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11
성인이 되고 꿈을 상실한 후, 나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꿈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쉽게 내릴 답들도 홀로 온갖 망상을 거친 후 극단적으로 선택했다. 나는 일종의 불안증상을 가지고 있었고, 타고나길 상상력이 워낙에 풍부한 덕에 항상 최선과 최악을 혼동하고 견딜 때와 끊어낼 때를 확실히 판단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방황 끝에 마침내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나는 첫 취업을 하게 됐다.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도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일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이자 계약직이었던 시절을 벗어나 정규직 직장을 잡게 된 것이다.
나는 아동복지를 전공했지만 사회복지나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도저히 취업할 자신이 없었다. 실습 기간에 학원을 다녀 회계 관련 자격증을 만들었고, 복지관의 총무팀에 취업하게 되었다.
첫 출근 날. 사수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혹시 야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당황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담담하게 답했다.
할 업무가 남았으면 당연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초년생인 내 입장에서는 정말 겨우겨우 꾸며내서 뱉은 말이었다. 나는 야근이 너무 싫었다. 물론 나도 아르바이트로나마 직장생활을 했고, 상황에 따라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할 업무가 남았을’ 때만 야근을 하고 싶음을 나름대로 어필한 것이었다.
그럼 야근은 몇 시까지가 적당한 것 같아요?
사수 선생님은 아주 집요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집에 가는 시간도 있으니 8시, 9시엔 퇴근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6시. 첫날이고 할 일이 없으니 당연히 시간 맞춰 퇴근을 할 줄 알았더니 팀장님은 관장실과 부장실 청소를 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첫날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된 야근은 매일 계속됐다.
그나마 청소만 하고 퇴근하면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퇴근할 수 있었지만 가끔은 8시 9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청소를 마치고 팀장님과 팀원들께 인사드리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가장 안 쪽에 있는 우리 팀 자리에서 나오자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그렇다. 아무도 퇴근하지 않은 거다. 7시에 퇴근하는 내가 특이해 보일 정도로 나는 1시간이나 야근을 했음에도 칼퇴근을 하는 종자로 보인 것이다. 다른 팀 팀장님은 인사를 하는 내게 “어디 가요?” 라며 정색했다. 주변의 다른 팀원들이 “아이, 왜 이러세요.”라고 말리기까지 했다.
아아! 한 시간 야근한 건 죄였군요.
내가 맡은 업무 중엔 지문 기계 근태관리도 있었는데, 어느 날은 새벽 2시에 퇴근한 사람도 있었다. 아. 순간 모든 정이 떨어졌다. 잘해보려고, 그래도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내 노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슨 기록을 위해 내 자리에 있던 달력을 펼쳤을 때다. 내가 입사 전 퇴사한 사람의 기록이 달력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사람은 3개월 좀 안 되게 일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연장한 기록이 전부 달력에 적혀있었다. 며칠 후 다른 동료 선생님들에게 전에 일했던 분에 대해 묻자, 그들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좀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야근에 예민해서 부당하다고 하고, 노동부 언급도 하다가 그만뒀어요.”
아아!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의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버티라는 거지?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재취업했다. 회사는 대기업 계열사로 인턴만 마치면 정규직은 보장되는 전형이었다. 현장직이긴 했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오래 일했으니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내가 했던 업무는 새로 오픈하는 편의점에 물건을 채우는 일이었다. 동기들은 물류 알바나 다름없다고 불평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었다. 근무지가 매번 바뀌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동기들과 함께 가면 견딜 만했다.
2달 후, 나는 편의점 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동기들과 떨어져 홀로 업무를 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2개의 매장을 담당하다 보니 부담감도 있었다.
출근해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카운터에서 손님 계산을 하거나 진열을 도우면 알바들 할 일 하지 말라며 혼났고, 유효기간을 점검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혼났다. 발령 첫날부터 발주를 해야 했고, 쉬는 날이며 휴가며 구분 없이 발주는 필수 업무였다. 점포는 주 단위로 스케줄이 정해졌는데 나는 일요일 오후까지 스케줄을 공유받지 못해 다음 날 출근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내 연차도 통보받아 강제로 사용해야 했다. 쉬는 날 발주를 왜 이렇게 못하냐며 전화로 화를 냈고, 단체 카톡방에선 두 점포의 점장이 합세해서 나를 공격했다. 시킨 건 시킨 대로 했고, 알려주지 않은 건 해야 하는지도 몰라하지 않았는데 안 했다고 혼나니 점점 자존감이 낮아져 갔다.
