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공간이 있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 듣겠다고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사정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으며 처참한 감정을 되새길 필요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조금씩 꿰매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는 공간.
그래서, 상처를 끌어안고 혼자 견디려 하는 그가 안쓰러워서, 그를 그 공간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그를 휘감아 할퀴고 있는 폭풍이 가라앉고 산들바람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기를, 눈을 가리고 숨을 막으며 짓누르고 있는 안개가 걷히고 연노랑 햇살이 따스한 담요처럼 감싸주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그러면 되는 걸까. 사람으로부터 위로받지 못하고 사람을 깊이 알게 되는 것마저 힘겨운 이에게 어떤 공간이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한 걸까.
그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이다.
보고 들을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멍하니 넋 놓고 있는 법을 잊어버린 듯이 매 순간 즐길 거리를 찾으면서도 쉴 새 없이 느껴지는 자극에 피곤을 느낍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을 일 없겠다 싶은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감정이 격앙되는 것보다는 넋 놓고 앉아서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평온함이 좋네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습니다. 햇볕 잘 드는 넓은 창이나 애교 많은 반려동물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막상 갖기는 어려운 존재를 통해 일상의 행복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소파에 늘어져서 건성으로 읽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고 심장 박동이 크게 요동치지 않으면서도 뭉클함이 있는, 나를 투영하고 내 삶에 대입하여 생각할 거리가 있는 글이 되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일상적인 이야기는 읽으면서 글의 내용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고 등장인물에 나를 대입하는 것도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이야기의 재미는 그다지 없다는 말 같고, 그래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게다가 문장을 읽으면서 시각적으로 연상하여 상상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벌이는 상황을 구체화하는 일은 제법 노력이 필요합니다. ‘평온함’을 추구한다더니 노력이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진짜로 변명을 하자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보다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이죠. 공간 안에 있는 사람 또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공간과 사람이 인연으로 만나고 사람이 공간 안에 있으면서 상호작용을 하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공간에 대한 묘사와 상황에 대한 서술을 상세히 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니, 모쪼록 독자가 글 속의 세상에 쉽게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