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시리즈 6탄-지인의 얘기를 들어주다.
저녁을 먹고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마도 참외를 1개 더 깎아 먹었나 보다.
스트레스가 뻗치니 포만감을 주는 뇌의 시냅스가 고장이 난 듯하다.
아님 스트레스 반응을 관장하는 해마가 구멍이 나서 너덜너덜해졌나 보지.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만이 내가 살길이다. 15분을 뛰어도 문 닫는 시간 직전에도 내려간다.
밤 9시 5분이다.
러닝머신 위를 근근이 걷고 있었다. 뛰고 싶지 않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머신에 붙어 있는 티브이라도 틀자. 9시 뉴스 앵커가 태풍대비하라는 얘기와, 일본에 폭우와 강풍 장면이 연신 화면에 비치고 있다.
찌르릉 지잉.
손에 들고 있던 칼로리 소모 애플앱을 잠시 켜니 진동이 울린다. B에 있는 지인이다.
"응 지금 막 헬스장 도착해서 걷고 있어"
"내가 하소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어떠니?"
"음... 알겠어."
운동을 포기했다. 이것은 B가 최고의 지인이란 뜻이다.
전화기를 들고 헬스장을 나오니 더운 공기가 끼얹는다.
사람들의 이동이 덜한 지하 3층 그리너리로 내려갔다.
"무슨 일이니?"
"우리 일 도와주시는 팀장님 들어왔다고 했지. 음... 근데 어제는 오너가 옆에 계시는데도 사람들이 단체로 왔는데 오너 소개도 없이 일을 진행하더라. 그러니 사람들이 옆에 그냥 서 있으니 오너인지도 모르고... 그런 일이 생겼어...
수습 3개월인데 이제 20일 지났는데 어젠 오너가 불편하다고 하시더라. 같이 일하기 힘들겠다고 하셔. 어떡하면 좋을까. 62세시고 S기업에 임원으로 계시다가 오셨다고 했어. 오너도 지인 소개를 받았고 또 다른 지인은 말렸는데도 입사시켰어."
"음... 너도 힘들겠네?"
"내가 1박 2일로 출장 갈 일이 생겼는데, 너무 큰 행사가 있는 바람에 취소했거든. 그랬더니 이 수습 팀장님이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나보고 출장을 다녀오래. 오신 지 20일 지났는데 말이야."
"뭐가 제일 문제니?"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셔... 다른 분들 얘기를 귀담아듣질 않으셔. 그리고 내가 더 높은 직책인데도 나를 어리다고 무시하는 듯한 말과 태도... 뭐 그래..."
"너도 생각 좀 해봐. S기업 임원이셨다며?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겠니. 학벌도,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도 대단하셨겠지. 그게 어디 가겠니. 사람은 변하기 힘들어. 특히 나이가 들면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점점 편협해지는 것 같아.
내가 아는 대 선배는 유명대학 석박사까지 받으셨어. 63세신데 개인적으로 만나면 정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통찰력, 배려심, 지적인 면도 마찬가지고. 대화를 하면 스캔을 뜨듯이 하면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만 하셔. 군더더기 없이.
그런데 말이지. 직장에서 만나면 틀려.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 자꾸 작은 일로 서운해하면서 참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다 지적해 내고. 뭔가 한번 틀어져 버리면 수습이 안되더라. 결국 못 견디고 나가셔. 고집을 꺾으시라고 해도, 대기업 같은 곳에서 일하시던 대쪽 같은 성격과 계속 잘못된 것에 대해 보고서를 써서 오너에게 내게 되니... 직원들과 섞이지도 못하고..."
"아 너의 말 중에 진짜 공감되는 것이 있어.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무 좋은 분이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지인은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보니 밤 9시 50분이다. 나는 후딱 지하 2층 헬스장으로 올라가서 버터 플라이 30회, 하이폴리 30회를 한 후 몸무게를 재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