그래도 감히 퇴사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자 친구 앞에서 매일 울었지만 그래도 출근은 했다. 끊고 나서 울면서 욕을 할지언정 그들의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은 없었다. 아아! 차라리 쉬는 날엔 전화를 받지 말 걸!
어느 쉬는 날,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받기 싫었지만, 그래도 참고받았다.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일요일에 잔고 확인했을 때 돈 다 있던 거 맞아요?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일요일마다 잔고를 확인하는 날이었고, 나는 마침 그 일요일에 잔고 확인하는 걸 배웠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했다. “네. 돈 다 맞게 있었고, 그날 배워서 저 혼자 세지 않았고 ㅇㅇ 점장님과 함께 확인했습니다.” 내가 맡고 있는 다른 매장의 점장님과 함께 세서 알리바이가 증명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셌다는 이야기에 할 말을 잃은 듯, 다른 방향으로 틀어 공격했다.
그럼 지금 만원이 비는데 어디 갔다는 거예요?
일요일에는 확실히 다 있었다는 말에도 그는 울분을 토했다. 지금까지 자기가 이 점포에 발령 난 후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부점장님이 아니면 대체 누구냐, 아르바이트생들은 지금껏 이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는 만원을 ‘가져간’ 사람이 나라고 믿고 있었던 거다.
잔돈 바꾸러 갈 때 주머니에서 빠진 거 아녜요?
자주 까먹는 것 같은데 빠진 것도 까먹은 거 아니냐고요.
나는 패스트푸드점 매니저였다. 매일 은행을 갔고 잔돈을 바꿀 땐 종류별로 얼마씩 바꿀지 미리 써 갔다. 그래야 은행 창구에서 버벅거리지 않고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그 버릇은 이곳에서도 이어졌다. 내가 주머니에서 돈을 빠트렸으면, 써간 종이와 금액이 맞았을 리가 없었다. 나의 설명은 그에게 아예 통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못한 건 죄송하다. 하지만 가져간 건 정말 아니다. 그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내게 폭언과 화를 쏟아내었고, 다른 곳에서 전화가 걸려오자 그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전화가 끊어지는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졌고,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토로했다. 친구의 위로를 듣고 있었을 때 자신에게 다시 전화하라는 점장의 카톡을 받았다. 하. 또 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나는 또 한 시간 가량을 그의 폭언을 듣고 있어야 했다. 욕을 해야 폭언인가. 장장 두 시간을 쉬는 사람 붙잡고 화를 내는 것도 폭언이지. 결국 5천 원씩 내서 만원을 메우자고 결론 났다. 아. 이 얘기를 2시간 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던 엄마는 당장 퇴사하라며 분노했고, 이야기를 들은 주변 지인들 또한 고작 만 원으로 이런 취급이냐며 만 원 가져다주겠다며 어이없어했다.
쭉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상사였던 매니저 언니가 자기 매장으로 오면 진급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갈 곳도 있고 버틸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그에게 카톡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생각보다 그는 쉽게 사과했다. 기분이 나빴을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인턴 관리를 맡고 있는 인사팀에 알렸고, 퇴사하겠다고 전했다. 사실 다른 업무나 타 점포로 옮겨준다면 계속 다닐 생각이었지만, 회사에서는 퇴사 요청을 받아들였다. 퇴사한 후, 지역 관리자에게도 전화가 왔다.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며, 도움을 요청했으면 도움을 줬을 거라는 말, 아무튼 하등 쓸모없는 말과 함께 몰라줘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대기업을 걷어찼다.
그런 사람 때문에 그만뒀다는 생각에 나는 역시 사회 부적응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그 사람이 몇 달 뒤면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정말 몇 달만 버티면 되는 거였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살려면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