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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Oct 12. 2024

백도라지가 이뤄준 소원

38. 운길산 (2023.6.10 토)

오후에 비 예보가 있지만 확률이 60%라서 우비를 챙겨 산으로 향했다. 남들은 60%면 '비가 오겠는걸' 생각하지만, 나는 '안 올 수도 있겠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절 주차장까지 차가 대신 등산하는 산을 찾았다. 이제는 정말 몸이 무거워져서 높은 산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차를 마치고 크록스를 벗어 트렁크에서 꺼낸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말없이 한참 산을 오르는데, 풍경이 트이더니 벤치가 나왔다. 중년 부부가 나란히 벤치에 앉아 도라지 타령을 부르며 뜨거운 믹스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정든님 반찬이 되겠네/ 이어라 난다 지화자 좋다/ 니가 내 간장 스리슬슬 다 녹인다/ 도라지 캐려면 캐던지/ 산삼을 캐려면 캐던지/ 이웃집 귀동자 데리고/ 요 덤풀 저 덤풀 웬일인가/ 이어라 난다 지화자 좋다/ 니가 내 간장 스리슬슬 다 녹인다.


그 옆에 잠시 앉아 무릎을 손으로 주물렀다. 긴장만 풀고 바로 길을 나섰는데, 뒤에서 노랫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위로 향할수록 작아지는 노랫소리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노래가 끊기자 자연스럽게 내가 소리를 이어받아 콧노래를 부르다가 나중에는 전염된 것처럼 '도라지~도라지~' 노래를 불렀다. 자동차가 등산을 대신해주었을 때도 흥이 나지 않았는데, 타령 한 소절에 흥이 올랐다. 타령하며 산을 타니 돌무더기를 오르는 노동도 리드미컬한 연주처럼 느껴졌다. 


기세를 이어 하산 후 수종사에 가보니 경치가 훌륭했다. 수종사에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안 갔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는 보이지 않던 '성불하십시오' 팻말이 보였다. 백도라지 덕분에 오늘치의 소원은 이루고 돌아간다.


⛰ 궁금한 분을 위한 운길산 요약
• 산행 일자 : 2023.6.10 토
• 높이 : 610m
• 거리 : 2.17km
• 시간 : 1시간 13분
• 비용 : 입장료 X, 수종사 무료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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