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주말은 무료하다. 불을 다 꺼놓고 각자 자리에 눕는다. 그대로 내내 누워있다. 본 쇼츠를 또 보고, 인스타그램에서 자유인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배 아파한다. 막사의 청록색 커튼 너머로 오후의 노란 햇살이 넘어올 때면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이며 '추팔'(추억팔이)로 시간을 보낸다. 신병 휴가 때 친구들과 찍은 '인생네컷', 가족들과의 외식 사진, 차례로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민간인 시절의 사진들에 이르며 본격적인 추팔이 시작된다. 몇 장의 사진들로 박제된 내 마지막 민간인 시절, 입대 전날 짧게 자른 머리, 학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울었던 밤, 그리고 파리. 그러니까, 입대 한달 전까지 나는 파리에 있었다.
군 입대 전 도망치듯 유럽 여행을 떠났다. 한국 군대는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그곳에 가면 끊임없이 몸과 마음이 침해 당하고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뭐 아무튼 그럴 것이 뻔했다. 이대로 잡혀갈 순 없었다.그게 아니라도 그 무렵 나에겐 도피가 필요했다. 문과라서 죄송한 대학생의 앞길에 놓인 가혹한 경쟁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고, 대2병이 도졌으며 북적북적한 인간 관계에도 질려있었다. 잠시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고 싶었다. <여행의 이유>를 쓴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먼 도시의 침대 위에서 영혼은 비로소 스스로를 내려다 볼 여유를갖는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것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여행자는 살아남아야 한다. 낯선 언어와 낯선 골목, 경계하듯 나를 쳐다보는 낯선 눈의 사람들. 같은 책에서 김영하 작가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인간은 압도적 체험 앞에서만 현재를 살게 된다'고 했다. 여행지에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집중한다. 여행기는 원래 여행이 끝난 뒤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군대에 잡혀와버리는 바람에 여행기 같은 걸 쓸 여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여행 사진을 보면서 여행기를 쓸 결심이 돋아났다. 우리는 영화와 소설로 먼 도시의 풍경을 보며 그곳을 꿈꾸고, 마침내 여행을 떠나 그곳에 직접 존재한다. 여행이 끝난 후엔 박제된 사진을 보고, 글을 쓰고, 다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보며 여행을 재구성한다.
영혼을 지탱하는 모든 것들의 도시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죽은 시인의 사회>의 유명한 대사다. 파리는 영혼을 지탱하는 모든 것들의 도시다. 한동안중국이 공산품을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이었고, 미국은 자본주의 세계의 질서와 권력을 생산해왔다. 그보다 오랫동안, 파리는 문명의 인간성을 배양하는 비료를 첨단에서 생산해왔다. 자유와 권리, 혁명과 해방, 철학과예술. 이것들은 파리를 무대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증폭해왔다.
파리 시민들은 혁명 이전 '앙시앙 레짐' 체제의 권위와 질서에 저항하며 권리를 쟁취했다.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해본 경험을바탕으로 노동자가 중심이 된 '파리 코뮌'을 수립하기도 했다. 야간노동 폐지, 노동자에게 부과하는 억지 과태료와 공창(公娼)제의 폐지, 무상 교육 도입, 임차인과 영세 상인 보호 정책 등 21세기에도 진보적으로 평가받을 정책들이 취해졌다. 파리에 모인 변화와 자유의 에너지를 찾아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들었다. 파리의 예술가들은 인상주의를 비롯한 혁명적인 예술 사조를 창조했고, 그들의 새로운 의식 세계가 다시 파리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파리 사람들은 여전히 골목길의 카페와 공원 벤치에 모여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며살아간다.그들은 지금도 권위의 압제를 거부하며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즐긴다. 파리의 모든 골목길에서 축제가 열리는 것 같다. 파리라는 거대한 자유의 고리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적응하지 못한다는 농담이 당연하게느껴진다.
파리는 세계 제국만이 세울 수 있는 도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내린 나는 하루정도 독일을 여행했는데, 독일에서 가장 예쁘다며 촬영한 건물들이 파리에 가니 도처에 널려있었다. 파리의 모든 마을이 테마파크 같았다. 눈이 피곤해질 정도로화려한 장식이 지나간 영화를 증명하는 듯했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건축물은 단연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가장 '파리스러운' 랜드마크다. 유현준 교수의 말처럼 건축물은 권력을 상징한다. 어마어마한 운동에너지를 동원해 위치에지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일이 건축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강화도의 고인돌은 모두 부족의 규모와 지배 혈통의 권력을 드러내는 용도였다. 이후 지어진 피렌체의 두오모부터 서울의 경복궁,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모든 랜드마크 건축물들은 왕의 것이거나, 종교권력의 것이거나, 자본가의 것이었다.
