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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월 Oct 12. 2023

유턴을 해야 할 때

[ 어중간한 소설 ] S#4. 2018년 5월 어느 날

서울의 강북에 있는 오래된 주거지역. 전철역이 있는 대로변은 얇은 띠 모양의 상업지역이며 그 내부는 전부 제1종일반주거지역이다. 노선상업지역에 제법 크고 번듯한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찬 것 외에는 눈에 띄는 변화 없이 오랫동안 저층 주거지역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만큼 오래 이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이 많고 반대로 싼 집을 찾아 이 동네에 와서 그들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젊은 뜨내기도 많다.  


전철역도 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도 웬만큼 다 있어서 편리하고, 유동인구라고 해봐야 사는 사람들뿐이라 한적하고, 안정감이 들어서 살기 좋은 동네인 건 분명하다. 반면에 비좁은 골목은 차도 사람도 모두 불편하고, 어디 한 군데 숨통 트일 여유가 없어 답답하며, 낡은 만큼 쾌적하지 못하다. 재작년쯤부터는 붉은 벽돌 2~3층 다가구주택이 필로티 구조의 4층 다가구주택으로 바뀌는 추세여서 늘 동네 어디인가에서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 년 내내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살기 편한데 불편하기도 하고 조용하면서 시끄럽기도 하고. 좋은데 싫기도 한 동네.


나는 그 동네에서 역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에 붙어 있는 4층 다가구주택에 산다.       





방 말고 집에 살고 싶었다. 방 하나에 집의 여러 가지 기능을 대충 집어넣어 현관문(이자 방문)을 열면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원룸’이라는 주거 형태는, 비좁고 불편해서 싫은 것보다 방문을 열면 바로 아무나 막 다닐 수 있는 길(건물 내부에 있는 복도라 할지라도)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TV를 보다가, 침대에 누워서, 문득 시선이 현관문을 향했다. 지금 저 허술한 싸구려 문 앞으로 아무나가 지나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저 문 하나만 열리면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속옷만 입은 채 나오는 나와, 우리 엄마도 본 적 없는 지저분한 몰골로 TV를 보는 나와,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아무나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니 문을 열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가 뭘 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삶이 길바닥에 내쳐진 것 같아 서러웠다. 확실하게 내 영역을 구획 짓는 울타리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집에 대한 내 열망의 시작이었다. 나만의 영역은 수평뿐 아니라 수직으로도 지켜져야 하므로 내 꿈의 집은 단독주택인데, 그건 이상형이 ‘정우성’, ‘김혜수’처럼 멋진 사람일지라도 그들과 사귀는 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경우이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후 십 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를 하면서 방이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지고, 붙박이 가구가 생기고, 현관에 전실이 생기면서 전보다 더 나은 원룸에서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집을 찾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왔다. 강남에 있는 회사로부터 많이 멀어졌지만, 전철역이 가깝고 무엇보다도 집세가 서울 치고는 저렴해서이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게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그러니까 이 동네가 역세권이면서도 집이 싼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전철 노선과 겹치는 8차선 대로를 제외하고 블록 내부는 보행자와 차량이 얽혀서 다니는 폭 좁은 골목길뿐이고, 좁은 골목길에는 그만큼 좁은 필지들이 매달려 있으며, 좁은 필지 안에 지은 지 2~30년 되는 붉은 벽돌의 다가구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싹 밀고 아파트단지를 지으면 좋겠다고 누군가는, 어쩌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1종일반주거지역이기 때문에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 개발을 못 해서 오랫동안 그대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 동네는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저층의 주거환경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에 제1종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된 것이기도 하다. 집주인들은, 아파트를 지어서 돈을 벌기는커녕 낡은 집을 고치든 부수고 다시 짓든 뭘 해도 집세를 많이 올리지는 못 해서 본전을 뽑지 못 하니 손 놓고 있는데, 저층 주거환경이 ‘바람직하다’는 게 무슨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하겠지. 하지만 덕분에 나처럼 돈 없고 차 없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서울의 역세권에 있는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근에 학부모들이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초‧중‧고교가 없고 학원도 없어서 ‘애 키우기 좋은 환경’이 아닌 덕분에 내가 기회를 얻을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학령기의 자녀가 있는 중산층 가정의 주거수요가 미치는 영향과, 집값과 학군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숫자로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할 테니까. 결론적으로는 개발의 가능성이 희박하고 학군이 좋지 않다는 부동산의 입지 측면에서 치명적인 단점이, 순수하게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을 찾는 나에게는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회사를 나오니 밖이 훤하다. 해가 길어지기도 했고 야근을 안 해서이기도 한데, 둘 다 기분 좋은 이유다. 야근을 안 하면서도 6시 땡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왜 안 되는 건지, 야근 수당 없이 야근하는 직원의 눈치를 왜 대표님이 아니라 야근 안 하는 직원이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회사 밖으로 나왔는데 밝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출근길보다는 사람이 조금 덜 많고 전철이 조금 덜 지연되어서 조금 덜 고단한 퇴근길 피크타임을 기꺼이 감수하며 집으로 간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녁을 해 먹을 수 있는 날이, 그만큼 시간과 체력이 되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뿐인데 오늘이 그날이다. 거대한 물살과도 같은 인파에 휩쓸려 전철을 타고 갈아타고 가면서 집에 있는 식재료들과 그것들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메뉴를 떠올린다. 장을 보기만 하고 요리를 하지는 않은 지 꽤 돼서 집에 뭐가 많기는 할 거다. 모처럼 거창한 메뉴를 제대로 만들어 먹을까. 메인 메뉴하고 곁들임하고, 최소한 두 가지는 있어야지. 머릿속으로 식재료를 다듬고 썰고 익히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다가 벌써 지친다. 전철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오니 해는 이미 다 저물었고 어둑어둑하다. 아무거나 금방 되는 걸로 대충 해 먹어야겠다.


