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2022) 리뷰
윤종빈 감독의 작품 속에는 소위 말해 '깡이 센 놈'들이 나온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 <공작>에서 흑금성(황정민)이 그랬고, 이번 <수리남>에서는 강인구(하정우)가 그렇다. 세 인물의 '깡'의 원천은 각각 아주 다르다.
최익현의 깡은 인맥이었고, 이는 오로지 자신의 실속만을 위한 것이었다. 익현의 깡은 아주 무게가 없고 가벼웠기에, 흠집이 조금 나자 모래성처럼 금세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모래성은 무너지기도 쉽지만 그만큼 쌓기도 쉽다. 힘센 놈에게 빌붙어 살던 익현은 더 센 놈이 등장하자 곧바로 노선을 틀어 무너져버린 모래성을 다시금 급하게 쌓아 올린다. 그러나 쌓아 올렸다 한들, 모래성은 모래성일 뿐이기에 그는 평생을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흑금성의 깡은 애국심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했기에 북으로 넘어가 그곳의 실체를 캐라는 위험천만한 국가의 명을 받든다. 북한에서의 몇 번의 돌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깡이자, 애국심 덕분이었다. 분단국가의 정치적 시스템으로부터 사익을 챙기려는 혼탁한 집단들 속에서, 그의 애국심은 리명운(이성민)을 만나 정의와 의리로까지 뻗어나간다.
그렇다면 강인구의 깡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수리남> 1화에서 인구가 이런 대사를 뱉는다. '그제야 어머니 장례식 장에서 왜 아버지가 울지 못 했는지 알게 됐다. 남겨진 빛과 삶의 무게가, 당장의 슬픔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인구의 깡은 이 삶의 무게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뭐라도 할 깡이 없으면, 평범하게도 살 수 없는 지독한 삶의 무게.
마약 카르텔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잡기 위해 언더커버 공작을 펼친다. 어찌 보면 뻔한 내용이다. 하지만 <수리남>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것이 대부분 실화 기반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온 나로서는 마약 카르텔 중심부로 잠입해 매일같이 연기할 자신도 없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할 자신도 없다. 강인구라는 인물을 보며 하루하루 지독하게 평범한 나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2년 전, 하정우는 국내에서 마약으로 분류된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로 3000만 원가량의 벌금형에 처했다. 그랬던 그가 마약을 다룬 <수리남>에 출연하면서 2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하고, 논란에 대해 사과의 메시지를 전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닌 듯하다.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하정우가 연기한 것 또한 의도적 설정으로 보인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마약 사업의 중심부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최철호는 단란 주점을 무료로 주겠다고 하지만, 인구는 이제 그런 거 안 한다며 거절한다. 나는 이 대목이 왠지 하정우가 대중들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런 거(마약) 안 하고 평범하게 살겠다는 약속. 프로포폴이 필로폰, 펜타닐과 같은 위험 마약류는 아니지만 이젠 정말로 약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배우 하정우의 깡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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