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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드리히 니체 Apr 14. 2022

가족 사진

Family Portrait


    1977년 외행성 탐사 계획으로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가 발사되었다. 약 13년의 긴 여정 끝에 각각 탐사선은 계획되었던 임무를 완수하고 성간 구역을 향해 나아갔다. 보이저의 예정된 탐사 계획이 끝을 향해 달려가자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보이저가 예정된 본래 임무를 모두 마치면 카메라를 돌려 태양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워 보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이 제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했다.


칼 세이건_ 출처 : ISSF


    칼 세이건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찍은 태양계의 모습은 인류에게 생각해볼 주제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칼 세이건의 이런 의도는 모두가 알았지만 보이저가 태양계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돌리게 되면 강렬한 태양광에 카메라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보이저가 찍게 될 사진이 과학적 의미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제안은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과학적 의미가 없는 사진을 위해 무수한 예산이 들어간 탐사선을 걸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로 인해 칼 세이건은 오랜 시간에 걸쳐 동료들을 설득해야 했다.


    이후 1989년, NASA의 신임 국장으로 리처드 트룰리가 선임되자 칼 세이건의 제안은 극적으로 통과되었다. 우주인 출신인 리처드 트룰리는 우주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주의 모습이 인간의 사고를 어떠한 방식으로 바꾸는지 알고 있었기에 태양계의 사진을 남기자는 칼 세이건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하여 결국 칼 세이건의 태양계 사진 촬영 제안이 승인되었다. 사진을 촬영할 탐사선으로는 보이저 1호와 2호 중 보이저 1호가 선택되었다.


가족 사진

    

    1990년 2월 13일, 지구에서 약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보이저 1호가 있었다. 고요한 공간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던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1980년의 토성 탐사 이후 오랫동안 꺼져있던 카메라를 작동시키라는 전파를 수신한다. 드디어 오랫동안 멈춰있던 보이저의 관측 임무가 재개되었다. 3시간 후 카메라가 충분히 예열되자 보이저 1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떠나온 곳을 향해 천천히 카메라를 돌렸다. 보이저 1호는 해왕성의 모습을 시작으로 천왕성, 토성, 화성, 태양, 목성, 금성, 그리고 지구의 사진을 찍었다.


    지구에서 내리는 명령이 보이저 1호까지 도달하기까지에는 약 5.5시간이 소요된다. 지구에서 보이저 1호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수행했는지 확인하는 데에는 총 11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따라서 보이저 팀은 보이저 1호가 사진을 찍는 것을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없었다. 단순히 행성들의 위치 값을 입력하고 보이저가 무사히 사진을 찍었기를 바라며 기다려야 했다.


가족 사진(Family Portrait) 1990.02.14 Voyager_ 출처 : NASA


    가족 사진은 엄밀히 말하면 한 장의 사진이 아닌, 60장 사진의 조합이다. 이 60장에 걸쳐 태양과 6개 행성의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 속에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해왕성, 천왕성, 토성, 태양, 금성, 지구, 그리고 목성이 위치해있다. 아쉽게도 가족 사진에는 태양계 행성의 모든 구성원이 나오지 못했다. 수성은 태양과 너무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머지 강렬한 태양광에 묻혀버렸다. 화성은 보이저 1호가 위치한 지점에서 초승달 모양으로 일부 모습이 찍혔으나 카메라에 비치는 산발적인 태양광에 가려졌다. 현재 기술로 화성의 모습을 복구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화성의 모습을 되살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행성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명왕성은 너무 작은 크기로 인해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


아래 행성 왼쪽부터 금성, 지구,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다_ 출처 : NASA


    가족 사진에서 찍힌 목성은 낱개 사진에서 하나의 픽셀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크다. 토성도 목성 크기만큼 하나의 픽셀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세히 본다면 흐릿하게 고리의 형태를 볼 수 있다. 해왕성과 천왕성은 원보다는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해왕성과 천왕성의 모습을 찍을 때 노출 시간을 15초로 두고 사진을 찍었는데 노출 시간 동안 보이저가 움직였으므로 사진이 길게 늘여진 모습으로 찍히게 되었다. 다른 행성과는 달리 지구는 오직 0.12 픽셀만을 차지하고 있다.