역에서 집까지 거리는 약 500m,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안 걸린다. 최대한 대로변을 걷다가 안쪽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전철역 출입구 근처에서 바로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구획정리를 해서 도로와 필지가 격자형으로 반듯하게 만나지만, 전체적인 도시조직은 테트리스 판에 길고 짧고 굽은 여러 가지 모양의 도형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처럼 불규칙한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 집까지 500m밖에 안 되는 거리라도 여러 가지 경로가 만들어지는데 오늘은 블록 내부의 골목길 중에서도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 사람마저 없는 조용한 골목길 위주로 경로를 선택한다. 모든 골목길의 2차원적인 위치뿐 아니라 3차원적인 공간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익숙하기 때문에 고민 없이 발이 움직인다. 대로변에 얇은 띠처럼 지정된 상업지역 한 켜를 금방 지나고 바로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선다. 아, 그런데 정말 뭘 해 먹나, 싱크대에 그릇이 제법 쌓여있을 테고 뭐든 해 먹으려면 설거지부터 해야 하는데, 그냥 사 먹을 걸 그랬나, 걸으면서 생각하다가 문득 서서 뒤돌아본다. 대로변 노선상업지역에 지어진 제법 크고 번듯한 건물들이 나란히 서서 거대한 가로벽을 만들고, 그 뒤로는 집들이 어둠 속에 가라앉은 듯 낮게 깔려 있다. 반짝이는 가로벽과 어두운 뒷면. 왠지 이 동네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고 낯설게 느껴진다.


가로수도 가로등도 없는 좁은 골목에 들어선다. 분명히 나 혼자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걷는데 좁은 길에 생활 소음이 꽉 차 있어서 여기가 안인지 밖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요즘이 딱 난방도 냉방도 하지 않으면서 문을 열어 놓으면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계절이긴 한데, 신기하게도 골목에 붙어 있는 집마다 새어 나오는 불빛은 얼마 없으면서 소리는 온 골목에 퍼뜨리고 있다. 이 집은 세탁기를 돌리고 있구나, 이 집은 TV 뉴스를 보는데 어느 채널인지 알겠네, 이 집은 할머니가 손주에게 저녁을 먹이는 중이고. 나도 모르게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다가 부부싸움 하는 소리에 움찔한다.

 

“네가 가장으로서 여태 한 게 뭐가 있어?"


