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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Sep 17. 2022

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

군생활을 마치고 느낀 것들

22년 9월 14일부로 군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니, '찍혔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21년 3월 15일에 입대를 하게 된 순간부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22년 9월 14일에 전역이 예정됐던 거니까.


1년 6개월.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물론 하루하루는 시간이 더럽게 안 간다고 느껴졌지만, 내 부대는 훈련이 잦았어서 그런지 여차저차 바쁜 부대 운영 일정들을 소화하고 나면 1, 2달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경우가 빈번했다. 나의 보직은 대형 운전병이었어서, 신병 교육대 기간 5주, 야수교 교육 5주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기 때문에 애초에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하기 4일 전에 자대에 왔다. 자대에 오자마자 일병으로 진급했고, 하루빨리 훈련과 5분전투대기조에 투입됐어야 했기 때문에 '상병쯤은 돼야 운전을 하겠구나'했던 야수교에서의 나의 생각과는 달리 곧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생각보다 빨리 운전대를 잡고, 몇 번의 훈련, 몇 번의 5대기, 여기에 진급 시험까지 치다 보니 운 좋게 표창을 받을 기회가 생겼고, 어느새 상병이 되어 있었다. 이땐 부대에 완전히 적응을 했고, 선임들과도 자연스럽게 장난치며 뒤에 후임들도 많이 생겼기에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어 훈련 강도는 더욱 높아졌지만, 훈련이나 일과가 끝난 뒤 생활관에서 선후임, 동기들과 같이 보내는 개인정비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또 운 좋게 표창을 받았고, 어느새 나의 계급장에는 병장 마크가 달려 있었다.


병장만 달면 무조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친하게 지냈던 선임들이 먼저 전역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쓸쓸함이 피어올랐고,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 불안감이라는 것은 사회 복귀에 대한 것이 컸다. 쓰다 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 전엔 누구보다 사회를 갈망했으면서 끝물에 다다르니 불안해하다니. 아무튼 병장을 달고 1, 2개월 간 사회 복귀 후 향후 진로 계획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뭐, 명쾌한 해답을 떠올리진 못했지만,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돼서 의미는 충분히 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또 몇 달이 흐르다 보니 거짓말처럼 9월 14일이었다. 이젠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거짓말 같았고,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날인 13일에 후임들의 축하를 받고 많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침대에 누웠지만, 그냥 여느 때처럼 다음 날 6시 30분에 기상해서 점호를 받고, 아침 식사를 하고, 세면하고 행정반으로 출근할 것만 같았다.


 14일 아침, 나는 30분 일찍 조기 기상을 해서 모포와 포단을 개서 정리한 뒤, 후임들이 잠에 깨지 않게 짐만 조용히 챙겨 부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위병소로 걸어가는 순간에도 '전역'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다만, 휴가 나갈 땐 가깝게만 느껴지던 위병소로 가는 길이 이상하게 그날은 멀게만 느껴졌다. 즐거웠고, 짜증도 났던 이 폐쇄적인 조직에 정이 나름 들었었구나 싶었다. 위병소 밖에 나와 웃으며 나를 기다리던 아빠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재밌고, 힘들고, 즐겁고, 짜증 나고, 때론 비합리적이며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집합해 있는 곳에서, 꽤나 많은 것을 느끼고 얻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운전 실력 보다도 '심적 여유'인 듯하다. 입대하기 전에 나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여유가 없다 보니 무언가에 도전하는 데에 있어 겁부터 냈고, 티는 잘 내지 않았지만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울해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군대에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볼 경험들을 하다 보니 전에 비해 여유가 많이 생겼다. 여기엔 나의 군생활에 힘이 되어준 여러 선후임, 동기, 간부님들의 덕이 크다. 당신들 덕분에 유쾌하게 버틸 수 있었고, 전역 후 곧바로 복학해서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정신없는 사회의 삶 속에서도 되돌아보면 참 즐거웠던 순간들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당신의 복무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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