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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윤효재 Jul 07. 2024

청소년과 다수 철없는 어른?을 위한 21세기 전래 동화

토끼전 제4화

그전엔 땅만 쳐다보며 살았는데 오랜만에 보는 하늘이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토돌이의 마음은 어두웠다.


“빨리 어딘지 말하시오.” 거북 재상은 고개를 들어 등을 쳐다보며 말했다.

“귀한 간이라 숲속 깊은 곳에 숨겨 놨지. 일단 오른쪽으로 계속 가세요.” 맑은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허튼 수작하면 바로 토끼구이 될 줄 알아라!” 오른쪽 보디가드가 협박하듯 말했다.

어느덧 깊은 숲속에 들어왔다. 거북 재상은 이곳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잠깐! 여기쯤 같은데!” 토돌이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어디냐? 빨리 말하거라!” 이번엔 왼쪽 보디가드가 재촉했다.

“너무 어릴 때 숨겨 놔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단 말이다!!” 토돌이는 또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누구를 기다리는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잔꾀 부릴 생각 마시오! 용왕님 목숨이 달려 있단 말이오!” 거북 재상도 조바심이나 꾸짖듯 소리쳤다.

그때였다.

크릉! 크릉!

익숙한 소리였다. 저쪽 풀숲에서 울렸다.

헉! 젠장!

거북 재상은 낯설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이왕 죽을 거 다 같이 죽자고! 일부러 멧돼지 아지트로 데려왔지! 멧돼지들아 컴 온 베이베!!” 토돌이는 하늘을 향해 앞니가 빠져라 버럭 소리쳤다.

“이놈이 감히…! 우린 럭비공이 되면 죽지 않아!” 거북 재상은 화낼 시간도 없었다.

쿠룽! 쿠룽!

저쪽 수풀이 흔들리며 거대한 형체가 점점 다가왔다.

보디가드 둘도 멧돼지한테는 무용지물이었다. 거북 재상은 트라우마에 온몸이 떨렸다.

“뭘 망설여? 럭비공으로 변신해야지!” 토돌이가 더 재촉을 했다.

“…꼭 살아 있으시오! 망할 놈!” 거북 재상은 일단 럭비공으로 변신했다.

보디가드 둘도 망설일 틈 없이 집어넣었다. 토돌이는 고개를 수풀 쪽으로 돌렸다. 멧돼지가 오는 데는 10여 초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쿠룽! 쿠룽! 스르르륵!

축농증 소리와 수풀 스치는 소리가 빠른 장단을 맞추었다. 토돌이 마음도 빠른 장단이었다. 10여 초 뒤 멧돼지 가족이 수풀에서 나왔다.

아기 멧돼지가 익숙한 럭비공에 먼저 드리블했다. 뒤이어 아빠, 엄마 멧돼지도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킥을 했다.

거북이들은 꼼짝없이 별자리를 볼 준비를 했다.

거북 재상은 토끼의 목숨이 더 걱정되었다. 자기들만 살아서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툭! 툭! 툭! 투두두두툭툭!

축구 경기가 과열되었다. 셋은 모두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별자리 보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거북 재상은 토끼만은 절대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했다.

멧돼지 가족은 그전보다 더 세게 공을 찼다. 드리블 기술도 늘었다.

툭툭툭! 코와 발에 차일수록 토끼가 걱정되었다.

퍽퍽퍽! 등을 내려치는 소리에 거북 재상은 어이쿠야! 하며 움찔했다. 보디가드 둘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머릿속에 별똥별이 막 쏟아졌다.

한참을 굴러다니다 드디어 멈췄다.

“재미없어!” 아기 멧돼지가 싫증을 냈다.

거북 재상은 그 소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터벅터벅 멧돼지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거북 재상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저번처럼 맑은 하늘만 보였다. 밑에 깔린 토끼가 압사당했나 싶었다. 보디가드들도 내밀었다. 한 마리는 뒤집어져 있었고, 한 마리는 똑바로 있었다.

“토끼는?” 거북 재상은 똑바로 있는 보디가드한테 다급히 물었다.

