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사이로 밀리듯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가 너무 투명하게 보이길래 대청소나 할까
생각이 들어 안방 침대보를 걷어 갈고. 세탁기를 돌리고 거실천장 위에 달려있는 선풍기의 먼지를
사다리까지 거실로 끌고 들어와 청소기로 밀고 나니 어깨가 욱신거린다
청소를 시작할 때는 늘 “여기만 해야지”하고 시작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집안 곳곳이 먼지를 다 털어내게
되는 건 내 습관이 되어버린 청소방법
집을 살 때 좀 작은 집을 살려했었지만. 이집저집 구경을 다니다 보니 이미 지어진 집들은 구조가 답답하거나
카펫색이 내가 원하던 색이 아니거나 아니면 집의 색이 맘에 들지 않거나 하는 것이 눈에 보여.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8년, 결코 내가 원하던 집의 100%의 자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구조나 내가 원하던 것들을
선택해서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 집을 짓고 나서 뿌듯했다
청소를 시작하면 항상 구석진 곳을 먼저 청소하게 되는데 오늘은 안 방과 게스트룸과 컴퓨터 방 그리고 주방을 시작했다
주방의 낡은 냄비들과 뚜껑들을 리사이클 통해 걸러버리고 쓸 만한 냄비들은 다른 쪽에 넣다가 오래된 냄비 하나를 보게 됐다
13 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집을 정리하러 가서 동생들과 쓸 만한 아빠의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며 아래층
경비실에 아저씨들에게 가져다 드리고 아빠의 주방 살림을 정리하다 아빠가 쓰시던 냄비와 그릇들을 내가 챙겨 왔었는데
그게 벌써 13년 전 일인 것이다
아빠의 얼굴은 사진을 봐야만 기억이 나는 정도의 세월이 흘러 것만 냄비는 여전히 아빠의 손때가 묻어 반짝반짝거리며 우리 주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거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신의 영역이다 보면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는데 냄비는 처음 그 모양 그대로
세월을 건너어도 그대로의 모양이니 사람 보다 어떤 면에선 냄비가 낫지 않나 싶다
자식이 다 소용없다는 말이 느껴지는 게 이렇게 청소하며 보여야 아빠를 생각하는 자식이 무슨 자식인지
키울 때는 다들 애지중지 자식을 키울 텐데 다 키우고 나면 지들이 알아서 큰 것 마냥 지들 바쁘다고 부모에게
안부 전화조차 하지 않고 어느 날 부모가 전화했을 때는 맨 먼저 하는 말이 “무슨 일 있어? 이런 말이나 해대는
자식들을 부모들은. 그래도 자식이라고. 밥은 골고 다니지는 않는지. 걱정을 하며 무심한 자식들의 목소리라도
듣기 위해 자식들이 바쁘지는 않은지,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지, 망설이다 전화를 하셨을 덴데 자식들은 부모가
되어도 자신의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니 말이다
냄비에는 아빠가 끓여 주시던 닭볶음탕에 향기와 추억이 묻어있고 식탁에 둘러앉아 동생들과 아빠와
같이 팥죽을 해 먹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냄비는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있지만 아빠는….. 이제 불러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곳에 가셨으니
갑자기 울컥한 마음에 가슴 한편이 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