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좋아하던 곶감이나 가오리 찜을 사드릴 수도"

집에 대한 단상 제8편-B시로 이사 와서 독을 품고 살다 [단칸방시리즈]

by 윤슬






골목 초입에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두 칸짜리 고모가 세 준 방이 있었다.

거실 쪽엔 따로 현관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은 어설픈 유리문이 있었고, 그 바깥에는 미닫이 식으로

마름모 꼴로 된 문양이 있는 접이식 철문이 있었다. 참으로 허술했다.

(좌:거실 현관에 설치된 방충망유형/우:실제 내 방과 거의 흡사한 벽돌과 창문 방충방)

그리고 바깥의 내가 쓰던 방은 길가에서 창문을 열고 있으면 안이 다 들여다 보였다.

골목에선 그리 높지 않은 시멘트 담장이었고 누군가 눈여겨 내방을 보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방은 이십 대의 여자가 쓰던 방이라면...

한 번씩 그 여자는 문을 열어 놓고 자고 있고...

그리고... 그리고... 그 여자는 더운 여름엔 숏팬츠를 입고 잔다...


오늘은 바로 그날이다.




"달각... 달각..."


그 소리는 지나가는 남자가 담을 넘어와서 내 방 창문의 방충망을 뜯어 내려는 소리였다. 규칙적인 소리를 인지하고선 무서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대로 기다리다간.

(자취방 시절부터 단련되지 않아도 될 일들에 수없이 단련이 되었지만 그래도 너무 무섭고 겁이 났다.)

실눈을 떠서 확인하니 빡빡머리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고 달 밤이어서 눈이 마주쳤는데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쳐다봤다.


나는 안쪽방에서 자고 있던 동생에게 고함을 치면서 달려갔고, 그사이 그 남자는 도망을 쳤다.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전 글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방충망에 손만 닿으면 전기가 흘러서 그런 류의 남자들이 타 죽었으면 하고 끔찍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왜 그토록 많은 남자들이 자취방이나, 여자들이 혼자 자는 방에 침입하려는 것일까.

갑자기 수많은 기억들이 몰려와 글을 더 쓸 수가 없다.




동생과 나는 두 칸 자리 고모 전세방에서 각자의 꿈을 이뤘다.

한 명은 교사가 되고 또 다른 한 명은 간호사가 되었다.

우리가 각자의 꿈을 이루어 첫 월급을 받은 날 동생과 나는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첫 월급으로 우리는 할머니께 무엇을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일까.

빨간 내복, 흰 봉투에 현금을 담아 드릴 수도 있었고, 할머니가 좋아하던 곶감이나 가오리 찜을 사드릴 수도 있었다.

(좌:나무 광주리에 말리던 곶감/우:그렇게 좋아 하시던 가오리찜 그 거친 손으로 찢어 드셨다. 할머니는 기다려 주시지 않으신다.첫월급 받을 때까지.)

우리 수중에 그토록 바라던 첫 월급이 들어왔지만 할머니는 고통 속에서 마지막 그 말을 우리 귓가에 남기고 돌아가셨다.

[S 하고 G, 밥 먹고 학교 갔나]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것으로 집에 대한 단상시리즈 24편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윤슬작가의 변)


그동안 내 영혼이 서려있는 마당 있는 집 1092번지 시리즈, 내 영혼에 흠집을 낸 자취방시리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을 품고 살았던 단칸방시리즈들을 읽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4편을 퇴고의 과정을 거쳐 브런치 북으로 펴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추억소환 그들의 이야기,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도 1편으로 묶고, 띠뽈씨의 출퇴근 이야기도 1편으로 먼저 묶어서 브런치 북으로 내겠습니다.


너무 부족한 필력으로 여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오기까지 모두 다 보이지 않은 작가님들의 도움과 응원이었고, 브런치스토리팀의 쉬지 않는 채찍과 당근 덕분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진심으로 큰 절을 올려드리면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자 그러면 다음은 어떤 이야기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저의 일상과 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는 계속 펼쳐 나가려고 합니다. 집에 대한 단상 편은 마지막 시리즈를 다시 구상해서 선보이겠습니다.

https://youtu.be/dC_kMEy2sZY

(이 글을 쓸려고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 클래식 프로에서 제가 손꼽는 곡이 나왔습니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물러 갑니다./이고은님의 [슈베르트]의 [물위에서 노래함] 연주영상퍼옴)

(문을 닫고 퇴근하면서 새로운 문을 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 진심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