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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17. 2024

☏2021

8. 접시 20210901

접시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입니다. 비대면 교육으로 하는 미술 공부라서 제대로 지도받기 어렵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며 배우면 좋으련만 시대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몇 시간에 걸쳐 그림을 그렸습니다.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설명을 들었습니다. 완성은 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을 찍어 강사에게 보냈습니다. 그림이 외로워 보인답니다. 새를 한 마리 더 그려 넣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향해 날아드는 새를 한 마리 추가했습니다.


아직 가마에 들어가지 않은 접시라서 무릅니다. 강사의 말대로 갓난아기 다루듯 했습니다. 두툼한 신문지 위에 큰 수건을 겹쳐놓고 작업했습니다. 다음 주에 지정된 장소로 가져오라고 하는데 운반 과정에서 깨질 염려가 있으니 조심에 조심하라고 합니다. 신문지로 싸고 신축성이 있는 두꺼운 재질의 봉투에 담았습니다.


나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여러 번 봤습니다. 어렸을 때입니다. 고향의 이웃 마을 옹기공장에서 물레를 돌리며 질그릇을 만들고 굽는 모습입니다. 커서는 도자기 공방을 찾아가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간접 경험이기는 하지만 하찮게 여기는 흙에서 그릇이 되어 나오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접시를 매일 사용하면서도 직접 만들거나 그림을 그려본 경우는 처음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그릇과 함께 살아갑니다. 식사 시간은 물론 그 밖의 시간에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일과를 살펴봅니다. 아침 식사 시간입니다. 접시에는 달걀 반숙이 담겼습니다. 빵도 있습니다. 접시에 올린 찻잔을 받았습니다. 간식시간입니다. 아내는 접시에 과일을 썰어 내 책상 옆에 놓아주었습니다. 점심에는 김이 접시에 담겼습니다. 상추도 접시에 담겼습니다. 저녁입니다. 나물무침이 모둠으로 접시에 봉긋하게 올랐습니다. 두부 접시도 있습니다.


접시를 생각해 봅니다. 크기가 다릅니다. 모양새도 조금씩 다릅니다. 동그란 것, 네모난 것, 타원형인 것을 비롯하여 주름을 접듯 굴곡진 것도 있습니다. 색깔도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빨간색, 연두색, 흰색을 비롯하여 무늬가 있는 것, 그림이 있는 것 등 다양합니다. 평소에는 접시에 대해 아니 그릇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음식을 담는 것으로 단순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내가 접시에 직접 그림을 그려보니 좀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전번 달에는 직접 대접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간단한 도자기 실습입니다. 물레를 돌리는 복잡한 과정은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찰흙 재료를 손으로 조물조물 빗었습니다. 열심히 만든다고는 했지만, 칭찬받지 못했습니다. 강사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내가 보아도 좋은 말을 해주기는 어렵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색감을 제쳐놓고라도 우선 투박하고 거칩니다. 모양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영화가 생각납니다. ‘사랑과 영혼’입니다. 물레를 돌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남녀가 손을 감싸고 그릇을 빚습니다. 장면이 멋져 보였는데 매끄럽게 빗어지던 그것은 그만 망가지고 맙니다. 그릇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지금과는 달리 나는 순간 남녀의 멋진 모습에만 눈이 가 있었습니다.


그릇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능보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집안을 화려하게 꾸미는 미의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접시를 모으고, 또 어떤 사람은 찻잔을 모으기도 합니다. 주전자를 모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릇만을 가지고도 취미가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릇의 일부인 도자기는 요즈음 어떻습니까. 식생활의 도구라는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봅니다. 도자기 축제가 열리고 알려진 명품들이 사치품으로 팔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자랑거리인 청자와 백자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역사와 그 우수성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습니다. 장인들은 도자기에 혼을 불어넣기 위해 온 힘을 쏟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접시도 들어있습니다.


접시와 그림 도구를 정리하며 도자기를 음미해 봅니다. 그 속에는 삶의 일부가 들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투박하기는 하지만 창작하느라 고생했어요.”


접시에 담긴 찻잔을 들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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