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이 이렇게 마음까지 녹일 줄은 몰랐다.
양산 천성산 아래 원효암에 새해 첫 라이딩을 다녀왔다. 평지에서 원효암까지는 768미터 천성산까지는 922미터다.
양산공영주차장에 도착하니 일요일 아침 9시 10분이다. 겨울이다 보니 라이딩시작을 30분 늦추었다. 장소에 제대로 왔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용궁사와 아난티길을 같이 갔던 친구가 보였다. 9시 30분 출발에 앞서 화장실 다녀오고 몸풀기를 한 후 대표 리더의 말씀으로 라이딩 시작 직전이다.
"추운데도 이렇게 많이 나오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고 우선입니다. 라이딩하기엔 많은 숫자이네요. 오늘 갈 곳은, 양산 원효암이고 천성산까지 가실 분은 가시면 됩니다. 이곳은~~~~~~~(갑자기 지하철이 쌩~하고 지나가는 바람에 아주 작게 들렸다...)~~~ 입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분명히 듣고야 만 것이다. [장유사만큼 업힐이 심하고 오늘은 좀 빡센 곳입니다.] 장유사에서 끌바를 하면서도 토할 것 같았던 생각이 났다. 그러나 나는 라이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추운 날 자전거를 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나를 내버려 두었다간 한없이 바닥도 보이지 않는 마음자락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양산천을 두르며 원효암 표지판이 보이는 곳까지 순식간에 달려갔다. 자 이제부터 원효암까지는 8킬로라.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업힐이 세면 얼마나 세겠나. 도전!!!
업힐이 엄청 세다고는 할 수 없는 도로였다. 내 기준에서 한 3곳을 제외하면 말이다. 문제는 자전거를 타면서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서면 다시 오르막...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일요일이라 차량도 많이 올라갔다. 5분의 1도 안 간 초입에서 승용차가 내 옆으로 오는 것 같아 무서워서 한번 도로 밖으로 넘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났다. 다시 잘 닦여진 도로 위를 올라갔다. 20명이나 되었지만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포기하고 끌고 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베테랑님이 다가와서 밀어주셨다. 나는 죄송해서라도 열심히 페달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절반 고개쯤 갔을 때 도저히 안 되겠다고 쉬어 가자고 했다. 여름이면 우거진 숲이지만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와 낙엽만이 수북이 쌓여있다.
젊고 늙음이 상관이 없다. 라이딩은 인내고 자기와의 싸움이다.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최대한 낮은 자세로 라이딩을 이어 갈 무렵 짧은 내리막이 두 군데가 나왔다. 오아시스요 물을 축일 수 있는 인생과 같은 구간이다. 나는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걸까. 어느 구간에서 이토록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걸까. 앞만 보고 가기도 갑갑하고, 숨이 막히는데 내 주변과 비교되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많아져 슬프다.(모두가 다 다르다. 고통을 감내하는 한계점은. 아무리 한계점이 낮아도 우리는 상대를 비판할 수 없다. 그가 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깊이를.)
무언가 나무들 사이로 바위가 보이고 드디어 종착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원효암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왼쪽은 원효암 들어가는 입구이고 직진해서 위로 올라가면 천성산이다. 나는 원효암으로 들어갔다.
나 포함 3명과 제일 마지막에 올라온 대표리더와 나머지 한 명만 천성산을 포기했다. 나머지는 모두 우후죽순으로 천성산에 올라가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얼마 남기지 않고 원효암에서 만족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가 되었다. 천성산에 다녀오신 분들은 의기양양 개선장군처럼 기다리던 5명이 있는 원효암으로 들어왔다. 핑계인지 모르나 원효암까지 올라오느라 베테랑 한 분의 도움을 너무 받아서 미안해서 천성산까지 올라가다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자력으로 혼자 올라온 사람이 전부인데 다시 그럴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담에는 이런 추운 겨울이 아니면 꼭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천성산까지 도전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하여...
라이딩 갈 때마다 옷이 계절에 맞지 않거나 장갑이 너무 얇아서 사람들이 MTB초보인 나에게 입을 댄다. 이번엔 기능성 옷이 아닌 아들이 입던 경량패딩을 입었다. 경량패딩까지 땀에 젖어 버렸다. 사람들이 천성산 올라가는 동안 원효암에서 나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너무 추워서 좁은 경내를 뛰거나 걷기도 하고 보시된 믹스커피를 먹기도 했다. 누군가 뜨거운 물을 붓고 있는 꽁꽁 얼어서 벌겋게 된 양손을 꼭 잡아 주었다. 며칠간 우울해서 글도 안 쓰고 소파에 박혀있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았다. 사소한 그녀의 배려가 나의 마음을 다 녹였다. 비로소 보이지 않던 멀리 보이는 양산시의 모습. 겹겹이 쌓인 수채화 같은 산의 윤곽이 나의 마음에 빛으로 밀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