    지구의 사진은 그리니치 표준시(GMT) 기준, 1990년 2월 14일 04:48에 찍혔는데 이는 한국시간으로 1990년 2월 14일 13:48이다.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낱장 사진은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이름의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지구의 사진을 찍고 34분 후인 05:22 GMT, 보이저 1호는 추후 이뤄질 성간 구역 연구를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고자 카메라의 전원을 영원히 종료했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 사진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최후의 사진이다.


    가족 사진은 인간이 실제로 보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 담겨있다. 1990년 당시의 기술로 최대한 정교한 촬영을 위해 각각의 천체마다 다른 조건으로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어둡고 빛을 잘 반사하지 않는 천체들의 경우 노출 시간을 길게 했으며 대상이 태양과 근접할수록 좁은 앵글로 촬영했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가장 긴 15초의 노출시간을 두어 사진을 촬영했으며 태양 근처의 사진들은 1초의 노출 시간을 두어 사진을 촬영했다. 태양은 가장 어두운 필터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었으며 1/5000 초의 노출 시간을 두고 사진을 찍었다.


    보이저 1호는 1990년 2월 14일 가족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인류는 몇 달 후에야 사진의 모든 부분을 받을 수 있었다.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명령을 내리고 교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자료를 받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990년 5월 1일에야 인류는 보이저 1호로부터 마지막 데이터를 받을 수 있었다.  


사진가: 보이저 1호


보이저 호의 항로_ 출처 : NASA


    보이저 1호는 쌍둥이 무인 탐사선 보이저 2호에 이어 1977년 발사된 탐사선이다. 본래 임무는 행성 탐사였으며 토성, 목성과 그 위성들의 자세한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보냈다. 행성 탐사 임무가 종료된 후에는 성간 공간을 조사하는 확장 탐사를 개시하였다. 보이저 1호는 현재 태양계를 벗어난 상태이며 앞으로 약 3만 년 간 성간 공간을 항해할 예정이다. 보이저 1호는 인류로부터 인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공물이다.

    

가족 사진을 찍을 당시 보이저 1호의 위치_출처 : NASA


    보이저 2호 대신 보이저 1호가 가족 사진을 찍은 이유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다. 다만 보이저 2호 대신 보이저 1호가 선택된 이유는 보이저 1호의 위치와 관련되어 보인다. 보이저 1호는 보이저 2호보다 황도면과 이루고 있는 각도가 컸다. 보이저 2호는 황도면 아래 15도 방향에서 항해하고 있던 반면 보이저 1호는 황도면 위 32도 방향에 위치해있었다. 대부분의 행성이 황도면과 평행으로 운동하므로 시야에서 행성의 어두운 면이 나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보이저 1호가 사진을 찍기에 적임자였을 것이다.




    인류가 거쳐온 시간 속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족은 종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작은 단위에서의 생물학적 구속이다.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습성은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종 보존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다. 가족은 곧 생존의 보장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간종은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라면 '가족'이라는 개념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친밀한 것', '따뜻한 것', 그리고 '지켜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인류가 거쳐온 역사의 일부로서 가족이라는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를 불문하고 정겨운 느낌을 전해준다. 가족사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생각해보면 된다. 반면, 차갑고 어둡고 거대한 우주공간은 '가족'이라는 단어와는 반대로 왠지 모를 막연하고 어려운 느낌을 준다. 가족이라는 단어와 우주는 얼핏 보기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살아있지도 않은 조그마한 점 몇 개와 대부분이 암흑뿐인 이 사진에는 왜 '가족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 태양계의 여러 천체들을 생물학적 구속인 가족에 비유한 것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인류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들을 인류의 눈높이에서 인류적 표현인 '가족 사진'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으니 천체들이 정말 가족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천체의 생성과 관련해서는 가족이라는 비유는 적절해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두 분야의 만남은 분명 많은 것을 시사하며 사진으로부터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점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생각할 주제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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