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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투석한 걸로 아는데 얼마나 된 거야?"

지인시리즈 7탄-30년 넘게 신장 투석하는 언니의 전화

by 윤슬





오후에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똑같이 사랑해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브레네 브라운 [마음 가면] 46페이지-


이 부분과 글의 맥락인 취약성에 대해 아주 적절한 예임에 감탄하면서.




언니 전화가 왔다.

늘 간단한 안부만 자주 묻고 끊는다. 오늘 통화는 한참이어졌다.


"더운데 어떻게 지내니? 애들 방학은 끝났니?. 애들 밥은 잘 챙겨 먹이니?"


"응 그렇지 뭐... 너무 피곤해. 직장은 바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 더우니깐 더 그래...

일할 때는 에어컨 틀고 있고, 집에 오면 또 에어컨 세게 틀고 있어."(말하면서도 웃음이 났었다.)


"언니는?"


"나도 마찬가지야. 너무 더워서 에어컨 틀고 집에 있어."


"언니 형부는 어때? H도 잘 있지?"


"일주일 전에 형부 응급실 갔다 왔어. 또 심장수술 후에 통증이 왔어. 꼭 아플 때는 주말에만 그렇더라.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갔는데 H가 전화가 왔어. [엄마 예배 다 마치셨어요?]

이 시간에 웬일이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새벽 무렵 심장에 통증이 심해서 엄마가 너무 깊이 주무셔서 아버지 모시고 응급실 와서 입원시켰어요.]


"참 H도 몸이 안 좋은데 언니 쉬라고 몰래 나갔구나."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보호자가 1인만 되고 그것도 절차가 까다로워 다시 PCR검사까지 하고 병동에 올라가서 H와 겨우 교대했어."


"H*는 요즘 몸은 어때? 하는 일은 힘들지 않아?"


(*H는 몇 년 전 모계 유전으로 신장 기능이 망가져 형부의 신장을 이식한 상태다.)


"응 *내부장애인 사무실에 다니고 있어. 일은 힘들지 않아. 할머니들 오시면 안내해 드리고 사무장이 시키는 간단한 뒤치다꺼리 하고 간단한 은행업무를 보고 있어. 오시는 할머니들이 H총각 착하다고 그러시고 특별히 힘들지는 않다고 해. 170만 원 정도 받고 일하고 있어. H는 내부장애인 사무실에서 급여를 주고 사무장은 도에서 급여가 나온대. 내가 오랫동안 투석을 받고 있고 H도 신장이식을 했으니 이 사무실에 다닐 수 있게 된 거지.


(*내부장애:몸속의 장기에 완치되기 어려운 장애나 질병이 있어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급여까지 물으니 언니가 줄줄 이야기를 이어간다.


"언니 내가 알기론 30년 넘게 투석한 걸로 아는데 얼마나 된 거야?"


"30년 넘었지. 둘째 L이 4살 때부터 투석을 시작했으니 한 34년 정도 된 거 같아. 참 오래 했어.

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합병증 때문이라서 관리를 잘해야 해."


"언니야 생각보다 엄청 오래되었네. 언니 정말 대단하다."




"애들 잘 챙겨 먹여. S는 성장기니깐 방학은 끝났니?"


"응 이번엔 방학이 짧아서 4일부터 학교에 나갔어. 겨울 방학은 길다고 해. 학교에 공사로 인해 짧아진 거라고."


"언니가 가까이 있으면 반찬을 좀 해다 줄 텐데. 김치는 다 먹었니? 며칠 전 배추 한 포기 6천 원 하던데 2 포기 사서 김치 담고 열무김치도 담아 놨는데. 와서 좀 가져갈래?"


30년 넘게 투석을 한대다 관절도 아파서 뻔히 상황을 아는데 전화만 하면 뭘 해놨다고 가져가라고 한다.

가는 시간은 1시간 20분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되지만 언니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한참 동안 캐나다에 있는 언니의 둘째 L의 이야기와 아버지 산소 벌초얘기까지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형부는 몸이 괜찮아지니 다시 게이트볼을 치러 나갔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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