드라마 부부싸움 장면에서 많이 들어본 대사이고, 우리 엄마도 아빠랑 싸우면서 존댓말로 한 적이 있는 말이다. 심지어 “엄마가 여태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버전은 흔하게 사용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욕을 먹은 듯 마음이 안 좋다. 골목길을 벗어날 때까지 아내가 왜 그렇게 남편에게 화가 나 있는지 설명하는 말이 이어지는데 모든 단어, 음절 하나하나에 분노를 실어서 쏟아내는 것이 말이라기보다는 외침에 가깝다. 부부싸움인 건 분명하지만 남편을 향한 아내의 모진 말만 들리고 남편은 아무 말이 없어서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멀쩡히 길을 가다가 물벼락을 맞은 것 같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의 부부간 사정을 이렇게 내밀하게 알고 싶지 않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내가 얼굴은 잘 기억 못 해도 목소리는 잘 기억하는데, 동네 마트에 갔다가 저 목소리를 들으면 어떡하지? 지금의 이 악다구니가 떠오를 테고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거나 보면서 모르는 척해야 할 텐데 순발력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네. 저녁 차릴 걱정 따위는 잊어버린 채 숨죽여 걷는다. 얼마 안 가 골목 끝에서 좌회전하자 일순간 그 골목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이제 우리 집이 있는 골목이다. 우리 집은 5년 전에 이 골목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필로티 형식의 다가구주택에 있다. 이 동네에 살만한 집이 있는지 처음 보러 왔을 때는 준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법하게 생긴 흔한 다가구주택이지만 이 골목에서는 홀로 돋보이는 새집이며 동네를 통틀어서도 가장 최신식으로 지어진 집이면서 전세금은 주변 집들보다 조금 높은 정도였다. 아마도 그때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아직 설치되지 않은 싱크대와 붙박이가구 따위 뭐든 상관없다며 바로 계약했다. 집주인은 다른 동네에 여기보다 더 큰 임대용 다가구주택을 두 채나 더 갖고 있어서 계약을 관리하는 일이 버겁다고, 전세금 천만 원 이천만 원 올려봤자 돈도 안 되고 귀찮기만 하다고 하더니 처음 2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계약을 연장하면서 전세금을 삼천만 원 올렸다. 다행히 2년 후에는 그대로 계약을 연장했고 지금까지 5년 동안 삼천만을 들여 주거 안정을 확보한 셈이다. 저 앞에 골목길에서 살짝 물러서 있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 사선제한 때문에 꼭대기 층의 한쪽 벽이 집 안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바로 거기에 우리 집이 있다. 건물 출입문 앞에 서는 순간 문 옆에 주차되어 있던 차 아래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와 골목 저쪽으로 달려간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소리가 없으면서도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움직임이라니. 나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공격당한 느낌이고 자주 있는 일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우, 기분 나빠.


공용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법적 기준에 맞춰 최소 폭으로 만든 좁은 계단을 오른다. 2층과 3층에 있는 복도는 마찬가지의 이유로 좁으며 작은 원룸의 현관문 5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알고 지내는 이웃은 없지만, 그러고 보니 5년 동안 살면서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드나드는 소리가 다 들려서 대략 파악이 가능한데 이 시간에는 대부분 집이 비어 있다. 그래도 원룸에 살 때 문밖이 신경 쓰였던 기억 때문에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안에 있을까 봐 복도를 지나면서 인기척을 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출근이 급한 아침에는 간혹 서둘러 복도를 지나려다가 원룸의 현관문이 열려 급브레이크를 밟는 경우가 있다. 좁은 복도에 문이 열리면 옆으로 지나갈 틈이 없어서 다시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일에 대비해 갑자기 문이 열려도 당황하지 않도록 천천히 복도를 지나 4층으로 오른다. 다가구주택은 3층까지 지을 수 있지만 1층 전체가 필로티인 경우 4층까지 지을 수 있다. 그러니까 1~3층이 2~4층이 되는 거다. 그래서 우리 집 현관문에 302호라고, 집을 대표하는 숫자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4층이기 때문에 택배 주문할 때 나 혼자 눈치 꽤나 보고 있다. 택배기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안 그래도 3층 계단이 안 내켰을 텐데 막상 와 보니 4층일 때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보면 대여섯 계단 아래에서 택배기사가 상자를 위로 던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나라도 그럴 것 같아서. 그렇지만 막상 나는 매일 최소한 한 번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괜찮다. 오히려 우리 집 천장 위에 아무도 없는 게 인센티브랄까.


