자가 벗겨질 염려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드는 친구를 골라 봐요.”
어느새 찻물이 주전자에서 끓고 있습니다. 눈을 분주히 움직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들을 떼어놓아야겠습니다. 모자만을 봐서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입니다. 어지럽지 않을 정도로 하나씩 몸통을 들어 돌려봅니다. 눈에 익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순한 아메리카노, 진한 아메리카노, 생강 꿀차, 헤이즐넛,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그것 말고.”
나는 손에 들었던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매일 마시는 것이니 다른 것을 선택해 보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손을 대 보지만 선 듯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없습니다.
“변화를 시도해 봐요.”
내가 애용하는 커피에 대해서는 역사가 미천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차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로 한 잔, 두 잔, 받다 보니 한동안 커피믹스에 입맛이 들었습니다.
‘커피 한 술, 크림 두 술, 설탕 두 술’
다음은 일회용 커피믹스, 손가락만 한 봉지 커피입니다.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입에 길이 들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느덧 국민 커피가 되었습니다. 생김새는 달라도 세계인의 입맛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외국인도 좋아해서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입니다. 이 친구를 매몰차게 멀리했습니다. 싫어서는 전혀 아닙니다. 내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커피보다 과도한 설탕, 크림이 인체에 좋지 않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내 귀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영향도 있습니다. 그 후 아내의 기호가 달라졌습니다.
“입이 간질이기는 하는데, 알 커피만 먹기로 해요.”
아내는 커피를 가는 기계와 커피 내림 기구도 샀습니다.
설탕과 크림이 없는 커피는 팥소가 없는 찐빵입니다. 적응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피가 건강에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모르는 사이에 입에 붙게 되었습니다. 독도 조금만 사용하면 약이 된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커피도 하루에 한두 잔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기에 믿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내 커피의 기호는 연한 아메리카노입니다. 첫맛은 별로이지만 뒤끝이 개운합니다. 다른 커피에 비해 값도 저렴합니다.
“매일 같은 것만 먹나.”
아내의 말대로 며칠 동안 차례로 새 친구들을 대했습니다. 매일 같은 음식을 사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네 맛은 내 맛이 아닙니다. 아직도 수줍음이 많은 내가 새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것처럼 입맛 또한 비슷합니다. 길든 맛을 바꾸기는 김치 맛 바꾸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내 음료의 기호는 늘 따끈하고 연한 아메리카노입니다. 가끔은 커피 한 술, 크림 두 술, 설탕 세 술 하는 옛 친구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새 친구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마음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친구보다 옛 친구들이 더 좋습니다. 코로나가 위협을 가해도 초등학교 동창들 얼굴을 보러 가야 합니다.
“자식들,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던 거야!”
큰 소리만큼이나 손을 잡고 흔듭니다. 몸을 부둥켜안고 이마를 부딪칩니다.
옆을 지나치던 사람이 깜짝 놀라 비켜섰습니다.
‘오늘, 오늘 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