그런데 에펠탑은 시민을 위한 건축물이다. 시민이 권력을 쟁취한 도시, 시민이 주권을 갖는 시대의 랜드마크가 에펠탑이다. 실험적이었던 에펠탑의 건축이 지금 파리를 반쯤 먹여살린다. 한국에도 더 많은 이상한 건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형태의 골목을 따라 독특한 가게와 건물, 다양한 생활이 들어서면 서울은 보다 재미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똑같은 높이의 똑같은 아파트가 늘어선 서울의 풍경은 '콘크리트 디스토피아'다. 얼마 남지 않은 골목을 찾아 성수동으로, 익선동으로 몰려가는 대신, 아직 부서지지 않은 골목들을 다듬고 지키는 문화가 움트기를 바란다. 에펠탑은 파리의 골목 구석구석 빼곰 드러나 있다. 에펠탑은 그때 가장 예쁘다. 굳이 긴 줄을 참아가며 올라갈 필요는 없다.
오르셰 미술관과 로댕 미술관을 하루에 관람했다. 유시민 작가의 <유럽도시기행>을 참고한 선택이었다. 인파가 몰리는 루브르는 가성비가 떨어진다기에 밖에서만 구경했다. 로댕 미술관은 건물과 정원이 굉장히 아름답다. 파리 시내에 위치한 우아한 저택과 정원에서 보이는 에팔탑과 앵발리드의 금빛 지붕까지.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 같았다.로댕 박물관과 오르셰 미술관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원래 걷는 걸 좋아했지만, 파리에서 걷는 일은 정말 근사하다. 계속 도리도리 고개를 돌렸고, 그럴 때마다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부수지 않고 박제된 시간
오르셰는 버려진 기차역을 개조했다고 했다. 기차역의 구조와 미술품의 조화가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버려진 건물을 부수지 않고 역사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부럽다. 우리였다면 가차 없이 철거했을 텐데. '을지OB베어' 강제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기억닌다. 수십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비로소 역사가 나이테처럼 새겨지고 있던 가게를, 건물주 마음대로 몰아내버린 사태 말이다. 오세훈의 서울시는 건물주의 편이었고, 서울의 역사는 또 한 조각 도려내졌다.
외국인들이 보는 서울의 매력은 정비된 아파트 단지의 정경이 아니라 '대조'라고 한다. 중세적 궁궐과 네온사인, 낡은 골목과 빌딩의 대조 말이다.'서울다움'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을 생각없이 철거하는 서울시에는 아무런 역사도 남지 않을 것이다.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이후, 지구 어디를 가든 똑같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강남에 가도, 오사카에 가도, 뭄바이에 가도 도시 풍경은 똑같다. 이제 세계의 미디어와 여행객은 독특한 도시를 찾아 떠돈다. 현대가 풍경을 통일했다면, 가장 독특한 도시는 과거가 남아있는 도시다. 우리가 사진을 찍고 영화를 보는 것은 흘러가버린 시간이 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부신 순간이 아니었대도. 훗날 돌아보면 사진은 지나간 시절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재창조한다. 찬란한 역사가 아니었대도, 남겨진 골목은 수천억을 들인 빌딩보다 독특하다.
오르셰에는 플랫폼마다 미술책에서 본 작품들이 들어서 있었다. 모네와 고갱. 고흐처럼 파리의 전위적이고 아름다운 화가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이 화가들은 프랑스를 그렸고, 프랑스의 정신을 대변했다. 오래 줄 서가며 남의 나라에서 도둑질한 전리품의 진열을 보는 것보다 만족스러운 체험이 아닌가. 예술품은 그 맥락과 연결되는 고유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 일상은 우리를 똑같은 부품으로 취급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개미 군단이나 공장의 상품과 다르다. 하나의 진실을 따르는 대신, 빛이 각자의 마음에 닿는 방식을 표현한 그림들이 감동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다양하고 고유해서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진실이 오르셰에 진열되어 있었다.
오르셰 미술관의 레스토랑과 로댕 박물관의 카페에서 보낸 시간도 완벽했다. 신나서 쓰다보니 주말이 다 끝났다. 다음 주말엔 센 강과 시테 섬, 베르샤유 궁전 등등을 기록할 생각이다. 아, 프랑스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