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늦장마 20210831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밖을 내다보니 우산을 쓴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분주히 오갑니다. 자동차들도 거리를 메웠습니다. 출근 시간이 실감 납니다. 기상청에서는 며칠 전부터 늦장마라고 했습니다. 이미 제주도를 비롯한 남쪽 지방은 비가 많이 내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 고장은 때를 맞춰 흐린 하늘을 보이지만 장마다운 비는 보이지 않습니다. ‘장마는 무슨 장마’ 마음속으로 생각했는데 오늘은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 시간을 빼고는 종일 소나기를 퍼부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어제 온 문자가 마음에 걸립니다.
“금일까지 책을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서관에서 보낸 알림입니다. 읽지 못한 뒷부분이 남아 있지만 반납해야 합니다. 연체되면 그날 수만큼 필요한 책을 대출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책을 함께 읽느라고 일주일 동안 연기를 했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밖을 보며 주춤거립니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을 보다가 수시로 밖을 내다보았지만 내 마음을 헤아려 줄 비는 아닙니다. 마음을 굳혔습니다.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동과 동 사이를 빠져나갈 즈음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평소에도 바람이 드나드는 골목이니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합니다. 휘청하고 우산이 요동을 칩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우산은 분명 뒤집혔을 겁니다. 몇 분 사이로 내 얇은 바지가 빗방울의 세례에 후줄근해졌습니다. 가랑이가 종아리에 탈싹 붙어버렸습니다. 책가방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오랜만에 겪어보는 가을장마입니다. 지금쯤은 따끈한 햇볕이 대지를 덮어야 맞습니다. 가을이 시작되었으니 가을 맛을 내야 합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처럼 온갖 곡식과 과일들이 햇살에 통통하게 살을 찌우며 익어가야 합니다. 날씨가 계속 말썽을 피우니 올해는 흉년이 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됩니다.
요즘의 일기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닌가 봅니다. 뉴스를 보니 일본, 중국, 미국 등 몇몇 나라들은 난리입니다. 산사태에다가 침수로 말이 아닙니다. 중국은 지하철에 물이 들어차 많은 인명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시가지가 물에 잠겨 보트로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허리케인이 남부 해안으로 비바람을 몰고 상륙하여 나무와 가옥들을 쓸어버렸습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의 말로는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며 업보라고 말합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입니다.
얼마 전에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기후 회의를 열었습니다.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를 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자는 의견입니다.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에 따른 탄소량을 줄여보자는 취지입니다. 해마다 회의는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습니다. 국가와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나라의 경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인류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협력을 모색해야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밖을 내다봅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어느새 어둠이 몰려옵니다. 직원들의 몸놀림이 빨라집니다. 문이 닫힐 시간이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빗방울이 몰려듭니다. 우산을 때리고 바지를 흔들고 신발을 적십니다.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그늘막으로 뛰었습니다. 형수님의 안부 전화입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코로나 예방주사는 맞으신 거예요.”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속에는 오늘의 날씨도 들어있습니다. 비가 많이 와 피해는 없느냐 묻습니다. 수원에도 비가 많이 내린 모양입니다. 뉴스를 보았습니다. 피해 이야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중부지방을 비롯한 남부지방에도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안전 문자가 두 번이나 왔습니다.
‘옹진, 강화 호우주의보.’
‘시설물 점검. 인명 피해 조심’
비상근무를 해야 할 사람들과 가족들이 고생하게 생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카가 생각납니다. 도로 관리를 책임지고 있으니 물어보지 않아도 퇴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번에는 자신이 관리하는 도로가 폭우로 침수되어 며칠이나 야간 근무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잦은 한파와 고온 등으로 인한 이상 기후는 온 인류를 힘들게 합니다. 함께 대책을 세워 피해를 막아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