4층에는 방 두 개에 거실 겸 주방이 있는, 그 모든 공간이 다 작기는 해도 투룸이라고 불리는 집 2세대가 있다. 계단을 다 올라 아래층 원룸의 현관문과 똑같이 생긴 문 앞에 선다. 302호. 그리고 우리 집. 지나치게 따뜻한 느낌이 드는 말이다. ‘내가 사는 집’은 길고 그냥 ‘집’이라고 하면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이 지칭되지 않고, 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서 우리 집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되뇌어도 온전히 와닿지 않는다. 그나마 방이 아닌 집에 살게 된 후로는 괜찮지만 남의 소유인 원룸에 살 때는 ‘우리 집’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어색함을 누르느라 어깨가 움츠러들곤 했다.


‘이봐, 내가 왔어.’


현관문 위에 설치된 센서등을 바라본다. 너무 높은 데 있어서 키 작은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종종 있는 일이다. 센서등이 켜지지 않아도 도어록 키패드의 LED 불빛이 있어서 현관문을 여는 데에는 문제없지만, 왠지 우리 집이 나를 몰라보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내가 여기서 5년째 살고 있는데 말이야. 안 보이는 거니, 못 본 척하는 거니,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이 집에 이사 온 날짜를 조합해 만든 비밀번호를 도어록 키패드에 입력하고 문을 연다. 이제야 센서등이 켜진다. 익숙한 우리 집의 거실 겸 주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렇게 생겼지. 곧 센서등이 꺼진다. 천천히 문을 닫고 신발을 벗고 가방을 현관 앞에 내려놓은 다음 현관 바로 왼쪽의 벽에 앞에 놓은 소파로 가서 앉는다. 인터넷 최저가를 기준으로 선택한 소파답게 쿠션이 얇고 크기도 작아서 내 작은 몸으로도 깊숙이 앉을 수 없다. 눈앞이 온통 깜깜하다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집안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거실 겸 주방이지만 그중에서 주방에 해당하는 공간에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닫혀 있는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가느다란 빛줄기 몇 개로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구분이 다 되다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건가 보다.


그리고 그 동네가 떠오른다. 사실 지난달에 거기에 다녀온 후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겨우 1박 2일 머물렀던 그 도시의 그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기차역과 가깝고 도심과 인접해서 살기 편하며 무엇보다도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고 걷기 좋은 동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사람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고 과밀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그곳에서 걷는 속도에 맞춰서 살고 싶다. 예전 같으면 안 되는 이유 수십 가지를 먼저 떠올렸겠지. 일단 인간 생활의 기본인 의식주 해결을 위해 먹고 살 일과 집을 구해야 한다. 주변머리 없는 주제에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다 동원해 일자리를 구걸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직종에 지원해 할 수 있다고 매달리고 생면부지의 동네들을 다니면서 살 곳을 찾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 아프고 기운이 쏙 빠진다. 힘들 뿐 아니라 서울에 살면서 그동안 해왔던 일을 하는 것에 비해 몹시도 비효율적이고 무모하다. 그런데 말이야, 어쩌면 내가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거기에 살면 되는 거 아닐까? 퇴사라는 큰일을 무작정 결정하고 나니 조금 막 나가게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아니면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은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어제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주거 안정이 위협받는 크나큰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덤덤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1년 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집주인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장황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우리 집이 있는 이 다가구주택 건물을 곧 자기 자식에게 증여할 거고, 새 집주인이  처음으로 독립을 하게 됐는데 이왕이면 자기 소유의 건물에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집주인이 말은 안 했지만, 일찌감치 이런 상황이 계획되었고 지금 나를 설득하는 데 유리하도록 작년에 계약을 연장할 때 전세금을 올리지 않은 거 같기도 하다. 생각을 좀 해보겠다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어찌되든 상관 없지 싶다. 야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 된 것 같다.


직장생활 17년, 서울생활 15년 차. 서울에서의 비좁고 고단한 삶에 충분히 고, 더 견딘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데 이쯤에서 유턴을 해야겠다. 여태 안전한 길을 골라서 살아왔으니 아무 대책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살아봐도 괜찮지 않겠나. 내일 집주인에게 연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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