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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18. 2024

☏2021

9. 여행 20210902

여행이라고요? 삶이 여행이 아니겠습니까. 모르는 곳을 향해 하루하루 마음을 옮깁니다. 긴 여행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나 꽤 남은 듯합니다. 철학적인 생의 여행은 잠지 미루어 두고 흔히 가벼운 여행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매일 여행의 재미에 빠져버렸습니다. 밤 뉴스가 끝나기가 무섭게 채널을 돌립니다. 교육 방송(EBS)입니다. 매일 그 시간이면 세계 여러 나라를 소개합니다. 각각의 여행자들이 곳곳의 자연과 문화와 함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일 안내자를 따라 함께 여행합니다. 나라마다 여행 안내자가 바뀝니다. 주로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어쩌다가 다른 나라 사람도 있습니다. 각각 다른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들의 성향에 따라 여행의 모습도 다릅니다.


오늘도 뉴스가 끝나자 재빨리 여행의 시간에 합류했습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뉴스 시간과 여행시간이 교집합처럼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잠깐이니 별지장이 없습니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이 일정 부분 소개됩니다. 유럽의 성당 문화답게 성 야고보 성당이 소개되고 순례길의 중간에 피뢰침처럼 높이 솟은 십자가가 보입니다. 이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길을 따라 여행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군요. 안개가 끼는가 했는데 비가 내립니다.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여행은 왜 할까요. 나는 몇 가지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첫째 보는 재미, 둘째 먹는 재미, 셋째 함께하는 재미, 넷째 생각하는 재미입니다. 이외에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더 추가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여행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직업을 그만두기까지는 주로 국내의 여행이었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니 하루 일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중에도 주로 경비가 별로 들지 않는 산행이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이라 체력이 뒷받침되어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숙박을 한 때도 있지만 뭐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래도 보는 재미는 잊을 수 없습니다. 철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은 지루한 일상을 달래주는 효과가 큽니다.


오늘의 여행자는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가는 곳마다 그곳의 음식 문화를 소개합니다. 맛있다는 말을 입에 달았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맛이 저절로 다셔집니다. 알고 있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식단입니다. 군것질거리도 있군요. 먹는 재미, 그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맛본 음식들, 입에 맞는 것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거북스러운 것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달팽이 요리가 유명하다기에 주문했는데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옛날의 식단 그대로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겉보기에도 입맛이 달아나게 생겼지만, 입안에서의 느낌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장기도 있고 아까운 생각에 다 먹기는 했지만, 다시는 먹을 것이 못 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맛보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더 많은 후회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지 음식은 꼭 먹어봤어야 하는데.’


같이 간 사람 중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수시로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추장과 밑반찬을 가져온 예도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가끔 한식집에 들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우리 음식을 잘한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어느 나라든 문화를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음식을 빼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나와 친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서양 사람 체질인가 봐, 한국에서는 종종 속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만…….”


여행은 혼자 하는 재미도 있지만, 함께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여행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때에 따라서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도 나눌 수 있습니다. 추억 일부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입니다. 내 옆자리에 나와 함께 여행하게 된 낯 모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남다른 행동을 보였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무척 괴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똑바로 앉지 못하고 자기의 부인 옆에 쓰러질 듯 비스듬히 몸을 뉘고 신음했습니다. 아내는 난감한 듯 내내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습니다. 긴 시간의 비행입니다. 얼마를 갔는지 모릅니다. 잠시 잠이 들었나 했는데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승무원에게 포도주를 주문했습니다. 한 병으로는 숨이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비행을 끝낼 때까지 이어지는 음주에 몸을 잘 가누지 못했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있어?’


다음 날 아침 시간입니다. 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의 친절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모습을 떠올리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통성명했습니다. 나이가 같습니다. 내가 두 달 정도 빠릅니다. 나는 테이블에서 일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졌습니다. 첫인상과는 달리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행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왔더니 심통을 부렸어요.”


어제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내 또한 여행하는 내내 친절하고 붙임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부부와 친구로 지내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함께 다니는 동안 서로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삶이었습니다. 기업체의 임원이 되기까지 여러 나라에 파견 근무를 했습니다. 현지인들과의 언어의 소통이 잘 이루어져 가는 곳마다 불편 없이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생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숙소에 들어오면 하루의 일정을 되돌아봅니다. 기억에 남는 일, 재미있었던 일을 더듬어 보고 다음을 위해 간단한 기록으로도 남깁니다. 그리고 내일의 일정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여행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한 여인이 하늘을 찌를 듯한 십자가의 기둥에 이마를 대고 눈물을 흘립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한 사랑하는 여동생이 지난해 세상을 떠났답니다. 안타깝습니다.


또 다른 부부입니다. 똑같은 자세로 십자가의 기둥을 부여안고 있습니다. 남편의 눈에 눈물이 글썽입니다. 아내의 헌신으로 자신의 병이 완쾌되어 순례길을 오게 되었답니다. 기쁨의 눈물입니다. 고마움의 눈물입니다. 순례자들의 발걸음에는 각각의 사연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는, 나는,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그들처럼 머리를 조아려 봅니다.


‘병석에 오랫동안 누워있는 형님이 완쾌하기를.’


여행이 때로는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여행이 뭡니까. 삶 그 자체가 여행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은 혼자가 됩니다. 지나온 길이 너무 멀어서 되돌아가기에는 해가 짧습니다. 오늘은 음식 기행에서의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괜히 배가 고파집니다. 음식 구경이라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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