“없소!” 보디가드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없다니? 죽었소? 물어뜯겨서 흔적도 없단 말이오?” 거북 재상은 고개를 땅바닥으로 돌려 확인하려 했다.

“멧돼지가 물고 간 건 아닐까요?” 뒤집어져 있던 보디가드가 꿈틀거리며 말했다.

“빨리 일으켜 세워 주시오!”

거북 재상을 뒤집자 깔려 있던 밧줄 몇 가닥이 드러났다. 그리고 주변을 훑었다.

“이런, 속았어! 속았단 말이오!!” 거북 재상은 흩어져 있는 나머지 밧줄 조각을 보자 통곡하듯 외쳤다.

“멧돼지가 풀어 준 것 같은데요.” 보디가드 한 마리가 나름 추리했다.

“어쩐지 비명 소리가 안 들리더니….” 다른 보디가드도 힘이 쪽 빠졌다.

“하하! 여전히 어리석구나!” 토돌이가 풀숲에서 나오며 비웃었다.

모두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토돌이는 멀쩡했다.

“내 앞니 두 개가 이렇게 튀어나온 이유가 다 있지.” 토돌이는 잇몸 위쪽까지 보이며 이빨을 보여 주었다. 도끼날 같았다.

도끼날 이빨로 밧줄을 쉽게 풀어 버린 것이었다. 10여 초면 충분했다.

“그대들이 잔꾀로 날 속인 것처럼 나도 속여 봤지. 그럼 서로 비긴 거네. 그럼 굿바이!” 토돌이는 숲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거북이들은 허탈했다.

“이보시오! 우리 좀 살려 주시오! 이대로 돌아갔다간 바로 용궁탕이 될 신세란 말이오! 제발 다른 토끼라도 소개해 주시오. 제발! 간 큰 토끼면 더욱 좋소! 제발요! 토끼 나으리!!” 거북 재상은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엎드렸다.

한참 어린 토돌이 앞에서 고개를 내밀대로 내밀어 땅바닥에 처박고는 눈물까지 흘렸다.

“제발요!! 간 큰 토끼 하나만!” 보디가드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욕 그 잡채였다.

‘간 큰 토끼?’

토돌이는 가던 길 멈추고 다시 돌아섰다. 럭비공 세 마리를 보며 잠시 생각했다.

“음… 듣고 보니 할 일이 남았네. 그럼 우리끼리 그놈 앞에서 연기 좀 하자고요.”

토돌이는 럭비공들에게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소곤소곤 속닥속닥 속닥닥…….

“이러면 서로 서로 윈윈하는 겁니다.”     


며칠 후 모두 비만 토끼를 찾아갔다. 비만 토끼 눈에는 처음 보는 어린 토끼와 거북이였다.

“넌 처음 보는 토낀데? 너희 부모님은 누구냐?” 비만 토끼는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았다.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떠돌며 살고 있지요. 그러다 비만 토끼님께 아부하면 잘 산다고 해서 왔습니다. 여기 거북 재상을 따라가면 극진한 대우를 받을 겁니다.” 토돌이는 거북 재상을 가리켰다.

“극진한 대우?” 비만 토끼가 거북 재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맞습니다. 지금 용궁 투어 이벤트를 하는데 여기 토돌이도 잘 놀다 갔습니다.” 거북 재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한번 따라가 보세요. 온갖 신기한 바다 해산물을 다 볼 수 있지요. 육지는 지겹잖아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관광이라고요. 숙소 침대도 푹신하고 좋아요. 역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더군요.” 토돌이는 용궁에서 생활을 실감 나게 설명해 주었다. 

비만 토끼는 귀를 쫑긋하며 쓰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근데 이리 좋은 걸 왜 공짜로 해 주지?” 비만 토끼도 당연한 의심을 했다.

