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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m Mar 19. 2024

나이가 든다는건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갑자기 새벽에 열이 41도까지 올라갔다

미국 병원 응급실은 가봐야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남편은 열이 펄펄  끌는 나를 어찌 할 바를 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911에 전화를 걸었다

911 응급차를 불러 도착하기까지 채 5분도 되지  않고 우리 동네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새벽시간 울리는 응급차 사이렌 소리는 고요한 동네의 새벽을 요란하게. 만들며 사람들이. 불을 켜고 문밖으로 나와

누구네 집으로 온 응급차인지  삼삼오오 나오기도 하고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는 사람들도 있고 난 그렇게.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퇴직한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동네이다 보니. 응급차가 온다는 건  누구 집에 또 어떤 이가 목욕탕에서 넘어진 건지 아니면

갑자기 심장발작을 누가 일으켰는지  혹은  새벽화장실을 가다가  어지러워 쓰러진 건지 모든 가능의 상상으로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불길하고 막연한 눈빛일 수도 있는 그런 아침들로  문을 내다본 사람들을 뒤로하고

난 축 쳐져 가누기도 힘든 내 몸을 구조사들에 맡기고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멀리서 간호사들이  영어로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가 내 귀를 탔고 남편이  내 증상을 설명하는 소리가

동굴처럼 들리며 난 깊은 잠인지 기절인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어났다

사람이 열이 심하면 기절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몸소 체험을 했다


눈을 뜨자 내게는  알부민인지 포도당인지  링거가 꼽혀 있고 간호사가

oh!, you’re awake 이라며 푸른 눈을 반짝거리고 나를 쳐다보며 미소 짓고

남편은 옆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내 손을 잡고 벌벌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남편의 떨림이 내 몸으로 전율처럼 밀려들었기에 남편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나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까가  느껴졌다

“ yobo!!! you 괜찮아요???

한국말과 영어를 썩어 대회하는 방식은 우리 부부만의 대회법으로

남편은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you good 많이 괜찮아요 (이 말은 이제 나아졌다는 우리 남편의 한국식 표현)을

하며 나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금방 수술실에서 나온듯한 가운을 입은 의사가

신발을 찍찍 끌며 걸어오더니 편도가 많이 부어있고 소화기 장애도 있고

약간 폐에 염증도 생겼으니 안정을 취하라며  약을 처방해 줄 거니, 링거를 다 맞으면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하고는 바쁘게 또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내 생 57년 동안 내가 기절을 한건  첨이었기에 나 스스로도 참 놀랐다

나름은 강단도 있고. 건강한 체력의 소유자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건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남편과 결혼 16년 동안  나는 꽤나 건강한 아시안부인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남자가 하는 정원일을 혼자 척척해내는 억척스럽지만 깡다구 있는

와이프로 믿었고 봐왔던 남편으로써는  이렇듯 자주 아프고 기절까지  하리라는 건   상상의

범주에도 있지 않은 현실이기에  남편은 많이 놀라고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엇이 내  입에서  괜찮다며 남편을 위로해 줄 말을 기다리고 있는 거처럼 느꼈지만 남편을  토닥일

만큼의 기력도.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왜 이리 자주 아픈 거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난 그냥 평상시대로. 정원잡초를  뽑았고

주중에 시누이가 온다 해서 방청소를 했었던 것뿐 어떤 심한 일을 한 적도  없었는데.. 이젠  늘 하던

일이라도 중간에 쉬면서 해야 하는 나이가 된 거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나이를 먹는다는 슬프게도 난 30대의 생각과 40대의 몸놀림을 할 수는 있으나 내 몸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기에 30대의 열정과 40대의 빠릿빠릿함으로 몸을 움직였다가는

이런듯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내 몸의 나이를

하루하루를 노년의 몸으로 인식하며 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된 거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뿐 아니고 모두에게 주어진 신의방식인 것을  순리를 역행하고서는  응급실이

최종 목적지가 되고 만다는 걸  하루라도 덜 병원하고 왕래하고 싶지 않다면 나로 인해 저렇게 순한 양 같은

남편의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안 보려면 몸을 아끼며 쓰고 열정을 낮추고 몸에너지를 방전되지

않게 쓰는 법을 터득하며 살아야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가혹한 벌이 20 파릇함. 30대의 정열

40대의 무던함  그 모든 것들을 50.60.70 되어서도 똑같이 가지고 있게 한다는 것이다

몸은 늙으나 마음과 생각은 그대로라는 거 인간에게 준 가혹한 저주!!! 추억하며  그리워만 하고 살라는

신의 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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