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 너도 이제 배가 나오나 보다
운동의 필요성을 깨닫다.
“어? 너도 이제 배가 나오나 보다?"
어느 여름날 오후,
나이 지긋한 우수고객님을 사무실 밖 주차장까지 배웅해 드리러 나왔다가 들은 말이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왕년에 날씬하지 않았던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정말로, 분명히, 날씬했었다.
바람 부는 날엔 ‘날아가지 않게 조심하라’는 농담을 듣기도 했었다.
여고 때 청소년연맹 ‘한별단‘ 에서 덕유산을 가기 위해 운동장에 집합했을 때
할머니 교장선생님께서 납작한 내 배를 꾹 꾹 누르시면서
“이렇게 약해서 갈 수 있겠어? “ 하셨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소변을 보고 나면 배가 쏙 들어가서 아침 식사를 할 때까지 허리를 잘 펼 수 없었다.
145센티미터의 키에 35킬로그램 초등생 같은 체격을 결혼 당시까지 유지했었다.
맞는 옷이 없어 옷을 사면 어깨부터 발끝까지 품을 따 뜯어 줄여서
거의 새로 만들어 입어야 했었다.
엄마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고루 먹지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입도 짧아 배불리 먹지도 않았었다.
고객님의 말을 듣고 건물 유리를 통해 내 모습을 보았다.
윗배부터 약간 나오고 옆구리도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키 작은 아줌마가 몸에 붙는 옷을 입고 서있다.
야금야금 늘어난 체중은 10킬로그램이 늘어나 있었다.
내 키에 10킬로그램이라니..
’언제 이렇게 된 거야?‘ 생각했지만 사실 옷이 전과 다르게 끼기 시작했다는 걸
느낀 지 오래다.
이제 진짜 운동을 해야겠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자주 몸이 아팠다.
딱히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20대부터 어깨와 등, 갈비뼈 부근이 자주 아팠다.
갑자기 무언가가 등을 쿡 쑤시는 것 같은 통증에 억! 소리를 삼키기도 했다.
그 뾰족하고 강한 무언가는 어깨를 찌르기도 했고
갈비뼈를 찌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무서운 통증에 숨을 멎어야 했다.
40대가 될 때까지 간간히 그러한 통증이 찾아왔다.
목과 어깨가 자주뭉치고 무릎이 아파 한 달 이상을 절룩거리며 걷기도 했다.
한의원을 몇 달씩 다니고 그러다 보면 또 괜찮아 지곤 했다.
수족냉증도 심했다
한여름 3~4개월을 제외하고는 집에서도 발이 시려 꼭 양말을 신어야 했다.
겨울엔 집에 들어와도 뼛속까지 차오른 냉기가 가시려면 한참이 걸렸다.
발이시려 잠들기 힘들었다.
악수를 청하는 고객님을 만나면 손이 차서 부끄러웠고
내 손의 냉기에 상대는 놀라곤 했다.
운동을 하면 나아진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때때로 우울감이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 낳고 워킹맘으로 시어머님과 함께 살았다.
나는 마음 둘 곳이 없었다.
봄 햇살이 아름다운 날엔 내 청춘은 어디 갔나 싶고
여름에 비가 오면 빗줄기에 마음이 젖어 무거워지고
찬바람이 불면 가슴에 구멍이 난 듯 허전했다.
지금 생각하면 몸이 건강하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두 아이를 낳았고 둘 다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돌아보니 참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긴 한데
그동안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가 보다.
일, 공부, 육아로 정신없이 치열했던 날들이 지나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다.
운동부족이라는 말을 듣고 동의했지만
운동할 생각을 못했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마음을 먹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늘 시간에 쫓기어 살았다. 퇴근해서 씻는 시간조차도 바빴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피곤함 같은 건 귀가와 함께 잊었고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아파도 그런가 보다, 이렇게 사는 건가 보다
다른 생각을 못 해 봤는데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