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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3. 2024

"목욕탕을 핑계로 조기기상을 꿈꾸며 잠자리에 들었다."

2024년 1월 3일




내일 아침부터 6시에 일어나 목욕탕을 핑계로 조기기상을 꿈꾸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 56분. 아 아직 2시간 더 잘 수 있다. 다시 잤다. 새벽 4시 58분...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잖아... 아 너무 감사해 다시 잤다... 5시 50분에 알람이 울렸다. 자연스레 늘 하던 대로 알람을 끄고 다시 잤다. 눈을 뜨니 6시 26분... 어제 챙겨둔 목욕가방을 들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뭔가 일을 내겠구나... 내가...(좋은 의미의 24년을 향한 나의 직감.)


지하 2층에 내려가니 복도에 사람들이 다닌다. 그래 내가 그렇게 깊이 잠든 사이 데스크 근무자도, 헬스장도 다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네. 나는 지문으로 목욕탕에 입장했다. 사실 어제 한 달 입욕권을 끊으며, 들어가서 가볍게 구조도 다시 보고 목욕을 하고 왔다. 그런데도 목욕도구들을 넣어 놓은 빈 락커룸에다(옷 넣어놓는 곳은 안쪽에 있었는데도, 물론 모르고.) 대충 옷을 집어넣고 입장하였다. 아까부터 보니 사람들이 입장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다들 아시는 분들이 아침에 모여서 목욕하나 보다.


대충 자리를 잡고 목욕 중에, 온탕에 어르신 한분이 쉬지 않고 말씀을 하신다. 다른 여자분들도 같이 늘 보던 얼굴이신지 모두 아는 체를 하신다. 내가 온탕에 가자 아래위로 훑어보시고, 뭔가 궁금한 것이 있어 보이는데 일상생활에선 I를 그대로 드러내는 내향형이라(일할 때는 E가 되어야 편하다.) 그냥 조용히 한쪽 구석탱이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뭔가 말을 걸까 봐 불편하여 가만히 있었다.


그 어르신이 나가고 나니, 크지 않은 입주민 목욕탕 안이 조용하다. 나도 아침출근 시간이 있어 서둘러 나왔다. 내 옷이 있는 락커룸에 가니, 그 어르신이 내게 다가왔다.  [거기 혹시 오늘 처음 왔어?] [아... 네] 대충 대답을 하고 옷을 꺼내려는 순간,


"거기 내 락커 룸에다 옷을 넣어두면 어떡해... 저기 안쪽에 옷 넣어두는 곳이 엄청 많고 넓은데...

이제 이사 왔나 보구먼."


하필이면 어르신이, 락커룸에 목욕바구니를 꺼내서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었고, 나는 그 좁은 공간에 벗은 츄리닝을 구겨 넣었던 것이다. 아 이렇게 또 말을 걸게 만들었네... 어느 동에 사는지, 이사 온 지 2년이 넘었는데, 목욕탕에 한 번도 안 왔냐, 왜 이용을 안 했냐... 봇물 터지듯이 낯선 입주민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쏟아졌다. 내일부터 거의 한 달간 봐야 하는데 좀 걱정이기도 하고... 우선 죄송하다고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어르신은 할 말을 다하시고 비워드린 락커룸에 목욕 바구니를 넣고 조용히 사라지셨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이렇게 크고 넓은 락커룸이 안쪽에 있었구나. 어제 나는 사전 점검 갔을 때 눈을 어디다 달고 간 거야.


집에 올라오니 아침이 너무 여유롭다. 비록 독서 시간까지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던 단팥죽을 아침으로 먹고 유유히 출근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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