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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19. 2024

☏2021

12.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20210905

혐오식품이 아니라면 투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생각과는 달리 먹을 것에 대해 타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맛이 없다, 불결해 보인다, 또는 영양가가 없다는 둥 이유를 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들 중 한 사람이라는데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 볼 때 배부른 타박입니다.


나는 어려서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건강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던 관계로 음식에 거부감이 컸습니다. 배탈을 안고 살았습니다. 먹기 싫다는 표현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가로젓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렇다고 좀 더 나은 음식을 대접받은 일이 없습니다.


육이오 전쟁이 끝났지만 나라의 사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최빈국에 속하고 가정은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난민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는 내전에 휩싸인 나라의 국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맛있었는데.”


뜸을 들이지만 선뜻 상대방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야 생각해 낸 것이지만 ‘김’이었어하고, 두툼하고 반지르르한 김 한 톳을 떠올렸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지만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나를 살린 것은 김이라고 합니다. 음식을 보면 늘 외면하던 내가 어느 날 맨 김밥이 입에서 잠시 노는 순간 찡그린 얼굴이 펴졌답니다. 손가락이 김 그릇을 가리켰습니다. 나는 지금도 김을 좋아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 사람도 그렇습니다. 서양에는 김을 간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김에 맛 들인 후 수출량이 증가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양의 한 불교 승려 이야기입니다. 한시적으로 불교에 대해 체험하고 싶었던 그는 규율에 따라 고행에 가까운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입니다. 규칙상 식사는 하루 한만 먹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승려들을 따라 일찍 줄을 서서 탁발합니다. 바리때 안에는 각기 다른 밥과 채소요리와 과일 등의 음식이 담깁니다. 같은 밥과 채소요리이면서도 맛은 제각각입니다. 서양의 음식과도 다르니 입에 맞을 리 없습니다. 정체 모를 재료와 맛에 진저리가 쳐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먹는 것이 고역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명상보다 음식에 적응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명상은 음식의 거부감을 거두어 갔습니다. 음식을 보시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렸습니다. 음식이 되기까지의 각각의 재료들을 생각하다 보니 맛을 음미하는 일이 오락으로 변했습니다. 맛이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는 선입감이 사라졌습니다. 승려는 차츰 식사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음식 맛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과 그 외에도 다양한 맛의 표현이 있지만 세월이 지나도 내가 좋아하는 맛의 표준은 잘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 맞추어진 맛은 결코 내 맛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첨가물이 들어간 자극적인 식품들을 좋아합니다. 기름진 음식도 좋아합니다. 내 맛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담백하고 무미건조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한마디로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선호합니다. 채소나 과일의 경우는 있는 그대로 먹을 경우가 많습니다. 생선을 회로 먹을 경우도 조미료에 찍어 먹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 맛을 즐깁니다.


“무슨 맛으로 먹어요.”


내 식성을 눈여겨본 사람들이 말합니다. 상대는 슬그머니 조미료를 내 앞으로 밀어놓기도 하지만 나는 애써 사양합니다. 여러 번 씹다 보면 고유의 맛이 입안에 감돕니다. 언제부터인가 음식의 고마움을 자주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 식품이 내 입에 오기까지의 과정도 상상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식재료나 음식이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배고픔으로 시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무료 급식을 찾아야 할 정도의 일부 계층을 빼고는 풍족한 식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맛이 없다고 투정하는 가운데 맛있는 것을 찾아 열심히 먹습니다. 드디어 영양이 넘쳐 체중을 줄이기 위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풍족한 생활 덕분에 식도락가들도 넘쳐납니다. 음식 여행 프로그램까지 생겨났습니다. 맛만을 찾다 보니 폭식이나 편식으로 인해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합니다.나라에서는 비만도 질병으로 분류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옛날의 삶을 떠올리다 보면 행복한 고민입니다. 하지만 맛만을 따지는 식생활은 스스로 고쳐야 합니다. 균형 있는 식생활이 중요합니다.


나요, 유년 시절에 비해 건강한 소화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탈이 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있는 그대로를 섭취하려고 노력한 덕분입니다. 되도록 자극적인 음식을 피합니다. 소식을 하려고 마음을 다집니다.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꼭 집어 한 가지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대답하라고 하면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입니다. 요즘 팔도밥상이 텔레비전 화면에 종종 선을 보입니다. 개다리소반에 오른 어머니의 정갈한 음식이 떠오릅니다. 잡곡밥에 된장찌개, 나물무침, 각종 김치, 건새우가 들어간 아욱국, 조개 몇 개 들어있는 미역국……. 생각을 떠올리며 중언부언하다 보면 한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 이런 것입니다.


이제는 아내도 어머니의 손맛만큼이나 발전했으니, 푸념이 슬그머니 사그라졌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집밥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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