“저희 바닷속 용궁을 관광단지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보 차원에서 이번 딱 한 번만 하는 겁니다. 갔다 와서 후기 남기면 포인트 적립도 되고 다음 방문 때 혜택을 볼 수 있지요. 후기에 ‘좋아요’ 한 번만 눌러 주시면 됩니다.” 거북 재상은 며칠 전 급히 만든 홈페이지를 보여 주었다.

비만 토끼는 화려한 홈페이지에 눈이 동그래졌다.

“무엇보다 숲속의 왕 비만 토끼님이 0순위라고 제가 적극 추천했답니다.” 토돌이는 씩 웃으며 앞니를 보여 주었다.

비만 토끼도 앞니를 보이며 웃었다.

홈페이지에는 휘황찬란한 바닷속 풍경이 보였다. 비만 토끼 빨간 눈에 화려한 바닷속이 떠다녔다. 사실 비만 토끼도 육지는 지겨웠다. 항상 바닷속이 궁금했었다.

“야! 여기가 파라다이스로구나!! 좋다! 며칠간 용궁 투어를 해야겠다. 렛츠 고!!”     


용궁에 도착한 비만 토끼는 홈페이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은 볼거리를 보았다. 비만 토끼는 비린내에 잠시 코를 막았다. 곧이어 용왕님 앞에 도착했다.

“저번 토끼보다 덩치도 크고 간도 큽니다요. 저 잘했쪄?” 거북 재상은 목을 뻣뻣이 내밀고는 용왕님 앞에서 말했다.

“음… 겉으로 봐도 간이 크게 보이는구나!” 용왕님은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앞으로 내밀어 비만 토끼를 훑어보았다.

활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가 간이 좀 큽니다. 그래서 숲속의 왕 노릇을 하고 있잖습니까? 하하!” 비만 토끼는 천지도 모르고 주위를 쭉 둘러보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럼 휴게실 가서 귀한 차 한 잔 드리지요. 평생 잊지 못할 차가 되실 겁니다.” 문어 재상이 자연스럽게 안내했다.     

그 후로 비만 토끼는 다신 컴백하지 못했다.


# 못다 한 이야기     


나쁜 호랑이는 배가 고프자 다시 명령을 내렸다.

“각자 돌아가서 아주 싱싱한 먹잇감을 구해 오너라. 제일 빨리 가져오는 자에게 2인자 자리를 물려주겠다.”

비만 토끼는 이때다 싶어 숲속으로 토끼를 잡으러 갔다.

한편, 호랑이가 먹잇감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물들은 각자 숨기 바빴다.

“여보! 얼른 동굴로 들어오세요. 빨리 땅을 파서 지하실을 만들어 숨어 있읍시다.” 아내 토끼가 남편 토끼를 불렀다.

부부 토끼는 쉬지 않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동굴 땅이 딱딱해서 많이 파지 못했다. 밖에서는 비만 토끼 무리들이 샅샅이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이미 동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여보! 땅이 얕아 우리 모두 들어가지 못하니 아기 토끼라도 숨깁시다.” 아내 토끼는 아기를 남편 토끼에게 건넸다.

“아가! 꼭 살아남아서 잘 살아다오.” 아빠 토끼는 아기와 마지막 눈을 맞춘 채 지하에 숨겼다.

부부 토끼는 잡혀가고 그들의 부탁을 받은 늙은 할매 토끼가 아기 토끼를 보살폈다. 아기 토끼가 자라자 할매 토끼는 비만 토끼의 만행을 알려 주며 한마디 했다.

“너희 부모님의 원수 비만 토끼의 만행을 꼭 막아라. 명심하거라, 토돌아!”

“네. 꼭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토끼 간은 아주 중요한 약이니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너희 부모님이 의사를 시켜 네 진짜 간을 꺼내고 다른 간으로 이식시켜 놓았다. 그 진짜 간은 여기 동굴 지하실 냉장고에 숨겨 놓았다. 유통기한이 5년이다. 싱싱하게 잘 보관하거라.”

“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주지 않겠습니다.” 토돌이는 비장한 다짐을 했다.

“그리고 너한테 위기가 닥치더라도 절대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침착! 또 침착! 그러면 지혜가 발휘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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